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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6 08:55
   38. 교회(6) - 교회의 본무(本務) (3)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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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3,682  


(엡4:1-6)
1    그러므로 주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십시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으십시오.
3    여러분은,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한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5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또는 '천지 만물')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계속해서 교회 론을 살피고 있습니다. 교회론 여섯 번째 시간이고 교회의 본무 3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교회의 본무는 거룩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쁘고 달갑게 받아들이는 자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율법이 우리를 얽어매는 정죄의 수단, 혹은 우리를 구원하는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하나님 백성의 성품이요 삶의 방법이기 때문에 그 율법을 즐거워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연습하고 훈련하고 하면서 그 거룩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가야하는 자들임을 아울러 확인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그 거룩은 나오지 않고 “아멘” “할렐루야”만을 외치는 종교 행위는 마치 청와대에 들어가서 5년 내내 대통령 일은 안하고 “난 청렴해” 이거 알리기 위해 칼국수만 먹다 나온 어떤 양반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짓인 것입니다. 칼국수만 먹지 말고 나라를 책임지는 자로서 일을 했어야지요. 요즘 교회가 그런 겉만 번드르르한 종교행위들 만을 하고 있다니까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이 땅에 서 있어야 하고 그 나라를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의 삼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주권 즉,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한국에 있는 미 대사관은 어느 나라입니까? 미국입니다. 주한 미군 영내에서 한국 법이 통용됩니까? 아니요. 그곳은 한국 영토에 자리 잡고 있지만 조지 부시의 통치 아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미국인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토도 백성도 아니고 바로 통치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도 그 통치에 항복하는 순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그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순종의 모습을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당위성에 대해서 조금 더 강조를 하고 오늘의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우리가 교회론 첫 시간에 공부한 마태복음16장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도로와 그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하나님 나라의 열쇠까지 주셨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20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
 
(마16: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요?  분명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든가 개인 구원에 관한 주님의 구속사건, 그리고 그 분의 수난에 관해서는 공생애 초기부터 언급을 하십니다. 니고데모에게도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인자가 광야의 놋 뱀처럼 들려야 한다고 자신의 수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십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요구되고 있는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때까지 비밀에 부치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의 수난이 뭐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백미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 순종을 전제하지 않고는 세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그 통치권이 발휘되어야 하는 곳이기에  예수님께서 교회에 관해서 만큼은 그 순종의 예표인 예수님의 수난 때까지 함구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무슨 업적을 쌓고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너희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자답게 합당하게 행하라는 구절의 “합당하게”는 “악시오스”라는 말인데 그 말은 의복에 대해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에게는 합당하지만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옷이 있지요.
80세 되신 할머님께서 빨간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 신으시면 이상한 것처럼, 낭랑 18세가 고쟁이를 입는 것도 이상하지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입어야 할 어울리는 옷이 있는 것입니다. 그 옷을 입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고 그 옷이 바로 순종이라는 옷인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 순종의 옷을 입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을 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바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은 같은 것이죠.
 
우리가 이것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놓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 그 분의 뜻, 그 분의 요구, 통치권 그런 것보다 나의 기쁨, 나의 행복으로 신앙을 정의합니다.
그래서 교회 일도 자기의 만족, 자기의 기쁨, 자기의 행복, 자기의 자랑을 위해서 하게 됩니다.
 
(롬10:2-3) 2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고 자기 기쁨과 만족을 위한 것은 복종치 아니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원리와 방향을 상실한 것입니다.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나름대로 열심을 부려 보겠다고 제사에 쓸 좋은 가축을 살려서 데리고 온 사울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른 것처럼 ,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른 것처럼 우리의 구원에 감격하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해야할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이제 할 일은 없다” 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교회로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자리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요? 바로 순종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 그 예수님의 순종을 살아내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것인데 하나님이 저것을 하라하면 기쁘게 그 길을 가는
자기 부인의 삶이 바로 교회의 삶인 것입니다.
 
