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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6 08:59
   42. 교회(10) - 사랑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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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4,550  


(고전11:17-34)
17    다음에 지시하려는 문제에서는, 내가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이로움을 주지 못하고, 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18    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서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밝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서도 당파도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20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21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음식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에게는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드시어서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위하여 깨어진')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시십시오.
29    주님의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죽은(그, '잠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3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32    그런데 우리가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아서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33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유일한 목적이 뭡니까?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뭡니까?
그럼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져내셨습니까? 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조해서 이 땅에 던져 놓으신 것입니까? 거기에 대한 탁월한 대답이 바로 이사야 43장입니다. 그 중 두 절만 찾아 읽고 넘어가겠습니다.
 
(사43:7,21) 7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고전6:19-20) 19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0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고전10: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어떤 삶입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까? 축구 경기에서 골 차 넣고 상대방 골키퍼는 낙심해서 풀이 죽어 있는데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까? 어떤 삶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영광이라는 단어 “독사”라는 단어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의 내용이 밝게 밝혀지는 것을 “독사,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 속성, 거룩하심, 아름다움, 존귀함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내용들이 신자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그 하나님의 속성, 성품이 가시적으로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헬라사람들이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담을 허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드실 날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을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다 표현이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십자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십자가에는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를 가까이 하실 수 없는 거룩하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과 그 저주 속에서 그들을 건져내시는 “사랑” 그러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 분의 속성이 함축되어 표현되어 있기에 그 십자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성품, 속성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속성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이 있지요?
거기서 독생자 “모노게네스”라는 말은 단순히 only son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단어는 “독특한 것, 사랑 받는 것, 유일무이한 것을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가장 귀한 것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을 한마디로 요약한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 신자들이 이 땅에서 반드시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정도의 국어사전에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원수를 위해 내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해야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떤 율법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왔을 때 ”주 너의 하나님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10:25-28)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2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27    그가 대답하였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마5: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다시 한 번 확인하지요?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본무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자들을 우리가 “거룩한 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가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엉뚱한 일들을 하다가 다 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성찬식이라는 것은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복음”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먹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된 자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세요.
 
(고전11:25)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고대 사람들이 언약을 할 때는 항상 제물을 쪼개놓고 피의 언약을 한다고 했지요?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쪼개놓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새로운 언약을 하시는 사건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타락으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되어, 재창조되어,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성찬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찬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거의 매일 성찬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성찬식도 지금 로만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이렇게 작은 떡과 작은 포도주 잔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도들이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니까 potluck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아주 가난한 노예들이나 잡상인 같은 하층 평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부자들은 시간이 많았고 먹을 것도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일 때 미리 와서 좋은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을 기다렸습니다. 노예들이나 가난한 상인들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문 닫고 정리하고 그 교회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니까 집 안의 식당과 거실은 이미 부자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고(50-60명 앉았다) 노예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감히 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의 뜰에서 밥을 먹고 성찬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부자들이 다른 교회의 지체들이 오기도 전에 자기들 배가 고프다고 미리 음식을 다 먹어 버리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얼큰하게 포도주에 취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나중에 늦게 온 사람들이 먹을 것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버려서 나중에 온 사람들이 쫄쫄 굶고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을 것을 준비 할 수도 없는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밥을 못 얻어먹고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주 심하게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고전11:22,34) 22    여러분에게는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이 책망은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교회에 사랑이 없느냐”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공부할 때 배웠지만 교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교회는 육적인, 물질적인, 유물론 적인 세계관과 그러한 원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영적인 것으로 판단되고 정의되고 영적인 원리에 의에서 움직여지는 ‘조직이 아닌 하나의 몸’인 것입니다.
 
(요6: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골3:9-11)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거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시요,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교회는 그가 처해있는 문화나 관습, 그리고 (각자의 세계관을 형성케 한) 과거의 경험이나 상처 등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인식하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주인과 노예라는 신분으로 살았던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신분 적 편당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당하고만 살았던 하층 서민 출신들이 자신들의 상처나 쓴 뿌리들을 여전히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자기 자신들을 부끄러워하였고 부자들을 시기하고 미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은근히 그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먹든 말든 상전들인 자기들만 먹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과 그들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상실감과 미움으로 가득 찬 어처구니없는 성찬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로 여러분의 신앙의 경중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얼마나 열심을 내느냐“보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인다.”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아십니까?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열심히 모였습니다. 열심히 성찬식도 거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엉터리였습니다. 많이 모여서, 열심을 내서 얻은 결론이 뭡니까?
 
(고전11:27-32)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시십시오.
29 주님의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3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32 그런데 우리가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아서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열심히 죽어라고 모여서 성찬식을 행했는데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잘 못된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아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알긴 아는 것 같은데, 알면서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왜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안다” “기노스코”라는 것은 어떠한 내용이 내 안에 바로 인식이 되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을 “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과 행동이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른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랑하지 마시고 그 앎이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바로 알고 계십니까? 그 바로 알고 있는 내용을 근거로 열심을 내고 계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알지도 못하고 열심도 안내고 계십니까? 바로 알고 믿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타락으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되고, 재창조되어서(새롭게 창조되어)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육적인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등을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거기까지가 복음을 바로 아는 자들의 삶입니다.
 
