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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14 12:27
   (18) 꽃피는 고래
 글쓴이 : njsmyrna
    조회 : 6,815  




책 읽기가 소설로만 채워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안의 사람들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습니다.
읽는 장르가 다른 부분으로 옮겨진 지금도
소설은 언제나 적당한 탄성을 유지하며 나를 잡아당깁니다.

이 책이 어떻게 내 책꽂이에 있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합니다.
알던 서점이 폐업을 하며 싸게 넘긴 책 중에 끼어 있었지 싶습니다.
그렇게 쉽게 들여놨다고 다 쉬운 책이겠습니까?
읽으며 그런 유입 경로와 그로 인해 잠시 홀대했던 내 마음이 미안해지는 책입니다.
 
저자는 앞서 여러 책으로 낯익은 사람이고, 공지영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
바로 그것에 점수를 더 주고 있던 사람이지만,
마음 바닥을 헤집어 내는 솜씨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던 작가입니다.
내용은 열입곱에 부모를 잃은 주인공이 고래잡이 항구가 있던 부모의 고향으로 내려가
기억 속의 부모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고향의 이야기들로 그 마음의 상실감을 닦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나이에 나는 아직 부모님을 여의지도 않았고,
이런 종류의 상실감보다 오히려 애정으로 얽힌 기억이 더 많아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표현력은 늘 알아왔던 대로 진지하며 밀도가 높습니다.

한 때는 이런 고민, 이런 느낌, 영글지 못한 자들이나 내뿜는 거라 여겼었습니다.
'예수 알지 못하는 인생의 고민이 다 이런거지' 했습니다.
해답을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쓸데없는 소모전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류의 고민이라도 있는 사람이 반갑습니다.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 표현할 줄 아는, 내 감정의 원인과 과정,
결과에 진지하고 솔직한 대면을 할 줄 아는 그런 거요.
그게 주인공이 계속 물어오던 '어른이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전쟁을 겪고 누구나 살기 힘든 때를 지나며
뭉치면 힘을 발휘하는 민족성을 등에 업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자고 한 듯 합니다.

거기에 기복의 토속 신앙에 접목되어 버린 기독교는 어느새 성화로 탈바꿈을 하며
어서 어서 무엇이 되자는 구호와 결의로 둔갑을 해버렸습니다.
인생에 대한 고민도 탐구도 없이 그저 어른이 되자는 결심만 난무합니다.

정작 어른이 되고 자라남이라는 것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생각을 갉아 먹고, 생각이 사라진 삶에는 신앙도 원색적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니 이젠 이런 고민이라도 하는 사람이 반갑고 좋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감정의 골이 깊고 또 잦아 스스로 걱정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성적 기질을 깎으려 많이 애도 써 봤습니다.
튀어나온 부분은 다듬고자 했고, 꺼진 부분은 애써 돋우려 했었습니다.
누가 정해놓은 건지 알 수 없는 어떤 기준에 자꾸 나를 맞추려 했었습니다.
신앙이란 부분은 거기에 더 열심을 내고자 했고, 어떤 부분 실제로 변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스스로의 노력이 자라남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 산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말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마저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의 노력이나 애씀이 자라남이 아닌 오히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추락인 것을 압니다.
거기까지 내몰려야 보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내 손 끝의 힘이 빠질 때 비로소 나의 변화라는 것이 무용함으로 기쁘게 자각됩니다.

이 책을 보며 저의 예전과 지금의 경계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원래의 내 자리에서 절망하지 않고, 서슬 퍼렇게 세우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봅니다.
분명 저의 원래 자리는, 인본의 눈으로 볼 때, 결코 내세울 것이 없는 자리인데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볼 때 오히려 삶은 담담하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와 다시 보여지는 제 모습이 반갑습니다.
무언가 속에서 싹이 트고 순이 돋는 느낌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감정의 경험들과 부대낌이라 표현되는 행위들 속에서
새롭게 알아야 하는 것들이 남았을까요?
그 모든 것이 부어진 생명력으로 힘을 내는 것이라는 걸 올바로 자각할 수는 있을까요?

책을 보는 내내 새롭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감정 또는 이런 느낌,
처연하고 먹먹한, 버리자 했었는데 원래 내게 있던 그 것, 왜 이리 낯익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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