나는 부자로 살고 싶지만 아버지가 내게 가난하고 병든 삶을 살아달라고 하시면 그냥 안달복달하지 않고 그렇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난 왜 이 모양으로 생겼을까를 고민하지 마시고 나를 보며 위로 받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밤12시에 라면 두 개 끓여 먹고 자도 살이 안찌는 체질이 되게 해 주세요”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식탐을 절제 하라고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을 주셨으니 그렇게 절제하면서 살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은 전부 “네가 최종 결정권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아담에게도 분명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그 통치권을 엎어버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도 “넌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이 돌이 떡이 되게 해봐. 성전에서 뛰어내려봐, 내게 절만 해. 그럼 저 세상을 다 줄게”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십니다. 자신이 순종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천명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신자들의, 교회의 신앙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롬1:5) 우리는,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이방 사람으로 하여금 믿어서 순종하게 하려고, 그를 통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까? 순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롬16:25-26) 25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비밀을 계시하심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굳세게 하여 주십니다.
26    그 비밀이 지금은 예언자들의 글로 밝히 공개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네, 우리의 믿음은 순종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하는 자들에게 이런 명령이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교회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시는지 보세요.
 
(벧전1:14-16) 14    여러분이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으니, 전에 알지 못할 때에 가졌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 거룩한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16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룩과 순종은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순종은 거룩을 향해 가는 길이고 거룩은 순종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에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교회야, 너희는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순종해야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왜 우리에게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라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아울러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것이 어떻게 거룩과 순종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까지 공부를 하겠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입니다. (union christ)하나로 연합된 자들입니다.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라는 것은 바로 그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으로 연합된 현실을 교회는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인데요.
 
(롬12: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에 한 몸인 지체들끼리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늘 확인하고 그 하나 됨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보세요.
 
(갈5:19-21) 19    육체의 행실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21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질투와'와 '술취함' 사이에 '살인'이 첨가되어 있음), 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교회가 경계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 중에 부도덕한 일 빼면 다 뭡니까?  전부 하나 됨을 깨는 것입니다. 교회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뭔가요?
 
(갈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교회가 하나 되게 하는 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 되게 함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합니까?
 
1    그러므로 주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십시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으십시오.
3    여러분은,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열매와 똑같죠?
이렇게 이 땅에서 교회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는 결국 우리가 하나 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거룩한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고 그 성령의 열매는 결국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 거룩을 향해 가는 길이고 그 길에 필요한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고전6:1-8) 1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걸어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지으려고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소송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할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겠거늘, 여러분에게 가장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겠습니까?
3    여러분은, 우리가 천사들도 심판할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 일들이겠습니까?
4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문제에서 생기는 소송이 있을 경우에, 여러분은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세우겠습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들(형제)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 줄 만큼 지혜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신도가  신도와 맞서 소송을 할 뿐 아니라, 그것도 불신자 앞에서 한다는 말입니까?
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스스로가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는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교회의 하나 됨이 혹 깨지게 된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가 됨을 힘써 지키는 것은 그렇게 자기의 정당함을 입증하는 것이나 자기의 유익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내가 옳으냐 그르냐를 증명하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내가 옳으니까 저 놈은 벌을 받아야 된다는 정당함을 입증하고 주장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킴으로써 그런 실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분명 교회 안에서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런 시험이 올 때가 있습니다. 확 관계를 깨고 싶은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험을 통해서 용서와 인내와 사랑과 온유 같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실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 시험이 올 때마다 관계를 깨버리면 어떻게 그 성품을 배우겠습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떤 시험 문제를 냅니까? 누구나 다 아는 쉬운 문제를 시험 문제로 내는 선생님은 없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모를 것 같은, 가장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은 것을 문제로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학생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학생의 약점을 보완하고 모르는 것을 알게 해서 보다 나은 실력을 키워 주기 위함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꼭 그렇게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지킬 수 있는데 이것만은 안돼” 그러면 하나님은 꼭 그걸 들고 나오십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그 부분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엡2:20-22) 20    여러분은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 세워진 건물이요, 그리스도 예수 스스로가 그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자랍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서 함께 건물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하실 곳이 되어갑니다.
 
