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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29 15:41
   우리 종완이 -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15,217  




우리 종완이는 제가 군대에 있던 1988년에 태어난 저희 큰누나의 둘째아들입니다.
얼마나 이쁘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종완이가 집에 온다고 하면 열 일을 제쳐놓고 

집에 와서 종완이와 놀았습니다. 둘째 조카인데도 유독 종완이에게 집착했던건 억센(?) 형때문에 늘 치이고 늘 맞기만 했던 

가여운 아이였던 이유도 있었지만 너무도 귀여운 외모와 성은 다르지만 외려 제일 저희 조씨 집안의 참한(?)성격을 갖고 

태어난 조카였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훗날 제가 첫아이를 갖게 되었을때 온집안식구들의 조카들이 다모인 가운데 응가 기저귀를 열었더니 다들 "우웩~" 하고 

도망가는데 우리 종완이는 제눈치를 보면서 "냄새 참 구수하다..." 하고는 옆에 있어주던 그런 착한 심성의 아이였습니다. 

디카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어서 종완이가 나온 사진을 누나에게서 많이 얻어와 보며 자주 못보는 아쉬움을 달래곤 

했었는데...우리 종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어느날 나쁜병에 걸려서 그만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렇게 황망하게 사랑하던 우리 종완이가 떠나던 그날 벚꽃이 그리도 날리더군요. 그날 생각했습니다. 

언제쯤이면 아름다운 벚꽃이 날리는걸 바라보며 다시 웃을 수 있을까......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 종완이를 데려가셨을까요

.........


요즘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30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올것 같아 정말 속상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게다가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이제 막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온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집단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처럼 자신의 일인양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낭랑 18세라고 하죠. 개인적으로 저도 제일 이쁘고 꿈많던 시절이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하고 제 큰아이도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어서 그런지 매일 속이 거북하고 토할 것만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때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신이 정말 있기는 한걸까.....왜 이런일 조차 막아주지 못하시는걸까...'
저도 생각해봅니다. 분명 세월호 침몰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일어난 일이겠죠. 하늘을 나는 새 한마리도 아무 이유없이 떨어

지지 않게 하시는 주님이신데 하물며 3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인데....당연한거겠죠. 

우리끼리 얘기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막아주지 못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이 있게 하신 일이라는 

겁니다. 그럼 그뜻은 무엇일까요...왜 하나님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것도 푸르디 푸른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신걸까요.

.......


최근에 상영한 '노아'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귀여운 인간들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철없는 조롱을 보았습니다.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는 영화였습니다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외려 재미있었습니다. 이영화는 성경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의 이야기인데 정작 영화에는 

하나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평에도 인간들의 생각, 인간들의 얘기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있는건 하나님이라는 신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라는 신이 인간들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나'에게 어떻게 해줄

것이냐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은 이래야하는데 저래서 맘에 안들고, 저랬어야 하는데 이렇게 했으니 우리가 그런 

신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조롱으로 보이고 들리더군요. 

교회 다닌다고 하는 분들의 반응이 외려 믿지 않는 이들의 반응보다 더욱 인간 중심적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인 우리 하나님이 저렇게 잔인한 하나님일 리가 없다는거죠. 방주에 올라 타려는 사람들을 쳐죽이고 뭉게

죽이고 단 한명도 태워주지 않고 문을 꼭꼭 닫아 버리는 하나님을 잘못 묘사했다고들 난리였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당대의 완전한 자인데 너무 잔인하고 부족하고 미숙하기만 하다는 거였습니다. 놀라운일이죠.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생각 속에 건조된 방주에 보이지는 않치만 자신들 만의 노를 달아 젓고 있으며 닻을 올리고 키를 

달아 항해를 합니다. 그리고 이리로 저리로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 방향으로 방주가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그 배, 그 방주안에 자기자신은 없다는걸 모른다는 겁니다.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방주가 아니라면 혹은 저런 방주가 아니라면 타지 않겠다고 우기는 놀이공원의 어린아이들과도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여운 착각은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릴것을 우린 알지만 방주안에 태워주지 못하는, 그럴 능력도 

없는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 많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방주는 원래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닻이나 키도 없고 열심히 노를 저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이끄심을 따라 몸을 맡길 뿐인거죠. 
지금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가 아픈건 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선장을 비롯한 몇몇의 노력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많이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분개하고 아파하는

것이지요. 선장이 처음에 배가 이상했을때 빨리 탈출하라고 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었을것이라는 점에서 선장

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아쉬움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장이 먼저 내려버린 무책임함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선장이 그저 좀 늦게 내린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을

런지는 모를 일입니다. 애초에 배가 문제였으니까요. 하여간 사람들은 이번 사건의 모든 잘못을 선장을 기준으로한 몇몇의 

사람들과 무능한 정부, 그리고 돈밖에 모르는 어른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는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보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늘 깜짝놀랄만한 공상과학 영화만 만들 줄 알았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전혀 자신의 기존 색채와는 다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작품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석권했으니 말입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흑백 영화로 진행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빨간코트를 입은 유태인 소녀가 하나 등장합니다. 

