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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03 14:42
   (45) 새벽 단상
 글쓴이 : njsmyrna
    조회 : 6,937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의 프리웨이에는 차들의 불빛만 넘쳐납니다.
반대편의 전조등과 앞으로 늘어져 있는 붉은 등만이 대역을 이루며 늘어섰습니다.
빛은 넘쳐나는데 밝지가 않습니다.
이 이른 새벽에도 차들이 그렇게 많은 것에 새삼 놀라지만,
그렇게 많은 차들이 내는 빛으로도 길은 여전히 어두컴컴합니다.


그런데, 그 깨어지기 전의 어둠이 왜 이리 편안한지요?
우린 모두 속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거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이 새벽의 어두움이 해의 부재를 말합니다.
그래서, 빛을 소유하지 못하면 어두움이 본성인 죄인들이라
가리워진 빛을 없음이라 말하며 죄에 머문 여기가 편안한 것입니까?


예전에 친구들과 동해로 일출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가을, 이맘 때쯤 이었습니다.
그 신 새벽에 오들오들 떨면서 해를 기다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바다 저 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잔뜩 긴장해서 수평선을 주시하지만,

해는 더디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미 해는 거기에 있었는데 전 기어이 그 실체를 봐야겠다 여긴 겁니다.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 정작 해는 순식간에 떠버리고,
내가 정말 무엇을 기다렸나 수습하기 바빴던 마음도 기억합니다.
여명의 그 아름다운 붉음이 실체의 속성인 걸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렇게 드러난 빛에 사물이 얼마나 예쁘게 보이는 지는 제대로 표현도 못합니다.


봐야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담자고 담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알게 될 때 비로소

내 안에 소유되는 것임을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내가 찾아서 찾아지고, 그래서 관계하는 하나님은 이미 해가 뜬 다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 거기 계셨고,
어둠을 밝히실 때도 이미 환하게 만물을 보이실 때도 하나님은 존재 자체입니다.
어둠이 낮익고 편안한 것은 우리의 본성일테지요.
그것이 깨어지는 것이 '성도(saint)' 라 지어진 자들의 숙명이라면,
마지막 어둠이 아늑한 그 순간이 가장 우리에겐 복된 순간일지 모릅니다.


이제 곧 그 어둠이 부수어지고 스스로 불 밝히던 자아가 무력해지며
나를 치고 들어오는 그 빛에 아무런 저항 없이 온 몸을 맡겨야 할 때가 바로 그 때 일테니까요.


새벽의 하늘은 분초를 달리하며 그 아름다운 색을 뽑냅니다.
빛이 환히 비춰 온 만물을 밝히 드러낸 때 보다
지금 이 어둠을 가르는 하늘의 다양함은 훨씬 역동적입니다.
죄를 가르는 하나님 영광의 선명한 파워(power) 입니다.
그렇게 어둠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력을 가진 하늘나라의 이 땅에서의 보여짐이 새벽의 하늘입니다.
내 안의 죄는, 어둠은, 밤은 그렇게 매일 갈라져야 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향해 달려오다 처음엔 해를 찾았습니다.
이미 밝아져 오는 하늘은 관심도 없고, 내 눈에 해의 실체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시간에만 해가 해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해가 떠오르면 차들의 불빛은 이미 그 힘을 잃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렇게 힘을 내던 농염한 색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서로가 길을 비추며 앞 다투어 달려도

바로 눈 앞 밖에 밝히지 못하던 그 허상은 단 하나의 존재에 힘을 잃어버립니다.
아직 그 실체는 보이지도 않는데,

모든 것을 밝히 보이는 힘에 사람이 만들어낸 수 만 볼트의 빛은 민망해하며 자취를 감춥니다.


생각을 내 사랑으로 당겨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미 그 존재로 사랑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도 그 실체가 이미 사랑입니다.
눈에 보이고 잡히고는 언제나 그 다음입니다.
그래서, 함께 해도 서로가 내어놓을 사랑의 실체인 예수가 없으면 외로울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내가 저 안에 저가 내 안에 있는 존재로 가능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부된 존재가 그렇습니다.
장차 예비된 혼인 잔치 날에 내 신랑이 그렇게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참 존재가 빠진 이 땅에서 죄된 세상과 더불어 갈 때 함께 해도 외로운 절망을 배우는 거고,
지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서로가 관계하는 그 충만한 사랑을 또 배우는 것입니다.


Love is, knowing He's there.


서서히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며 밤이라는 시간을 깨고 쪼개며 빛이 들어옵니다.
기식하는 모든 것들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비추이기 시작합니다.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겐 밤새 장악했던 어둠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 안에 성령의 거울이 있으면 그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그게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화목입니다.


그 거울이 없어 삶에서 빛을 반사할 수 없는 자들은
생령이 없는 생명을 키우는 도구로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용합니다.
그 어둠 속에도 빛을 잃고, 빛이 없다고 외쳤던 자들은
이 아침의 밝아져 옴이 오히려 숨막히고 따분합니다.


빛을 기다리는 자와 어둠이 편한 자들이 똑같이 이 시간을 맞습니다.
원래 존재했던 실체에 대해 보고 감지하는 시각이 서로 다릅니다.
부여된 자만 볼 수 있는 어둠을 내포한 빛입니다.


이 하루에
나의 죄와 어둠과 죽음과 그것을 깨고 나오는 생명과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모두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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