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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6 09:01
   44. 교회(12) - 교회와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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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5,003  


(골1:25-29)
25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파하라고 맡기신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
27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 가운데 나타난 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요,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려고 모든 사람에게 권하며,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나도 이 일을 위하여, 내 속에서 능력으로 활동하시는 그에게 힘을 얻어서 수고하고 있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교회는 온전함(텔레이오스, perfect)를 향해서 (카타르티스모스)온전하게 되어져 가는 과정 속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그 삶을 신앙생활이라고도 부르고 나그네 인생길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마땅히 올바른 말씀과 올바른 성례와 올바른 권징, 치리를 행사함으로 교회의 멤버들이 거룩하고 온전하게 지어져 가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함을 성경을 통해 확인을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그렇게 온전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 지어져 가는 길에 하나님의 방법이요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지상의 교회라면 그 지상의 교회 안에서의 직분은 어떻게 정의가 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이미 결론은 내려졌지요? 교회의 직분이라는 것이 거룩하게 지어져 가야하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니 만큼 교회의 모든 직분도 역시 성도들의 거룩함을 위해 성도들의 온전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엡4:11-12) 11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회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12    그것은(그러한 직분들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맞지요? 교회는 이렇게 온전함을 향해(perfect, 텔레이오스)로 자라가야 하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교회가 소유한 것을 새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새 신분, 새 운명, 새 지위“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데 굳이 새 생명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은 ”자라남“이라는 힌트가 그 단어 안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자라남‘에 기여하는 것이 교회 자신이요 또 교회 안의 직분들입니다.
 
이 지상의 교회는 여러 종류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에 조직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영적인 유기체입니다. 유기체라는 것은 한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하나의 생명으로 통일이 된 유기체에 왜 조직이 필요한가?
 
유기체인 교회라는 것은 천상의 완성된 교회, 영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의 가시적인 교회는 그 자체가 유기체는 아닙니다. 많은 가라지 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아직 온전한 유기체로서의 삶을 배워야하는 이 광야 땅을 살아내야 하고 여전히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그들이 함께 모이는데 비가 오면 비를 피해야 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도 막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일손이 필요하고 그 일손들을 규모 있게 움직이는 리더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데에 있어서도 여전히 인간이 가진 한계 때문에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일들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그 일을 감당해 내기 위해서 조직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당연히 그 조직에는 직분과 직책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유다처럼 돈궤 맡은 자가 있었던 것처럼 당연히 공동체에는 직분과 직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직분이라 함은 직무상의 본분을 말하는 것이고 직책이라 함은 직무상의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이 모두 완전하게 성화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왜 그러한 ‘질서’가 필요하며 왜 조직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곳에는 영 우리와는 딴 길로 가고 있는 “프쉬키코스”도 있고 새 생명을 받기는 받았는데 지금 젖이나 이유식을 먹고 있는 “살키코스”들도 있고 성숙한 “프뉴마 티코스”도 있고 하기 때문에 조직과 질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면 금방 난장판이 되어버리게 되니까요.  왜 목사만 설교를 합니까? 집사들도 돌아가면서 설교해도 되잖아요? 왜 교회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지요? 질서의 차원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뭐 대단한 것을 배운다고 신학교를 졸업해야 목사 안수를 줍니까? 질서의 차원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신학교 졸업한 가짜들도 얼마든지 많아요. 그러나 질서의 차원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목사 안수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안수도 꼭 안수 받은 목사들과 장로들이 안수를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꿈에 계시를 받고 와서 “하나님이 오늘부터 나더러 목사를 하라고 그랬다”하면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안수 주고 설교시키고 할 거라고요. 그러면 개나 소나 다 목사 되고 성경 가르치고 그렇게 되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질서의 차원에서 조직과 직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러한 교회 공동체의 직분과 직책은 모두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러한 직분과 직책이 조직체의 ‘운영’으로 초점이 맞춰지면 안 되는 거예요. 교회는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 안에서의 직분과 직책이 세속적 교회들이 추구하는 훌륭한 운영, 이윤이 남는 운영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교회의 직분 자들은 모두 세상의 전문가들로 구성이 되는 것이 제일 이상적입니다. 정말 교회의 일이라는 것이 그런 세상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으로 잘 되어가던가요? 대학교수님들이 주일학교 교사 잘하는 것 보셨어요? 성악가들이 성가대에 들어가서 그 성가대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셨습니까? 훌륭한 CPA가 교회의 재정을 맡으면 교회의 재정이 훨씬 좋아지나요? 교회의 일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직분 자들의 조건을 제시할 때 그들이 가진 능력을 논하지 않습니다.
 
