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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27 10:59
   십자가 강도 (롬 50강 중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21,101  


여러분 신약에서 그러한 순교자의 삶을 보장 받은 그 교회의 원시 모형, 최초의 순교자가 어디에서 나타났어요?
세례요한은 아니예요. 십자가 전에 죽었어요. 누굽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실 때 살아있던 놈 하나 있었어요. 강도, 걔네들보다 예수님이 조금 먼저 돌아가셨죠? 
예수님이 먼저 돌아가셨기 때문에 무릎을 꺽지 않았는데 얘들은 살아있었어요. 그러나 조금 이따 죽었거든요. 
그런데 고 둘 중의 하나가 구원받았거든요. 십자가 이후의 최초의 순교자는 강도입니다. 강도예요. 
믿음으로 죽은 거예요. 그래서 그 강도 안에 우리의 교회를 넣어 이해를 하면 딱 맞아요.

세상은 그렇게 두 종류의 강도로 나뉘어져요. 강도가 뭐예요? 그때 당시에,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에 달았던 사람들은
로마에 대한 반역자들 밖에 없었어요. 강도, 살인자? 십자가에 안 달았습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에 달린 강도, 
그들이 등장을 할까요?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반역을 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한, 선악과 따먹은
아담들, 전 인류를 모형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는 강도예요.
그들은 전부가 다 하나님 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강도예요. 그러나 십자가를 져야하는 악마들이라구요 둘 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마귀가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받는 이야기가 역사의 이야기인 거예요. 
그게 구원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 이스라엘이 교회 잖아요. 
그 이스라엘의 이름이 야곱, 강도 인거예요. 그 강도를 이스라엘로 만들어 낸 게 하나님의 구원이란 말입니다.
어떻게? 거저~
그 강도가 십자가에서 한 게 뭐있냐구요? 아니,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오체가 다 박혔는데.... 
요게 구원의 조건인 거예요 여러분. 

갈라디아서 5장 24절 보세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이예요. 여기서 '못 박았다' 스타우로느 라는 단어가 헬라어의 직설법 과거
시제예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예요. 어디에서? 강도 안에서. 
그런데 예수님은 그 강도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 열에 달리셨죠? 
바로 강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거예요. 예수님이 이 강도가 되어서 죽으신 거라니까요. 
그래서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거예요.하나님의 교회와 그 머리이신 예수가.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거예요. 
그 강도 안에 내가 들어있는 거예요. 따라서 성도는 반드시 저 하나님의 통치에 반발하는... 그리하여 나를 신 삼아 
살고자 했던 아담 맞습니다 라는, 저, 강도 맞습니다 라는 이 고백을 반드시 해야 되요. 성도는
그게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라구요. 그게 구원 받은 강도가 반드시 토해내야 할 신앙 고백이란 말입니다.
 
저는 무슨 선해 보이는 일을 통해서도 반드시 저기엔 가치와 명성과 보람과 인기를 위해 하는 자입니다, 하는 
요 진심어린 자각과 고백을 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이 믿음의 역할 이란 말예요. 그 강도는 자기가 죽어 마땅한 
자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자기 옆에 자기와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가는 이가 보여요. 
그런데 믿음이 가입해요 갑자기. 
그랬더니 이 사람의 눈에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보이는 거예요. 뭘 열심히 공부해서도 아니예요. 
뭔 얘가 십자가 위에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겠어요, 뭘 했겠어요?  믿음이 가입하니까 그 분이 하나님 나라 
왕이라는 게 보여요. 그런데 그 왕이 내가 되서 죽고 있어요 옆에서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구요? 내가 이렇게 죽어야 되는 거 맞습니다. 저는 아무 할말 없습니다.그런데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이 하늘의 왕이라는 게, 당신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게 나에게 어떻게 알려졌죠?
그 비밀을 내가 어떻게 알게 됐죠?  그리고 당신이 내가 되어서 죽으면 내가 살 수 있다라는 이 믿음은 도데체 
어디서 온 겁니까? 하나님 그게 사실이라면 난 면목 없지만 하나님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좀 생각해주세요.
안 해도 상관 없는데 하나님, 내 안에 믿음이 들어와서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다 라고 하니까 하나님 나를 좀 생각해
주세요. 요게 바로 성도가 마지막에 고백하눈 말이어야 되요. 그 때 하나님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 고백이 바로 십자가 위, 우리가 맨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리는 거잖아요~ 이렇게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가 약속의 땅 바로 앞에서 성도가 최종적으로 해야 할 고백이 바로 그 고백인 거예요. 십자가 위에서의 바로
그 고백.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오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경험케 해주신다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뭔가 열심히 노력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으로 뭔가 해낼 수 있다 라고 착각들을 하고 있어요.

분명히 지난 주에 제가  성도의 삶에 신실함이나 성실함, 노력이 없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이끄심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왜?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걸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을 가치와 자격과 조건으로 쌓아서 상을 받으러 가겠다구요? 모슨 복음이예요 그게 불교지.
 
그 강도가, 조금 전까지 그 옆에 있는 강도가, 예수님을 저주하며 욕했던 그 강도가 갑자기 ‘당신의 나라’ 라는 말을
해요. 이 세상 나라가 아닌 어떤 나라, 저 분의 나라가 있다는 거예요. 그가 알더라는 겁니다. 
그는 이 세상 속에서 나에게 세상 것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해주지도 않지만 그분이 나에게 진짜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게 있다라는 걸 알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살아난 게 아니라 똑같이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죽었다니까요. 이게 역사 속 삶이예요 우리의.... 
그런데 우리는 이땅에서 육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잖아요, 지금 계속해서.... 
하나님은 죽이겠다 라고 하는데. 우리의 마지막 자리는 그 십자가인데, 살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잖아요. 
기독교는 없다고 보시면 되요. 예수 믿는 사람은 그냥 없다고 보시면 되요. 
그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숨어서 사는 거예요.
 
그 강도는 예수님께 도움을 구했어요. 저는 평생 저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저는 저를 위해 남을 해치는 
강도 짓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이 저의 모습이 되어서 그렇게 죽으시는 겁니까? 혹 저에게도 살길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내 안에 그런 믿음이 생기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주님, 면목 없지만 혹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저도 좀 생각해 
주세요. 이게 성도의 최종 고백이예요. 

그런데 예배당 안에 이렇게 잘 난 인간들이 많아서 자기의 업적과 공로를 들고 다른 이들을 오히려 너는 왜 
그 정도 밖에 안되냐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어요.
보시다시피 이게 성도의 마지막 자리인데 성도는 인생과 역사 속에서 날마다 그 십자가의 삶을 살게 되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자기가 못 박혔다 라고 해 놓고, 못 박히면 죽은 거죠. 
그런데 또 날마다 죽는다고 그래요. 그러죠?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힌단 얘기예요. 그러면 날마다 무슨 고백한다? 
하나님 나는 강도 맞습니다. 나 뱀새끼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옆에서 놋 뱀으로 죽으신 거 맞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당신이 날 기억 해주지 않는다면 생각 해주지 않으면 난 절대 천국 못 갑니다. 
날마다 죽는 거예요. 이게 육의 죽음이라니까요. 
그래서 그 십자가를 우리는 날마다 진다 라고 하는 거예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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