교회 안에서 “명예가 있고 없고, 돈이 많고 적고, 얼굴이 잘 나고 못나고,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의 모든 육적인 차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잘 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 아무리 못 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대가로 치러진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식을 행하면서 서로에 대해 아껴주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다시 재차 확인하시고 다짐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0:16-17)  16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삶은 여전히 교회 멤버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입만 열면 험담하고 남 잘되면 배 아파하고 그러면서 열심히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성찬식하고 한다면 그게 어찌 바로 알고 믿는 자들이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자들은 가짜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니, 가짜 정도가 아니라 그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라고 말합니다.
 
(고전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전8:9-13) 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어떤 약한 사람이, 지식을 가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는 것을 보면,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그를 본떠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약한 신도는  여러분의 지식 때문에 망합니다. 그리스도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12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나의  형제자매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면, 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교회의 멤버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무시하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독하는 것이고 그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로만 카톨릭이나 무지한 개신교 목사님들이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지은 죄들을 다 회개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죄라고 협박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말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그러한 죄 때문에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는 수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해야 할 가장 크고 훌륭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교회의 멤버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무시하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독하는 것이고 그것은 죄이므로 바로 알고 성찬식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바로 알고 행하라는 것이지요.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거룩하게 보여도 다 그리스도의 몸을 욕되게 하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자들인데 하라는 사랑에는 관심이 없고 성찬식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봉사만 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입니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나 이물질이 들어오면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항체라는 것을 형성합니다. 자기 자신의 몸속에 있는 세포에 대해서는 절대 그런 항체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에 있는 조직에 대해 스스로 항체를 형성하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가 면역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자기 몸의 연골이나 신장, 간, 갑상선 같은 것을 그 항체가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 “자가 면역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것이 그런 것이지요. 자기 몸의 항체가 자기 몸의 조직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자꾸 분열을 초래하고 교회 멤버들을 미워하고 하는 것은 자가 면역성 질환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서서히 죽여 가는 중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또 찢어  발기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큰 죄인 것입니다.
 
(마18: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형제나 자매를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구원을 취소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구원이 취소 될 수는 없지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십니까? 그런 행위가 안 나오면 지옥 간다는 말이 뭐예요? 교회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행위가 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5: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창녀에게 이렇게 저주의 말을 퍼부으신 적 있으신가요? 예수 님 곁에서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살인강도에게 그런 저주의 말을 하셨습니까?
유독 형제를 용서하지 않고, 형제를 미련하다 하고, 형제에게 노하고 형제에게 “이 밥통 같은 놈아”라고 모독을 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들먹이시며 너희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늘 말조심하시고 남 욕하지 마시고 뒤에서 험담하지 마시고 헐뜯지 마세요. 자꾸 자기에게서 그런 행위가 나오면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주님 앞에 도우심을 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늘 잊지 마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셔야 하는 한 몸입니다. 오히려 내가 손해보고 , 나를 죽여서 상대방을 살려야 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골3:12-15)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4)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롬15:1-7)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2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5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
6    한 마음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의 기쁨을 위해 살라고 보내진 자들입니다. 그게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이고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이 드러나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뭐 대단한 것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거 연습하다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연습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쉬워요. 오늘 본문33절을 보세요.
 
(고전11:33-34) 33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리십시오.
34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모이는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밖에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아주 간단하지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그러십니까? “제발 예배당 좀 크게 지어다오” 그러십니까? “헌금 좀 많이 해다오” 그러시나요? 아닙니다. “나중에 굶는 형제들이 생기지 않도록 밥 먹을 때 좀 기다려 줘라, 정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먹고 와라”입니다. 나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배려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큰일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조금 섭섭하게 대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게 만든 지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여러분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해 버리면 안 됩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어려서부터 사랑을 못 받고 자라난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금방 실망하고 삐진다고 하던데 저 사람은 그런 불쌍한 환경에서 자랐나보다” “남에게 늘 학대만 받던 사람들은 굉장히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던데 저 사람이 바로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겠구나.”하고 다양성을 인정해 주세요. 그리고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기도해 보셨습니까?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생각하며 얼마나 기도해 보셨습니까?
 
저는 오늘부터 다음 주일 예배 때까지 금식하면서 그 문제만을 놓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너무 이기적입니다. 너무 계산적이에요. 이제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삽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이 뭡니까? 거품 물고 쓰러지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까?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까?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성령의 조명을 따라 하나 됨을 지켜내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실 생각 마시고 곁에 있는 형제자매를 먼저 사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3절까지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엡4:1-3) 1    그러므로 주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십시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으십시오.
3    여러분은,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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