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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1 08:54
   골목길 -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18,668  
   song.mp3 (2.8M) [18] DATE : 2014-09-11 08: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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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도 들어가기전 아주 어렸던 그때 그시절, 형누나들이 다 학교에 가버리고 나면 높은 하늘이 환히 보이는 마루에 누워 
파란 하늘위로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저구름은 독수리를 닮았네 저구름은 호랑이를 닮았네하며 혼자 놀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구름이 그렇게 좋아졌나봅니다. 늘 개를 키우던 집이었는데 그때는 마침 강아지가 없었거든요. 
개를 키우게 해달라고 뭉게구름에게 빌고는 저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리듯 마당뒷편 장독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장독대에서 내려다본 뒷골목에 아주 어린 강아지가 한마리 걸어 가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얼마나 어린지 걷는다기보다는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낼름 뛰쳐나가 그강아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착한 어린이의 기도의 힘이란 정말 놀라운것이구나 감탄하며 귀여운 강아지와 재미나게 놀았습니다. 
물론 다저녁이 되어서 뒷집 아줌마가 강아지가 없어졌다고 온동네 소문을 내면서 어머니에게 혼나고 뺐기기는 했습니다만 
참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아련한 추억이 있는곳, 그곳은 제가 유년시절을 보낸 당시 서대문구 지금의 은평구 대조동이었습니다. 
큰대추나무가 있는 동네라고 대조동이라는데 어린시절 대추나무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수 없는 작은 마당에서 흙장난하며 
놀았던 그때 그소중한 공간을 저는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사연들이 흘러갔는지....
준원이네서 6시쯤이면 다같이 모여들어 듣곤했던 마루치 아라치 라디오드라마, 파란해골 13호는 왜그리도 얄밉게 느껴졌는지..
요괴인간이나 철인28호 시작하는 시간이면 TV앞은 어린이들 차지였습니다.
어머니들도 그시간 만큼은 정말 노터치였던거 같아요. 과외가 뭐고 학원이 뭡니까. 호시절이었네요.
놀꺼리는 얼마나 많았는지 골목 여기저기서 다방구와 술래잡기를 하다보면 한놈한놈 엄마들이 누구야 저녁먹자 하면 사라져
버려 결국 혼자남아 멋쩍게 집으로 들어갈때까지 놀고서는 집에 들어와 오늘의 반찬은 뭐 맛나는거 없나하고 부엌을 기웃대던
기억들, 그리고 큰아들 스케이트 타다가 넘어졌는데 그만 누구인가가 그위를 지나가버려 손가락이 잘렸다고 연락이 와서 
맨발에 파자마 바람으로 뛰쳐 나가시던 앞집 동재형 아버지의 뒷모습 그리고 얼마후 그아저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곡소리가 
골목에 퍼지던 기억...이런저런 기억이 생생한 그곳은 아름다운 풍광도 없고 자랑할만한 무언가도 없지만 제게는 고향같은 곳
입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님 천막교회가 대조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억은 납니다.

