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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5 21:06
   16. 구약과 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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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3,204  


(고후3:1-9)
1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치켜 올리는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처럼,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장이나, 여러분에게서 받을 추천장이 필요한 사람들입니까?
2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여러분들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으며, 읽고 있습니다.
3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5    우리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7    돌판에다가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비록 곧 사라질 광채이기는 하지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8    하물며 성령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9    정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니,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옛 언약과 새 언약에 관해 공부를 하겠습니다.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은 도대체 무엇인가? 조금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잘 들어주세요.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 즉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경륜해 가시면서 인간들을 대하시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 언약이라는 말이 이백 아흔 두 번이 나오고 약속이라는 말도 예순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렇게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입니다. 그 많은 분량의 구약은 무엇을 기록하고 있으며 신약은 또 무엇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둘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제가 자주 구약은 영화의 화면이고 신약은 영화 자막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연관성은 어떤 것일까요?
구약과 신약은 서로 떨어 뜨려놓고는 절대 이해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구약과 신약은 전체가 다 일관성을 가지고 어떤 단일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잘 공부해 보자고요.
 
먼저 성경이 말하는 옛 언약이 무엇인가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렘11:1-4) 1    이것은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다.
2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선포하여라.
3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 언약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4    이 언약은, 쇠를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이집트 땅에서 너희 조상을 데리고 나올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지키라고 명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에게 순종하고, 내가 명하는 모든 것을 실천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서,
 
이것이 구약 전체에 흐르는 옛 언약입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명한 모든 명령을 좇아 행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렇게 율법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바로 옛 언약인 것입니다.
 
그럼 새 언약은 무엇일까요?
 
(히8:7-13) 7    그 첫 번째 언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두 번째 언약이 생길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주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날이 이를 것이다.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
9    또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 새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붙들어서,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 조상들과 맺은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이 내 언약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10    또 주께서 말씀하신다. '그 날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 속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다가 새겨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11    그리고 그들은 각기 자기 이웃에게 서로 가르치려고, 주님을 알라고 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12    나는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더 이상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13    하나님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번째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 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7절을 잘 보시면 옛 언약이 흠이 있는 언약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이 흠이 있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실수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옛 언약은 그 언약 홀로 완성품이 아니라 어디로 향하고 있는 언약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옛 언약이 흠이 있어 새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 새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남편이 되어서 손을 잡고 끌고 나왔는데도 이스라엘이 그 옛 언약 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 불순종하였기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뚫고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심비에 직접 기록을 해놓으시겠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러니까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결론되어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흠 있는 언약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옛 언약, 구약은 율법이요, 새 언약, 신약은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기본으로 깔고 오늘의 본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을 염두에 두고 고린도 후서 3장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거짓 사도가 잘못된 것을 밝히기 위한 공격 방법으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면서 공격을 전개해 나갑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사도들을 옛 언약의 대표로, 자기 자신을 새 언약의 대표로 올려놓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지요?
그러면 “거짓 사도와 옛 언약, 참 사도인 바울과 새 언약” 해서 옛 언약이 거짓이라는 Logic이 성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잠간 언급해 드린 것처럼 그 옛 언약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거짓일 수가 있는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언약이 거짓이 될 수 있습니까?
조금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 언약이 없는 옛 언약은 거짓이다”입니다.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결론지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옛 언약 홀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구약의 그 많은 율법과 제사제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예수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약을 주실 때 새 언약을 염두에 두시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구약에만 머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유대교는 불완전할 뿐 아니라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토요일이면 검은 정장차림으로 할리우드 거리를 활보하는 그 많은 유대인들이 저는 참 측은 합니다. 옛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나를 청종하고 내 말을 지키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죄를 지었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제도와 율법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구약은 그렇게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대한 인간의 무능함을 지적하기 위한, 은혜의 필연으로 향하는 사다리였던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제도와 율법은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림자였고 예수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갈3: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 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제사제도는 죄 없는 제물이 죄인 대신 죽임을 당하고 죄인의 죄가 용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그림자로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히10:1-5) 1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그렇지 않다고 하면, 제사드리는 사람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그들은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사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나 제사에는, 해마다 죄를 회상시키는 효력이 있습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 수는 없습니다.
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명확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은 새 언약을 위해 구약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질 그 은혜를 설명해주시고 이해시켜 주시기 위해 구약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결론이 지어지지 않는 구약은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시원한 생수를 약속하지만 그 곳에는 끊임없는 모래바람과 뜨거운 햇빛만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보세요. 그들의 삶에 오아시스가 있었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은 어떤 처지로 몰락할 수밖에 없는 자들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아닙니까?
 
