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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10 06:23
   인간의 자기애적 상승욕망 (로마서 101강 중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27,686  


자신의 그 아우슈비츠 수감시절의 경험담을 수기형식으로 기록한 실존주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99% 이상의 수감자들은 금방 그 극한의 고통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리고 조금이라도 덜 힘들고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조금이라도 덜 배고프기 위해서 금방 이기적인 짐승이 되고 마는데, 끝까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1% 미만의 예외자들이 있더라고 그렇게 기록을 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게 자기의 마지막 남아있는 빵을 건네주기도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에게 다가가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진심으로 전해주기도 하며, 그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이것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야… 이렇게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며 심지어는 타인을 위해서 대신 가스실에 들어가는 그런 이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재밌는 건 짐승처럼 자기애적 욕망을 위해서, 나는 살아야 되겠다는 그 자기애적 욕망을 위해서 타인의 죽음도 아랑곳 하지 않던 99%의 그 짐승 같은 유대인들이, 입만 열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에 반해, 순순히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기의 마지막 남은 빵이나 아니면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놓았던 사람들 중에는 이미 신을 버린, 신을 떠난 이들도 왕왕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들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만큼 그들을 그렇게 헌신하게 만든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만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사자우리에서 독사의 굴에서 펄펄 끓는 기름 가마 앞에서 활활 타는 풀무불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있게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서 그렇게 했던 사람들을 추앙하고 존경하지 않습니까? 
근데 타 종교인들도,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는 그런 이들, 무신론자들 까지도 가난하고 압제받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헌신을 해내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누가 준 힘이냐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 세상, 인간세상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하고 칭찬하는 소위 위대한 삶, 거룩한 삶, 착하고 깨끗한 삶 선하고 아름다운 삶 그런 것이 기독교만의 열매나 아니면 기독교만의 지향점은 아니라는 게 분명하죠?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도 그것을 추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해낼 능력을 어디선가 받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보편적 아담들의 공통된 목표고 지향성이고 희망사항이기도한 거예요. 그렇다고 진리를 배우고 깨달은 성도들이 그런 것들을 가볍고 우습게 여겨도 괜찮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위대한 거예요.
 
하늘의 백성들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 세상의 것들을 도구로 하여 하늘의 것들을 배워가야 하는 그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그 크로노스의 그 시간, 그 시간 동안에는 당연히 이 아래 세상의 질서와 도덕과 윤리와 선을 행하고 가르쳐야 돼요. 그건 마땅한 겁니다. 그러나 그건 신앙의 열매라기보다는 그냥 ‘사람’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이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예요. 당연히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것...
제가 여러분에게 경계하라고 하는 건 자신에게서 나오는 그러한 선한 삶이 그렇게 거룩해 보이는 그런 위대한 삶이 혹시 자기애적 상승욕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라는 거예요. 나의 만족이나 타인에 의한 나에 대한 훌륭한 평가나 이런 것들을 위해서 내가 내놓는 것은 혹시 아닌지 돌아보자는 거예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그런 자기애적 상승 욕망이라는 건 원자를 분해해버릴 정도로 뜨겁습니다. 모든 걸 녹여버릴 만큼 뜨거워요. 그건 프로이드가 ‘리비도’라고 불렀던 아담들의 생 본능 같은 거예요. 진리를 알지 못하는 모든 인간들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역동성 있게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그겁니다. 여러분. 그런 욕망은 자기의 몸에 불을 붙이고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참아낼 정도로 무섭습니다. 이를 악물고. 저는 그런 친구들 후배들을 수 
없이 봐왔어요. 제 눈앞에서... 참더라니까요. 
내 몸이 활활 타오르는 순간에도 누군가 그 행위를 칭찬해주고 칭송해 주면, 아니, 내가 추측하기를, 그래! 누군가 나의 이런 모습을 위대하게 봐줄 거야. 가치 있게 봐줄 거야. 라고 상상만 되어도 인간은 그 힘으로 자기 몸을 불사를 수 있더라는 거예요. 그게 인간들의 자기애 적 욕망이라는 거예요.
 
성경은 그러한 행위를 ‘Vanity’, 헛되다, 라고 이야기해요. 그건 허망한 거라는 거예요. 그건 신기루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세간의 멋진 평가를 획득하기 위해 내어 놓는 모든 행위는 그 외모가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해 보여도 그건 욕망에 불과한 것이라는 거예요. Vanity, 라는 거...
Vanity is Vanity all is Vanity. 허망하고 헛것이라는 거죠. 그건 선악과를 먹어버린 모든 아담들의 본질적 속성 같은 거예요. ‘하나님처럼’의 삶.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건 바로 그 거만한 욕망, 인간들의 그 Vanity의 욕망을 깨부수면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나의 가치는 그러한 것으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해주시는 하나님의 생명,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 그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이라는 일상인 겁니다.
 
그것을 알고 내어 놓는 헌신, 그것과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어 놓는 자기애 적 욕망에 의한 헌신은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나는 거예요. 여러분 진리를 안다고 해서 그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그 헌신이 안 일어날 거 같으세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김윤기 15-11-15 17:04
    
아멘 아멘 지금도 나에 헛된 욕망속에서 사는 나를 발견하고 예수그리스도처럼의 삶을 달라고 다시 기도하고 기도하며 나의 죄를 떨어가고 떨어가는 나를 보고 또 헛되 나를 발견하고 다시말씀보고 묵상하며 기도한다 하나님 제발 이육에몸을 제하여 주시고 하나님에 사랑을 덧입고 덧입어 그 사랑안에 살게 하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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