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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6 08:55
   (32) 스마일 티쳐 (Smile teacher)
 글쓴이 : njsmyrna
    조회 : 6,999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계급 의식의 결핍' 인 것 같습니다.
사회 문제는 기본적으로 계급 간의 문제인데, 사회를 계급으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사회 문제에 대한 온갖 요란스런 논의는 모조리 헛소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저마다 '대한민국은 하나' 혹은 'united america' 라는 거짓 레토릭이
정당한 현실 비판을 먹어치워 버리게 만들며 결론을 언제나 '국익' 으로 끌고 갑니다.

산 자들의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이며 공통적인 국익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계급 사이에는 이해 관계의 모순이 있는데,
어떻게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이익' 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국익' 이란 실은 '지배 계급의 이익' 의 거짓 표현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배 계급은
하부 계급의 국민들이 '계급 의식' 을 갖지 못하도록 암수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노동자' 라는 말이 '근로자' 로 대체된 것이고,
계급은 계층이라는 말로 대체되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계급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층 지배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계급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매우 공격적으로 표시합니다.
"당신, 여전히 계급 의식으로 세상을 보나!"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아니 그런 사람일수록 제 삶에선 계급 의식에 철저합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번듯한 배경을 가진 청년이 보잘 것 없는 처녀와 결혼하려 할 때
그들은 계급 의식을 근거로 서슴없이 말합니다.
"안 맞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 계급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계급 의식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하부 계급의 사람들의 '계급 의식' 을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하나로 연합된 무계급의 국가가 아님을 알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이 사는 나라를 계급으로 나누어 보기 시작할 때,
지배 계급의 파국도 시작된다는 걸 그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말이지 계급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배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이렇게 불쌍한 인간들은 어떤 거대한 음모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세상 풍속이요, 세상을 지배라고 있는 '힘의 원리'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게 마귀가 부리는 '세상'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의 원리를 버리고 지배 계급의 호사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자신이 하부 계급에 속해 지금까지 상부 계급의 호의호식을 위해
뼈가 빠지게 일을 했다는 것을 밝히 알고서도 전혀 억울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의 머리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잔머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가슴은 이제 더 이상 남을 밟아 나의 욕구를 채우려는 탐욕과 이기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바보' 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에도 그런 바보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참 좋습니다.
제 곁에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제 대학 후배이자 우리 교회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인 순혁이 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 앞에서 우리 순혁이를 호칭할 때는 늘 'smile teacher' 입니다.

우리 큰 녀석은 순혁이의 평소 표정을 그대로 흉내를 냅니다.
늘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그 얼굴이 우리 아이의 얼굴에 그대로 재연이 됩니다.
캐리커처가 빛을 발할 때는 그 캐리커처를 그린 사람의 실력보다 모델의 특징이 아주 선명할 때 이듯이,
순혁이는 마냥 그 얼굴입니다.
그 얼굴에는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Cal tech에서 박사 학위를 한 그런 스마트한 모습도 좀체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차림새에는
이미 자신의 논문으로 세계 화학계를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는 근엄함도 없습니다.
그냥 만화에 나오는 어떤 순박한 농촌 총각의 웃음이 담긴 편안한 얼굴로
이리 저리 숨어서 제 할 일만 합니다.

저는 그런 순혁이가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왜 그에게 꿈이 없었겠습니까?
왜 그에게 야망이 없었겠습니까?
왜 그에게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 깨달은 사람이기에
순혁이는 그렇게 담담하게 계급을 초월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순혁이가, 복음을 안다고 하는 어떤 게으른 무리들처럼,
사회 생활을 등한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순혁이가 누구보다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오죽하면 그 어려운 학교 공부와 일을 하면서도 인터넷을 뒤져서 어딘가로 부터
한글학교 보조금까지 타왔으니까요.

우리는 절대 게으름으로 우리의 신앙을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부지런함이 나의 육신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지도록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뭉클하게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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