요즘도 잠이 안오면 누워서 어린시절 누볐던 그골목골목을 머릿속에서 돌아다녀 봅니다.
비가 오면 늘 넘치는 연신내 때문에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던 골목, 어른들은 한숨 쉬며 물퍼 내시는데 철없이 신이나서 
고무신을 배처럼 띄워 놓고는 첨벙대며 놀았던 집앞 사거리를 지나면 마당이 넓어서 온동네 아이들이 잔디마당에서 짬뽕
(고무공야구)을 하고 놀았던 태규형네 집이 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여름에는 부라보콘과 아이스께끼, 겨울에는 따끈
따끈한 아톰바와 호빵을 팔던 가게가 나옵니다.
뽀빠이가 나왔다가 다시 라면땅이 나오고 그랬다가 다시 자야가 나오는 유행따라 즐겨먹는 맛도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돌면 드르륵미닫이 문에 온갖 잡스런 포스터가 붙어있던 만화가게가 골목길에는 늘 여러 장수분
들이 다녔습니다. 옥수수장수는 옥수수를 한가득 쪄서는 머리에 이고 다니셨고 생선장수는 리어카에 온갖 생선을 가득담아 
다녔습니다. 아모레나 주단학 방문판매 화장품아줌마들도 자주 뵐 수 있었고 개팔아요~를 외치며 지나다니던 자전거아저씨는 
늘 공포의 대상이었죠. 연탄을 실어 나르던 연탄장수 말이 끄는 구루마뒤에는 그렇게 안되더군요. 
소독차가 지나가면 온동네 아이들이 미친놈들처럼 따라 뛰어다니던 모습은 요즘도 가끔 연출이 되는것 같긴 하던데 하염없이 
쫒아가다가 집잃어 버린 아이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과 놀았던 딱지치기나 알령구리, 망까기, 말뚝박기나 오징어같은건 지금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아무런 장난감도 딱히 없었지만 온골목길의 돌멩이와 모래가 모두 우리들의 장난감이었으니 그러고보면 다른 친구들은 척하면 
휙 잘도 잡는데 제눈에는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거에요. 특히 매미가 말이죠.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먹어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어두워지니 요즘은 왜 그리 매미가 잘보이는지 나무만 올려다 보면 붙어 있는 매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신기한일이네요. 물론 전에는 못느끼고 스쳐지나간 이런 저런 소리들도 지금은 잘 들리기도 합니다. 
하여간 참 좋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훗날 지나간 게임을 추억하고 뻔질나게 날렸던 카톡과 이모티콘을 추억하며 무언가 다른것에 빠져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안타까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동네에 그렇게 개들이 많았습니다. 개들의 합창을 쉽게 들을 수 가 있었죠, 그것도 똥개들ㅋ 그래도 도둑은 많았습니다. 
개들과 도둑들은 비례하나봐요. 담벼락에 유리병 깨진것도 박아놓고 쇠창살도 살벌하게 세워놨지만 도둑은 참 많았습니다. 
개들이 그리 많았는데 어찌들 털어간건지....
물론 쥐도 많았습니다. 천장을 후두둑하며 지나가는 쥐들 때문에 얼마나 무섭던지요. 그래서 자주 쥐잡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이 되면 쥐약을 줏어 먹고는 속에 불이나서 미친듯이 뛰어다니다가 죽어가는 불쌍한 개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랑을 하다 엉덩이가 붙어 민망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낭만강아지들도 정말 쉽게 볼 수 있었구요. 
그런데 앞집에서 키우던 개 팝시는 왜그리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개도 아니었고 빼짝마른 그래서 저는 늘 앞집현관문이 닫혀있는지 확인하고는 골목에서 놀았습니다. 
그 골목에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눈싸움도 하고 벼라별 놀이를 다하고 놀았습니다. 정말 멋진 골목인거죠. 그래서 가보고 
싶었습니다. 멀지 않은곳인데도 큰맘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얼추 40년만에 다시 그골목 고향같은 그곳 대조동을 혼자 가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과거의 나를 향해 여행을 하듯 그곳을 가보았습니다. 

다니던 초등학교도 지나고 그앞의 문방구도 지나가 봅니다. 우표 모은답시고 이런저런 우표를 많이 사곤했던 추억의 문방구는 
아직 그대로 있더군요. 물론 많이 달라져서 그흔적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을 달래가며 예전 제가 살던 그집 
그 골목에 이르렀을때 깜짝 놀랐습니다. 운동장같이 넓어 보였던 그골목은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아주 협소한 
골목이었습니다. 그랬구나...내가 그렇게 자라버린거구나...웃음이 나옵니다. 
온동네 아이들이 뛰며 놀았던 앞집 태규형네는 아직 그대로인데 담넘어로 보니 폐가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곧 빌라같은
것으로 재건축이 되려나봅니다. 아직 옛집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마당은 잡초로 무성하지만 역시나 그리 크지도 않은 작은 
공간일뿐이었습니다. 담벼락을 매만지며 기웃대다가는 골목을 돌아 마침내 제가 살던 집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멍해지는 마음에 그앞에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그집은 정확하게 그자리는 그대지만큼 동네 유료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멘트로 말끔히 포장된 사각형의 주차장, 저의 고향 저의 집은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없었습니다.
주변의 준원이네 동재형네 성하형네 모두 어둠속에 빛나는 파란해골13호 같은 괴물빌라들로 변해 버려 예전의 소담스럽고 
아담했던 담벼락과 집들은 이제 없었습니다.