그럼에도 구약에만 머물러 있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네들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인들이 쓰는 구약 성경의 순서는 우리의 구약의 순서와 좀 다릅니다. arrangement이 좀 다르게 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구약은 역대 하에서 끝이 납니다. 역대하가 어떻게 끝나지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는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그들은 이제 메시아가 와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사무엘하의 다윗의 언약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약은 어디서 끝이 납니까? 말라기에서 끝이 납니다. 말라기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가나안에 돌아와서도 끝까지 옛날 버릇 못 버리고 범죄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들 드릴 때도 성의 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십일조를 하면서도 제일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와서 유세를 떨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봐라, 너희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지? 너희는 내게 저는 것 흠 있는 것 엉터리 같은 것 가져다가 바치고는 제사지냈다. 십일조 했다 하는데 너희 총독에게 그런 거 가져다 줘봐라. 사람도 안 받을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조롱하느냐? 너희는 나의 요구 조건을 절대 충족시킬 수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한다.”하시고 구약을 닫으십니다. 그게 말라기입니다. 인간의 완전한 실패로 구약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없는 구약은 거짓이라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유대교만을 전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오셔야만 한다는 것을 구구절절이 피력하고 있는 책인 것입니다.
 
(계3:9) 보아라, 내가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네 손에 맡기겠다. 그들은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보아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보세요.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구약의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켜 “사탄의 회”라고 까지 하십니다. 그만큼 우리 기독교에서는 모든 것이 예수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침투해서 예수를 부인하고 옛 언약의 우월성을 주장하던 자들을 가리켜 거짓 사도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성취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는 처음 창조와 새 창조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있던 무질서 속에 빛을 창조하시면서 창세기의 창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둘째 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셋째 날 물과 뭍을 나누시며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 까지 열심히 그 셋째 날 까지 만들어 놓으신 그 틀에다가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그리고 완성된 창조를 일곱째 날 안식하시면서 즐기시는 것이 창세기의 창조입니다. 그 창조는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우리 죄인들의 마음에 예수라는 빛을 보내셔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실 것인가를 힌트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빛이라고 묘사를 하지요?
 
(고후4: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분명하지요? 창세기의 첫째 날 빛이 있으라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바울이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과 2장의 이야기가 바로 그 창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살펴  보았다. 첫째 날 빛이 오시고 그 이튿날 세례를 받으시고 그 이튿날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묵었습니다. 정확하게 창세기의 셋째 날까지의 창조가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가 오셔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갈리는 것으로 상징이 되는 세례를 받으시고, 물이 물러가고 뭍이 드러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이신 주님이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셋째 날까지의 천국의 틀에 당신의 백성들을 채우시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천국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상징하는 가나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첫 창조와 요한복음 1장2장의 사건들은 바로 예수께서 그 새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내실지 미리 힌트해 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창세기의 창조는 새 창조를 상징하는 창조이기에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면을 보여 줍니다. 빛이 창조되었는데 빛과 함께 어둠이 공존합니다. 그렇지요? 그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빛으로 가득 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날에도 역시 궁창과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하늘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궁창과 궁창 위의 물은 후에 성막의 물두멍으로 또 휘장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마치 놋을 망치로 쳐서 만드는 물두멍처럼 만드셨다는 표현과 커튼처럼 치셨다는 표현들이 구약에 여러 번 나오지요? 그것은 바로 휘장이신 예수의 몸이 하늘로부터 아래로 찢겨져 궁창과 궁창 위의 물이 물러가고 죄인들이 하늘로 들어가는 길이 열릴 것임을 담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바다가 되는 것이고요. 셋째 날도 마찬가지죠? 물과 뭍이 공존합니다. 성경에서 물은 저주의 물, 심판의 물, 죄악의 물을 가리킨다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할 때 ‘다시 바다가 있지 않겠고’라 묘사한다 했지요? 성경은 그 모든 악의 물이 물러가고 다시는 바다가 있지 않은 뭍이 반드시 완성 될 것이라는 것을 셋째 날의 창조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창조는 그 속에 하나님의 언약을 담지하고 있는 새 창조의 그림자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그 어둠이 어떻게 물러가며, 그 물이 어떻게 말라버리며, 그 궁창이 어떻게 뚫리게 되는지, 다시 말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다시 무질서인 카오스의 상태로 떨어져 버린 그 벌거벗은 아담이 어떻게 의의 세마포를 입은 천국 백성이 되어 가는가를 옛 언약과 새 언약을 통해서 설명을 해 주시는 것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able to sin에서 not able to sin으로 바뀌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시는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격적인 존재들은 모두 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천사들도 probation을 거쳐서 그 시험을 통과한 자들은 영화의 삶으로 가는  것이며 통과하지 못한 자들은 저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있는 천사들은 probation을 통과한 존재들이라 이제 not able to sin의 상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나중에 천사들이 도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자들이기에 거기에는 이제 반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원리인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지는 알려고 하지 말자고요. 하나님께서 그 이상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으시니까요. 천국에 가면 알 수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인간들도 그 하나님의 probation을 통과하면 바로 천국의 삶을 not able to sin의 상태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사랑하심으로 예수를 보내셔서 그 probation을 통과하게 하시고 그들을 건져내신 것입니다. 제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해요. 저는 지금 하나님이 계획도 없이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시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간의 처분을 기다리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택한 것  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십자가를 창세전에 준비해 놓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고 선악과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인 십자가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기로 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의 원리, 즉 나를 비워 원수의 유익을 구하는 삶의 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저와 공부해 나가시면서 점점 클리어하게 정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하자고요.
 