우리 교회는 주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시대의 성벽은 어떻게 쌓는다고 그랬죠? 정형화된 벽돌이 없기 때문에 아랫돌 윗돌을 이가 잘 맞게 정으로 깨서 쌓아나간다고 했지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고 시금석이 되어주고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일원 각자가 서로에게 상대방의 약점을 깨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늘 문제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 지상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교회라는 훈련소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잘 훈련받고 정금 같이 되어서 그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떤 운동이든지 파트너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도 파트너가 있으면 challenge도 되고 혼자 심심하지도 않고 운동이 두 배는 더 잘 됩니다. 마라톤 기록이 어떻게 나오는지 아십니까? 자기와 버금가는 라이벌이 함께 뛰어 주어야 기록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한 몸으로 함께 가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라는 무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개인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항상 “교회”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각자의 구원은 그 “교회”의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떨어져서 독불장군으로 거룩을 향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손해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하 나됨을 꼭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여기는 아닌가봐”하고 분열하게 되면 우리가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갈 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거룩을 만들어 가고, 그렇게 실력자가 되어서 제한적이나마 천국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내다 보면 거기서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자라게 되고 그러한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되면 하나 되게 하신 것이 더욱 더 견고해 지게 되고 이렇게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질 수 없는 것 같이 거룩과 순종과 하나 되게 하심을 지켜내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본질이며, 책임이며, 의무이며, 핵심이며, 본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기와 다툼과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질투와 원수 맺는 것을 지양하고 서로 사랑하며 섬김으로 하나 되게 하심을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갈6:1) 1    교우(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형제가 범죄를 하게 되면 너희가 서로 바로 잡아주라는 것입니다.
이 “바로잡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탈티조”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완성시키다. 수리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correct의 뜻이 아니라 restore라는 말입니다.
팔이 부러지면 그 것이 나을 때까지 “목아 , 네가 수고 좀 해라”는 말입니다.
목이 그렇지 않아도 돌을 얹고 다니느라 수고가 많은데 거기다 팔까지 걸어놓으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그 팔이 나아서 완전히 건강한 한 몸으로 수리 될 때까지 “네가 수고 좀 해라” 그러시는 것입니다.
 
다리가 하나 부러지면 그 다리가 나을 때까지 두 팔이 목발을 잡는 수고를 감당해 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한 몸이 되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 도우며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며 천국 백성의 삶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후8: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나의 가진 것을 나누고 나는 가난하게 되는 것이 예수 님의 삶이셨습니다.
 
(빌2:3-5) 3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5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또는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고전12:11)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교회에 필요한 모든 것은 교회 안에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 각이 교회 안에서 제 역할만 제대로 수행해 내면 우리 교회는 부족한 것 없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것인 줄 알고 자기만을 위해서 쓸 때 교회가 제대로 자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습니다. 그 은사의 종류에는 지식, 물질, 건강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목적에 쓰라고 위임을 받은 청지기, Manager일 뿐입니다. 어떤 목적이요? 교회가 거룩한 백성으로 잘 지어져 갈 수 있게끔 교회의 각 구성원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배고픈 자들이 있을 테니까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라고 누구에게는 빵을 듬뿍 주셨고, 이해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안 좋은 자들도 있을 테니 누구에게는 지혜를 듬뿍 주셨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사랑의 마음을 듬뿍 부어 주시고, 힘쓸 일도 필요할 테니 누구에게는 힘도 주고, 이렇게 각자에게 맡겨놓은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만을 위해서 쓸 때 배고픈 자는 계속 배고프고 말씀에 굶주린 자는 계속 그렇게 갈급하기만 하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은 계속 사랑에 굶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영어로 Manager라는 뜻입니다. 매니저는 최고 권위자가 아닙니다. 그 매니저가 제 역할을 못 해낼 때 최고 권위자에 의해 그는 Fire될 것입니다.
사장이 “직원 교육을 맡기면 충실하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사장이 직원들의 월급을 맡겼으면 사심 없이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이 매니저입니다”
사랑, 온유,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불쌍히 여김, 긍휼, 선을 행함, 열심, 대접 골고루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체들과 나누기만 하면 부족한 것이 없는 것이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래서 나누어야 합니다.
 