유태인들을 학살하며 분주히 뛰어다니는 독일군 사이에서 주인을 잃은 강아지 마냥 이러저리 뛰어다니는 빨간코트의 소녀, 

그소녀는 영화 속에서 결국 시체더미 위에 눕혀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마무리됩니다. 그죽음을 보게 된 쉰들러는 유태인들을 

도와 구해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영화는 아이의 죽음으로 구원되어지는 1100명의 유태인 구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필버그의 영화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누군가가 강하게 내민 손에 잡혀있는 사람의 손이 등장합니다. 바로 빨간 코트 입은 유태인 소녀의 팔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죽임을 당하지만 누군가가 강한 팔로 잡아주는 모습으로 구원된 듯한 모습으로 연출된 이 포스터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쉰들러가 구하고자 했던 많은 생명들, 그리고 결국 쉰들러가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는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건 빨간 코트 소녀의 죽음으로 인해서 가능했습니다. 

우리를 잡고 계신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이 조금이나마 느껴지시나요....


이번 사건으로 저는 하나님의 크심을 더욱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크심을 느끼게 했냐구요?  그건 제 생각과 지혜와 억지와 궤변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순진하고 어린 죄없는 

어린아이들이 죽어야 되는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있고 그런 하나님은 언제나 절대 

옳으시고 완전하시다는 걸 믿고 있다면 이번 일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답답해하는 우리의 아픔과 답답함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크고 원대하심은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종완이의 아버지, 저희 큰 매형은 지금까지도 저희 집안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입니다. 

어쩌면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가족 모두의 눈물 젖은 기도를 들으시고 종완이를 살려주셨더라면 큰 매형은 쉽게, 너무 자연

스럽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텐데...하나님은 그일을 그렇게 우리의 생각처럼 쉽게 허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을 믿기에 아프지만 기도할 뿐입니다. 마침 어제 설교시간 시간에 들은 말씀이 떠오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장33절)


김성수목사님이 몇번 얘기해주시곤 하던 장자의 호접몽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내가 꿈속의 나비로 변한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 속에 나로 변한것인가'하는 얘기말입니다. 

저는 매일 매일 토할듯 고통스러운 세월호 뉴스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이곳이 지옥인가 아니면 그들이 

그렇게 숨져간 바닷 속 그곳이 지옥인가하고 말입니다. 호접몽이 나오는 장자의 '제물론'에는 제자를 향한 장자의 이런 질문이 

있기도 합니다. "자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지. 그러나 미꾸라지는 어떤가?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나서 언젠가 떨어질 수 밖에 없을걸쎄, 그러나 원숭이도 그럴까? 그러니 인간과 미꾸라지와 

원숭이중에서 어느쪽이 '옳바른 거주지'에서 산다고 할 수 있겠나?"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우리의 누울자리를 찾듯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은 역시 아닙니다. 

지금은 아프지만 언젠가 새하늘 새땅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되는 그날 다알게 되겠죠.


사건이 난 그날 그시간....전 하나님이 그배를 바로 세워주거나 차오르는 물을 막아 주시거나 물에 빠진 아이들을 건져주지 

않으시리라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떠오른 생각이 마징가Z였고 로보트태권V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갖혀있는 그배를 확 끄집어 올려 줄 수 있는 로보트가 없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이내 그것이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얼른 남해바다로 가서 아이들이 빠져있는 그 바닷물을 다 마셔버리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님과 전국민이 바다에 뛰어들어 그 바닷물 다 마셔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는일 밖엔....


우리 종완이를 데려가시고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려가신 하나님을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의 방주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건 그거 하나인거 같습니다. 우리같이 작은자들 속에서 

이해되어지고 설명되어지는 하나님이 과연 큰 하나님일까요? 

다행히도 우리의 선장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옳으신 큰 하나님이심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뿐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포스터속 쉰들러의 뒤늦은 팔처럼 좀 더 일찍 그아이들을 잡아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내음이 담긴 사진과 영상과 흔적들을 보듬어 부벼가며 눈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어찌 이쁘기만 했던 자식이고 어찌 

늘 잘해주기만한 자식이었겠습니까. 미웠던 모습도 그리고 끝내 해주지 못했던 작은 칭얼거림들도 남은자들의 마음속에서 

파도에 씻기기만을 기다리며 사는 수 밖에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원작이된 토머스 케널리가 쓴 소설의 원 제목은 '쉰들러의 방주'입니다.
쉰들러의 방주가 쉰들러가 눈물 흘리며 내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다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방주였다면 우리가 타는 배는 노나 닻도 없지만 선장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출연하는 이 

세상 영화의 제목은 '노아'도 아니고 '노아의 방주'도 아닌 '하나님의 방주'라는 겁니다.


영화속에서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금니를 빼서 모아 쉰들러에게 감사의 표시로 반지를 만들어 줍니다. 

그 반지의 안쪽에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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