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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14 12:28
   (19) 향수 (Das Parfum)
 글쓴이 : njsmyrna
    조회 : 7,165  




파트리크 쥐스퀸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은 후 그의 책을 더 읽고 싶은 마음에 집어든 책이
'Das parfum' 이었습니다. '향수' 라는 뜻입니다.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어둡고 더럽고 칙칙하게 기분 나쁜 파리의 배경 묘사가 마음에 와 닿았던
그런 책입니다.

그 후로 그 쥐스퀸트의 소설을 독일에서 톰 티크베어 감독이 오 천만 유로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그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소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영화를 보았습니다.

쥐스퀸트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던 저는
그 영화 속에 매복되어 있는 보석 같은 메시지들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감동이었지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 속에 있던 감동을 글로 옮길 때 그 감동이 많이 훼손되고 깨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분명히 글은 감동을 투박하게 담아냄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 감동은 시간 속에서 소멸하고 인상 또한 기억력에서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향수는 향수라는 상품으로 직유 된 '사랑' 의 이야기입니다.
장 밥티스트 그루누이 라는 향수 제조공의 이야기를 통해
쥐스퀸트는 세상 사람들의 사랑의 모습과 사랑의 추구와 사랑의 결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합니다.
아니,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평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르누이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하여 모든 것을 던집니다.
그의 비상한 후각은 수 킬로미터 밖의 냄새의 발원지를 정확하게 집어내며,
향기의 성분이 몇 가지인지를 순식간에 파악해 냅니다.
적어도 그르누이가 꿈꾸는, 지상 최고의 냄새와 향기에 대한 취향과 감각력과 열정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고의 향기를 만들기 위하여 자연의 재료보다는
인간의 몸을 향기의 숙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인을 감행하지요, 최고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나, 도시를 뒤흔든 그의 살인의 행각은 결국 꼬리가 잡혔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지상 최고의 향수는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려는 수많은 군중과 신부를 사랑으로 현혹하였으며,
그 신비로운 향수로 인하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과 정열의 가장 고양된 체험을 갖게 됩니다.

그는 다시 풀려났고,
자신이 태어난 그 지저분하고 축축한 냄새가 나는 파리 허름한 곳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글을 읽으면서 혹은 영화를 보면서 토악질의 욕구를 처음 가져 보았습니다.
쥐스퀸트는 세상 사람들의 향기로운 사랑의 결론을
가장 악취가 심한 토악질 나는 파리의 어판 장 뒷골목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르누이는 자신이 머리에 뿌린 그 향수의 신비로움과 사랑으로 인하여
그 곳에 있었던 부랑자들에 의해 죽고 맙니다.
더러운 부랑자들은 그르누이를 흔적도 없이 뜯어 먹습니다.

향수에는 그르누이의 놀라운 열정, 죽음과 사랑이라는 두 불꽃이
심연에서는 같은 것임을 암시하는 멜랑꼴리(melancholy, 우울한, 침울한, 슬픈) 가 있습니다.
사랑의 향기는 죽음의 시체와 동류라는 것이지요.
사랑에 대한 우리의 열망과 죽음의 검은 레퀴엠이 '향수' 에서는 아주 강렬하게 내통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노예의 도시였던 1700년대 파리의 음산함, 악취를 물씬 풍기는 회색 도시의 그 컴컴한 골목,
그리고 향기의 기술성과 상업성이 극도로 응축된 향수를 둘러싼 상업 문화의 단면, 그게 세상인 것입니다.

그르누이는 매독에 걸린 여자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르누이는 자신이 태어난 그 축축하고 불쾌한 냄새에 의해 그의 후각은 극도로 발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최고의 고양된 사랑의 향기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던졌고,
그가 열 세 명의 여인들을 살해하기까지 채취해 내었던 사랑의 향기는 사람을 매혹시켰던 것입니다.

그의 사랑의 향기는 모든 것을 완성시켰지만,
결국 그는 그 향기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불우함이 열정을 만들었고, 그 사랑의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였지만,
그는 그 불우한 자리로 들어가 소멸합니다.

주일 새벽 두 시입니다.
설교 원고를 다시 정리하다가 창세기의 선악과 나무와 생명 나무를 하얀 종이 위에 그려 보았습니다.
쥐스퀸트의 소설이 선악과 나무와 생명 나무 중간에 걸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가 그린 선악과 나무와 생명 나무의 중간에 'das parfum' 이라고 써 넣었습니다.
선악과 나무를 통과하지 못한 자들의 결말을 쥐스퀸트가 잘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쥐스퀸트도 그 이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더럽고 악취 나는 파리의 뒷골목으로 결론지어지는 그런 '향수' 말고
찬란하게 영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가 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없는 자들의 사랑은 고작 그런 겁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런 더러운 욕망에서 배태된 사랑이 아닌 하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인간들은 에덴동산 이후로 생명 나무 콤플렉스를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그르누이의 삶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겨우 악취 나는 뒷골목입니다.
그리고, 그는 심판 속으로 던져지게 되는 것이지요.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네요.
글을 쓰면서 또 다시 감동의 훼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봄에 잠시 일상의 손을 놓고 쥐스퀸트의 책이나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로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심이 어떠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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