그러므로 첫 창조는 새 창조의 준비 단계일 뿐입니다. 첫 창조는 임시적이며 낡아지고 부서질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죠? 태양도 빛을 잃을 것이고 달도 기울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어떨 때 이런 생각 안 드세요? ‘하나님이 이런 것은 요렇게 만드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 드시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왜 하나님이 조금 아쉽게 이 세상을 이렇게 놔두실까요? 여기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첫 창조 속에서 우리에게 경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첫 창조는 임시적이며 잠정적인 우리의 주거지일 뿐입니다. 영광과 영화의 새 창조 때까지 인간에게 주어진 임시 주거지입니다. 그러나 새 창조는 영원한 것으로, 불멸의 것으로, 썩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지어지게 되는 영적인 것입니다.
창세기의 첫 창조는 이렇게 새 창조의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지요.
 
(히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물은 이런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사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제사나 율법 그리고 이 창조물들은 모두 새 창조의 모형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첫 창조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히8:13)  하나님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번째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 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영적인 새 창조를 목적으로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 하셨습니다. 여기는 이제 곧 낡아지고 부서지고 불에 타버릴 우리의 임시 주거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디에다 관심을 두고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이 옛 언약에 속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새 언약의 성취로 우리에게 주어질 저 하늘나라에서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를 가리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 정죄의 직분(유죄를 선포하는 직분)이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율법 아래 있는 거짓 사도들을 공격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새 언약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신의 직분을 의의 직분이라 하지요?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세요. 구약인 율법이 아주 몹쓸 것이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격을 알게 해 주시는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는 자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얼마만큼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십계명 돌 판으로 상징되는 율법의 모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구약은 예수그리스도로 결론지어지지 않으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에게 소망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을 잘 보시면 십계명 돌 판은 생명 없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렘17:1) "유다의 죄는 그들의 마음 판에 철필로 기록되어 있고, 금강석 촉으로 새겨져 있다. 그들의 제단 뿔 위에도 그 죄가 새겨져 있다.
 
얼마나 그 죄인들의 마음이 단단하면 금강석 끝 철필로 그 죄가 마음 판에 새겨져 있다고 성경이 죄인들을 묘사하겠습니까? 성경은 십계명 돌 판과 죄인인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대조합니다. 그 돌판 같은 단단한 마음을 가진 죄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꿔 버리시는 것이 새 언약인 것입니다.
 
(겔36:26-28) 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27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28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이러한 대조로 확인시켜 주고 있기도 합니다.
 
(출32:26-28) 26    모세는 진 어귀에 서서 "누구든지 주의 편에 설 사람은 나에게로 나아오너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레위의 자손이 모두 그에게로 모였다.
27    그가 또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허리에 칼을 차고, 진의 이 문에서 저 문을 오가며, 저마다 자기의 친척과 친구와 이웃을 닥치는 대로 찔러 죽여라' 하신다."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 바로 그 날, 백성 가운데서 어림잡아 삼천 명쯤 죽었다.
 
모세가 돌비에 새긴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때를 그들이 애굽을 탈출한 유월절부터 계산해 보면 정확히 50일 후라고 합니다. 유월절 이후 오십일이면 무슨 날입니까? 오순절쯤이지요? 오순절에 그 율법이 산 아래의 죄에 닿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요? 삼천 명이 죽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신약에서 오순절 날 새 언약의 성취로 그 새 영이 내려오십니다. 그 새 영이 똑같은 죄인들에게 부어지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베드로의 설교에서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지요? 성경은 정확하게 이렇게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삼천 명이 죽는 것으로 새 언약은 삼천 명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으로 비교를 합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판이하게 양상이 바뀐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입되자 죽음이 삶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이며 그게 바로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내용인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죄인들이 그들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꿔버리시는 것, 그래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시는 것을 우리는 새 언약이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부터 시작해서 계시록으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를 설명하기 위한 예수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결론지어지지 않는 구약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며 그 율법을 전하는 자들을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성경에다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새 언약 아래에서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을 얻으신 성도 여러분 조금 있으면 낡아 없어질 구약적인 이 땅의 것들에서 눈을 들어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것을 바라는 새 언약의 백성다운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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