(딤전3:1-13) 1  이 말은 옳습니다.( 주석자들에 따라 '이 말은 옳습니다'를 3:1 하반절과 연결시키기도 함.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이 말은 일반적으로 용납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에피스코페스, 내려다 보다, 돌보다-목사나 장로 그리고 그 밖의 사역 자), 그는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받을 일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인색하지 않으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않으며, 난폭하지 않고 너그러우며, 다투지 않으며,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4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아주 공손히 복종하게 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5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6    또 새로 입교한 사람도 안 됩니다. 그러면 그가 교만해져서, 악마가 받을 심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7    감독은 또한,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비방을 받지 않으며,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으며, 술을 탐닉하지 않으며,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으며,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10    이런 사람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책망받을 일이 없으면, 집사의 일을 하게 하십시오.
11    이와 같이  여자들도 신중하며(또는 '그들의 아내들' 또는 '여자 집사들'),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성실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13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들은 좋은 지위를 얻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 자들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고, 가정을 잘 다스리고, 술을 즐기지 않고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 어디 ‘교회의 직분 자는 돈이 많아야 하고 경영 능력도 있어야 하고 추진력도 있어야 하며 머리도 좋아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까?
교회의 직분 자들은 성도들의 온전함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지 결코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해서 훌륭한 업적을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직분과 직책이라는 것이 성도들의 온전함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 교회 안에서 제일 중요한 분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을 온전하게 만들어 천국에 데리고 가고 싶으셔서 하나님께서 소모품으로 세우신 것이 바로 직분 자입니다. 목사가 그렇고 장로가 그렇습니다. 안수 집사가 그렇게 사역자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모되어져 가면서 그 직분을 통해 직분 자 자신들도 거룩하고 온전하게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이라는 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목사, 장로, 어떤 부서 팀장, 어떤 부서 회장, 부회장 이런 자리는 그 자리에 앉을 만한 능력이 있어서 앉게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앉혀놓지 않으면 그나마 신앙생활도 잘 하지 못할 사람들을 앉히시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목사를 시켜놓지 않으면 절대 주일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할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목사를 시켜서 꼭 붙들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재미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꼬박 꼬박 주일을 챙겨요? 제가 목사가 아니면 무슨 이유로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자면서 성경을 공부하겠습니까? 보고 싶은 영화, 소설, 뮤지컬, 콘서트,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요. 전 절대 그렇게 제 자의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자식 성경은 읽혀야겠고 다른 것은 몰라도 주일정도는 지키게 해 주시려고 목사를 시켜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목사라는 직분은 저를 거룩하게 만들고 아울러 저의 그 직분으로 말미암아 다른 지체들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직분입니다. 여러분은 목사 안 시켜도 신앙생활 성실하게 하실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냥 놔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교회의 직분이 교회의 계급이 되어 버렸습니다. 목사 밑에 장로, 장로 밑에 집사, 집사 밑에 평신도 그렇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는 계급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거룩이라는 목표지점을 향해서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연결되어 가는 형제자매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 목사, 장로, 집사 다 없애 버릴까요? LA에도 그런 교회 있지요? 그 교회에는 목사만 있어요. 그럴 거면 목사는 왜 있습니까? 우리도 다 없애 버릴까요? 어떤 분들은 “교회는 직분 자들 때문에 망했다“고 폭언을 서슴지 않으시면서 ‘목사 장로 집사 제도를 없애자‘라고 분개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별로 그렇게 좋은 소리도 못 듣습니다. 그런데 왜 직분 자들이 필요하지요? 교회의 거룩을 위해 필요하다니까요. 그렇게 실수 많고 흠 많고 여물지 않은 직분 자들의 실수와 실패로 본인들이 큽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 속에서 신자들이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여러분이 보시기에 엉터리 같아 보이는 장로, 집사, 목사, 사역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무슨 일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직분 자와 신자들이 함께 손을 잡고 거룩을 향해 지어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재정 운영을 잘 못해서 교회 전체가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당사자와 교회의 멤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배워야 할 뭔가를 배웠으면 되는 거예요. 집사들이 담합을 해서 엉터리 같은 목사 데려다가 부흥회를 했어요. 그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진짜 교회가 “참 세상에는 가짜들도 많구나.” 라는 것을 배웠다면 그것은 “잘 한 거예요”
교회는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만 배우면 되는 거예요. 그거 야무지게 배워서 졸업학점 채우면 하나님께서 불러올리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에 그가 한 일을 가지고 평가를 합니다. 그것을 성과주의, 세속주의라고 합니다. 보리 고개를 없앤 박정희 대통령, 소 한 마리 팔아서 자수성가한 정주영 회장,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 이등 박문을 암살한 안중근 이런 식으로 그들이 해 놓은 일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해 놓은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를 행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행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능력으로 만들어 내놓는 업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7:15-23) 15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따겠느냐? (분명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열매가 있습니다)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열매는 자기가 맺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가 맺는 것입니다. 그 좋은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로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라 ‘이런 열매는 아니다‘라고 21절부터 확실하게 첨언을 하십니다)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열심을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궁금하지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가?)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분명 무언가를 행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지옥으로 떨어져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뭐가 잘 못된 것이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것이 나쁜 일입니까? 아니죠.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도들이 행했던 일들 아닙니까? 분명 행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똑같은 일을 한 어떤 사람들한테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사도들이 행한 행함과 그들이 행한 행함이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바로 다음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마7:24-27) 24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은 엄청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한 일 그러니까 예수를 알고 복음을 알고 행한 일은 좋은 열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한 것이 아닌 것 그러니까 복음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행한 행함은 모두‘지옥에 들어갈 일’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하고 난 뒤에 그것이 ‘자기의 열매’가 되어서 자기 자랑이 되고, 자기 의가 되어서 주님 앞에 가서도 저는 “이러 저러한 일을 분명히 했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제시를 하는 자는 따 가짜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고도 그것을 자기의 자랑으로 차곡차곡 쌓아 놓은 사람들은 오히려 지옥에 들어갈 범죄 행위를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일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하는지 아시겠지요? 자칫하면 열심히 해 놓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결과가 나오니까요. 그러니까 자신 없으면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상책입니다.
 