그랬구나...그럴줄 알았다는듯이 웃고 말았지만 기분이 참 안좋았습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무언가 놓쳐버린 느낌....
무얼까....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묵직한 그물을 올렸는데 그물 속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었을때 느낄것 같은 그런 느낌....
아니다....꿈꾸던 강아지를 품에 안고 짧지만 행복했는데 뒷집 아줌마가 도로 가져가 버렸을때의 느낌이 맞을지도 모르겠
습니다. 그렇게 고향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비가 너무 낮게 날아다녀서 눈치보며 피해다니던 넓은 골목길도 무서운 앞집 팝시네 집도 저희 여섯 식구가 바글대며 뒹굴던 
마당도 집도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변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곳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당연한걸지도 모르지만 왜그리 서운하던지요. 미국이나 일본영화를 보면 다들 고향에서 사는걸 좋아하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면 거기서 동창들도 만나고 이웃들도 만나곤 하던데 우리는 왜그런지 그런맛이 없습니다. 서울이라 그런걸까요.
아마도 급격한 발전속에서 어쩔수없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뒷맛은 아주 씁쓸합니다. 
그래도 힘들고 지칠땐 고향만큼 좋은게 없을것 같은데 그런 고향이 사라져 버렸으니 이젠 어쩌면 좋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고향은 자주 가보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그곳이 있다는것만으로도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고 훗날의 
소망이 되는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어쩌면 시골에서 자라 시골에 여전히 고향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들에게 이곳이 아빠가 놀던 개울이고 저곳이 아빠가 날라다니던 산이란다. 저골목이 이런 사연이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안되네요.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요즘의 삶은 참 팍팍합니다.
웬지 어디론가 곧 돌아가야 할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짐을 풀지 못하고 살고 있는 나그네처럼 정붙이지 못하고 부질없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여전히 지금의 골목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린시절보다는 훨씬 넓고 깨끗하고 환한 길이지만 여전히 인생의 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쫒기듯 달리기도 하고 한숨
쉬며 걷기도 하며 이골목을 지나 저골목에 다다르면 이제 또 어떤 길이 내앞에 펼쳐질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한숨되어 나오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편히 쉴 수 있는 고향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고향이건만 어디엔가 그때 그모습 그대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것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사라져 버린 고향을 다시 만들기라도 해야되는걸까....전에 살던 똑같은 구조 똑같은 색깔의 맛없는 아파트들을 추억하며 
살아야 한다는건 정말 비극입니다. 자꾸 변해야 한다며 마누라빼고 다 바꾸자는 세상의 변신에 정말 이제는 멀미가 나옵니다. 
언제나 어지럽고 언제나 쓸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광야로 가게 하신것처럼 저도 등떠밀려 지금의 이인생 골목길에 이르게 된것이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편하고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는 이골목 저골목을 누벼도 그럴수록 자꾸 고향생각이 더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고향이 있는건지...윤수일의 아파트 가사에서처럼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는건 아스팔트빌딩숲뿐입니다. 
잘가꾸어졌을뿐 사람냄새 자연냄새 전혀 안나는 도심의 번듯한 공원도 신물나고 맛있고 달달한 잘포장된 먹거리들도 동네가게
에서 팔던 불량식품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품은 고향의 엄마품처럼 마냥 좋을까요? 
그곳은 예전 어린이날이나 생일날 그날의 아침처럼 두근두근 뿌듯뿌듯 마냥 행복할까요?
얼마나 많은 골목길을 더 걸어야 하는걸까...얼마나 더 아파야 하고 얼마나 더 슬퍼야하는걸까...
골목길을 걷고 있는 지금은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안아도 외롭기만 합니다.
그래도 정처없이 걷고 또 걸어봅니다. 돌고 돌아 정신차려보면 여전히 그때 그자리일지언정 가라고 하시니 걷고 또 걸어 길을 
떠나봅니다. 언젠가 고향보다 좋을 본향에 가면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나게 되겠죠.
아마도 가족말고는 김성수목사님을 제일 먼저 찾게 될것 같습니다.

목사님 만나면......만나면....참 좋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나서 제일 먼저 뭐하지?....그생각중입니다.
이제 달이 차오르면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듯 사람들도 힘들게 고향으로 갑니다.
고향 그곳에는 어머니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아주 오래전의 내가 있기 때문이겠죠.
언젠가 이지긋지긋한 아파트말고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다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마당 한구석에 복숭아나무나 사과나무나 레몬나무중에 딱 한그루만을 골라 심어 놓고 싶습니다.
한해 한해 그나무에 과실이 맺히고 아이들이 다녀가고 손주들이 다녀가면 이렇게 또 한골목길을 지나게 하시는구나 하며 
향기좋은 과일나무 아래에서 주님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마른먼지 풀풀 날리는 골목숲을 걷고 있습니다.
가야할길 가게하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이겠죠.

사랑하는 김성수목사님이 가신 길을 생각해보며, 그리고 앞으로 제가 또 가야할 길을 생각해보며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중 마지막 몇구절을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But I have promises to keep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그리고 나는 잠들기전 가야할 길이 있다.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니는 잠들기전에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이경란 14-09-13 08:28
    
기다린 글..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에는 너무 아까워
천천히 어릴적 추억하며 읽었습니다
제게도 그런 골목길이 놀이터였습니다
그  골목길이 그리워집니다
본향에 가면  저도 목사님께 달려 가렵니다
사랑하는 김성수 목사님에게로
골목길에서 달음질  할 때처럼  힘껏 달려가렵니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김미숙 14-09-14 09:02
    
읽어내려가다가 오늘도 어김없이 눈물 그렁합니다.
목사님에 대한 '그리움'이 뚝. 뚝. 묻어나는 조규만 님의 글을 읽는 게 저는 참 좋습니다.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서울에 가면 조규만 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뉴저지 서머나 식구들, 잘 계시지요?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김미숙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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