(히13:16) 선행과 친교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행20: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복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자기 것을 남과 나누지 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필요한 것을 받아 챙기고 내 형제 자매들을 통해 나의 유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의 복은 happiness입니다. 우리의 복은 Blessing입니다. happiness는 happen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복 Blessing은 Bleeding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의 복은 피를 흘리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삶이었고 우리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에 축복을 Blessing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 받은 자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몸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몸이 살아있다는 것은 각 부분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면 불구인 모습의 교회가 세상에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들을 나누어야 합니다.
 
(요일3: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엡4:28)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는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핍절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늘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며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서로 도와야 합니다.
 
(잠17:5)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남의 재앙을 기뻐하는 사람은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자기가 많이 좀 가졌다고 가난한 사람 모욕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능력 없고 게으르면 저렇게 가난할까” 하지 마십시오.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 먹을 때 혹시 돈을 못 내는 사람 있거든 “넌 왜 맨 날 밥값 안내니?”하고 망신주지 마시고 남 몰래 슬쩍 대신 내 줄 수 있는 교회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가스비가 없어서 교회를 못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값이 없어서 친구들을 못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 잘 곳이 없어서 학교 시작을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더러 건축 헌금하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보고 선교 헌금하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지체들이 홀로 시들어 가고 있는 모습은 그냥 보고 넘기면 안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런 필요가 있을 때는 헌금에 힘쓰셔야 합니다.
 
(고후8:1-4, 13-15)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2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3    내가 증언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4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전에(그, '은혜')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13    나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을 이루려 합니다.
14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는,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15    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자기도 참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이신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셨을 때에는 우리더러 “교회야, 내 자녀들아, 이제 너희들의 진가를 보여줄 때가 왔다. 네 것을 나누어 저들을 도우라, 그래서 세상을 향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줘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울 수 있는 자들이 복 받은 자들입니다.
 
저 혼자 복 받은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그 자리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나누십시오, 섬기십시오. 나에게 교회로 허락하신 내 이웃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 하십시오. 저는 우리 교회에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우리 이렇게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하나 됨을 지키고 있습니다.”
“나의 지체들을 이렇게 우리가 섬기고 있습니다.” 하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세상 사람들아 이것이 바로 교회가 사는 모습이다. 이렇게 자기 것을 나누며 남을 세워주는 천국의 삶이 바로 여기 있다”라고 세상에 보여 주고 싶습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해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입니다. 한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돌아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25:34-36)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여러분 ,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이 칭찬을 들으십시오. 잘 하였도다, 내 아들아, 잘 하였도다 내 딸들아” 그 하나님의 칭찬을 들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는 이 세상 현실과 천국 현실이 오버랩 되어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구분이 있고 사회의 구분이 있고 가족의 구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현실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국의 백성으로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하나로 통일된 ‘애나케 팔라이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교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양쪽 현실을 다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종말이 오고 우주가 불타 없어진 다음에는 국가적, 사회적, 가족적 구분이 없어집니다. 그 때 그 곳 그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제 교회가 국가가 되고 교회가 사회가 되며 교회가 민족이 되고 교회가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의 모습을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살아내어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 분들이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아니 여러분의 몸입니다. 그 들을 섬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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