(눅17:7-10) 7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그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8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무슨 일을 하고도 전혀 생색을 낼 수 없는 무익한 종으로 일을 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전혀 자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전혀 자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 때, 양과 염소의 심판 때 양들이 자기들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자기가 한 일을 가지고 자기를 증명하고 자기의 자랑을 삼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25:31-39)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자기 앞으로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할 것이다.
 
 ‘너희가 이러저러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천국에 보낸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갸우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했지?‘ 전혀 기억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우리의 ‘행할 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양들이 한 일이 전부 어떤 일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에 동참한 일이지요? 우리 주님이 주리셨을 때 주님께 음식을 드리고 우리 주님이 목마르실 때 주님께 물을 드려 마시게 하고 우리 주님이 나그네 되셨을 때 주님을 영접하였고 우리 주님이 벌거벗으셨을 때 옷을 입혔고 우리 주님이 병드셨을 때 수발을 했고 우리 주님 옥에 갇히셨을 때 찾아가서 뵈었다고 합니다. 이게 “우리 성도들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어떤 업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선교를 해서 5,000명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 보자고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5,000명이 돌아 온 것이 아닙니다. 그건 어차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선교에 참여한 사람들이 선교활동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되고 인내하게 되고 온유한 심령으로 변해가게 되는 것을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기도를 열심히 해서 병이 나은 것을 열매라 하지 않습니다. 병든 사람이 그 병을 통해 인간의 유한함과 생명의 부질없음과 하나님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을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해서, 사업을 잘 꾸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자로서 뽄떼를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가 아니라 사업이 망했어도 하나님으로만 기뻐할 수 있는 그 그리스도인의 희락을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요, 직분 자들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온유함 같은 열매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환난이 없이 어떻게 인내를 배웁니까? 고통이 없이 어떻게 하늘의 희락을 깨닫습니까? 훈련교관이 없이 어떻게 온유함을 배웁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그러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열매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조금씩 맺혀지기 때문에 양들이 나중에“우리가 언제 그랬어요?”라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들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에 의해 맺혀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나무인 예수님께 붙어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개념이 바뀌게 됩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일을 절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 일들을 통해 나를 만져 주시고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며 내 안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배반을 당하고 때로는 멸시를 당하고 때로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내 안에 그리스도가 맺으시는 열매가 맺혀진다면 그 삶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 나 같은 인간은 그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시키셔서 이렇게 열매를 맺어가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게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어떤 보상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벨이 어떤 보상을 받았습니까? 가인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노아가 심판 전날까지 무슨 보상을 받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만 되었지요? 바울을 비롯한 우리 사도들이 예수를 믿고 어떤 보상을 받았습니까?
죽도록 두들겨 맞기만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이 세상의 것으로 보상을 받았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거룩을 따라 우리도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하게 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거룩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고난이요 환난이요 핍박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환난을 당하느냐? 기뻐해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도 여러 직분 자들이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명심하십시오.
그 직분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며 교회의 온전함을 위해 쓰여야 하며 자기 자신의 거룩을 훈련하는데 쓰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분이 하는 일은 절대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때로 그 직분으로 인하여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을 겪게 된다하더라도 여러분은 그 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잘 참아내십시오. 그리고 나의 거룩을 위해 그 일에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나는 나의 자랑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형제자매들의 온전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자신을 드러내지 마시고 남을 높여 주시고
많이 들어주시되 말을 많이 하지는 마십시오. 불평불만을 공론화 시키지 마십시오.
우리는 불평과 불만이 생기게 되면 그 일과 관계된 사람들 그 불평불만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놓고 기도를 하기로 한 그리스도인들 아닙니까?
그런데 왜 뒤에서 불평을 하고 불만을 가집니까?  거기는 두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난 그래서 거기 참여 안 할 거야’라는 불참에 대한 변명이거나 ‘난 그럼에도 참여 한다’라는 교만한 마음 둘 중에 하나입니다. 제발 좀 더 성숙해 지십시오. 그런 불평과 불만은 전염이 강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불만으로 다른 형제자매의 신앙에 악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논쟁하지 마십시오. 논쟁은 지면 억울하고 이기면 원한만 남기는 것이 논쟁입니다.
각 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만 열심히 하세요. 자기의 거룩만 열심히 챙기십시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표어를 하나 지었습니다. 아마 제가 은퇴할 때까지 우리 교회의 표어로 쓸 작정입니다. “너나 잘해”
 
여러분이 각 자가 맡은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면서 섭섭하고 불만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생길 때 늘 기억하십시오. “너나 잘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참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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