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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5 21:15
   22.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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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2,955  


(요16:22-24)
22    이와 같이, 지금 너희는 슬픔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요,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23    그 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묻지(또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기독교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기도에 관한 제목이 아주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보좌를 흔드는 기도’ ‘강청 기도의 능력’ ‘응답받는 기도’ ‘영으로 하는 기도’ 등등의 제목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서라도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구매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는 정말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 수 있을까요?
 
여러분께 한 번 여쭤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영원 속에서 계획하신 것은 이미 완성된 것이 맞습니까?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고 다 아시는 분이 어떤 것을 계획하시고 목적하셨다면 그 것은 이미 완성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묵시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다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것이 가시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역사의 장인 것이고요.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요구를 하나님께 졸라서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이미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죠. 인간의 요구에 조변석개하는 하나님이 무슨 전지전능하신 신입니까?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기 위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소나무 뿌리 몇 개 뽑으면 하나님이 그 정성을 보아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시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기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오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시는 수단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지요?
은혜의 수단 세 가지가 뭡니까? 그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와 성례입니다. 그만큼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세 가지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세 가지 은혜의 수단 중의 하나인 기도가 엉뚱하게 사용되고 있다면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아기가 갓 태어나도 그 아기에게는 팔 다리가 있습니다. 아기는 뜨거운 젖을 먹으면 혓바늘도 돋고 잘 안 닦아주면 부스럼도 생깁니다. 헌데 우리 인간이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주신 팔 다리가 아직 자라지 못한 아기에게는 도리어 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기는 멋모르고 난로를 만져서 데기도 하고 웅덩이를 향해 돌진을 하기도 합니다. 유익을 줘야 할 팔 다리가 오히려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유익이 되라고 주신 기도가 만일 오용이 된다면 그 것은 오히려 신앙생활에 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을 거시적(巨視的)으로 정의를 내려 보면,
기도는 성도의 죽었던 영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서 이제 성도가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계신 천성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마귀는 그 살아난 영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그리스도인이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이 세상에서 그 마귀의 공격에 대처하며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살아가야 하는 성도의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는 것이지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소원성취 도구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지성소 안에서의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대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들어가 이스라엘의 속죄를 구하는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것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를 다 갖추지 못하고 제물이 흠이 있는 것이면 그 대 제사장은 그 안에서 즉사(卽死)하였던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죄나 흠과 티와는 절대 공존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 죄인들의 죄가 말갛게 씻겨 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흠한 자가 되어 언제든지 지성소를 드나들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아니 아예 하나님께서 우리 속으로 들어와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지성소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며 나의 삶의 방향을 조명해 주시기를 구하며 서럽고 힘들 때 위로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헌데 마귀는 이 기도를 왜곡시킴으로써 신자들이 오로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필요를 구하며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구하는 데만 쓰게 합니다.
 마귀는 그러한 기도에 응답할 능력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눅4:6)  그런 다음에,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주겠다. 이것은 내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것이니,
 
마귀가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주님께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때때로 그러한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구하는 기도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라는 강력한 영적 전쟁의 무기를 고작 그런 부질없는 것을 구하는 데만 쓰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하나님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완전히 인간의 종이 되어 그들의 요구할 때마다 어떻게 하든 들어주어야 하는 해결사로 전락을 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쓰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 구하는 것이니 너희의 구할 바는 오직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시지요? 그러면 너희의 필요한 것은 알아서 더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내일은 먹을 것 입을 것으로 걱정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이 맡아서 하게 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두 번째 ‘내일’은 부사가 아니라 ‘주어’로 쓰인 단어입니다. 즉 내일 일은 내일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니 너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골1:9-12) 9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10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11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12    그래서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가 바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골로새 교회의 세상 적 필요가 아닌 그들의 성숙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있지요?
성도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시기를 구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구하며 이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가는 데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주십사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성도는 이 땅에서의 자기의 필요를 하나님께 전혀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당연히 우리 자녀들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 아버지께 구해야지요.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그 분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야지요.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전제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인 내가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특권에서부터 기도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부탁 못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 무슨 형식이 필요하며 거기에 무슨 특별한 시간이 필요합니까? 수시로 아이가 아버지에게 조르듯 우리는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게 정상적인 기도 생활입니다.
 
제가 지금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기도를 그렇게 무언가를 얻어내는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잘 정리하고 구별하시면서 들어 주세요.
 
실연을 당했을 때 “아버지 그 사람 참 야속하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이렇게 날 헌신짝 버리듯 버릴 수가 있어요?”하고 아버지 앞에서 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일이 자신에게 닥쳤을 때 자기 아들 독생자 보다 더 사랑하시는 그 자녀에게 아버지가 왜 그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여쭤 보세요.
 
사업이 힘들어 지셨어요? 그럼 그 때 “아버지 왜 내 사업이 이렇게 어려워 졌지요? 많이 힘듭니다. 왜 제 비즈니스가 이렇게 된 것이죠?”하고 아버지의 의중을 물어 보세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 일들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무조건 ‘이거 해결해 주지 않으면 나 밥 굶을 거예요‘라는 식의 자해 공갈 단 수준의 기도는 지양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골로새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기도인 것입니다.(9절)
하나님의 뜻은 상관없이 무조건 소리소리 지르면서 먹을 거 입을 거  안 주면 굶어 죽고 말겠다고 금식하며 하나님 협박하는 그런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천지를 주관하시는 아버지께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만드신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자녀보다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내가 이미 다 안다고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기도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그 분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지 않으실 때에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의중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며 거기에 필요한 것이 기도 생활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요구한 것을 자녀에게 주었을 때 그 것이 자녀에게 해가 될 것인지 득이 될 것인지도 너무 잘 아십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원한다고 무조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데 불필요한 것은 절대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자기의 모든 소원을 만사형통으로 이루며 불타버릴 땅에다가 뿌리를 박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진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도록 나그네로 사는 그 세상에서 자꾸 정을 떼게 만드시는 분이시지 이 땅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 집에도 관심을 두지 않도록 그렇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이 우리의 정욕과 탐욕에서 나온 요구 사항들 아닙니까? 아버지께서 우리의 정욕으로 말미암은 것들을 왜 다 들어 주시겠습니까?
 
(약4:2-3)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다가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차피 하나님이 다 하실 걸 왜 기도하라 하시는가?‘이런 질문이 안 드세요?
 
(겔36:32-37)  3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가 알아야 한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행실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운 줄 알아라!
33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서 그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는 날에는, 너희의 성읍에도 사람이 살게 하며, 폐허 위에도 집을 짓게 하겠다.
34    이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황폐한 땅을 보며 지나다녔으나, 이제는 그 곳이 묵어 있지 않고, 오히려 잘 경작된 밭이 될 것이다.
35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황폐하던 바로 그 땅이 이제는 에덴 동산처럼 되었고 무너져서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던 성읍마다 성벽이 쌓여 올라가서 사람 사는 땅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36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의 사면에 남아 있는 여러 나라들이, 바로 나 주가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며, 황폐한 땅에 다시 나무를 심는 줄을 깨달아 알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룰 것이다!
37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족속을 시켜서 내게 도움을 간청하게 하겠고, 그들의 인구 수를 양 떼처럼 불어나게 하겠다.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잘 보세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 일은 우리의 요구로 절대 바뀌어 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수단으로 인간의 기도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위의 본문은 이스라엘이 타락을 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만드셨음에도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을 때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도저히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곳에서 축복을 하시겠다고 하시며 내가 다 할 것이지만 너희는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들의 힘으로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하고 그 간구로 인해 나중에 ”아, 하나님께서 다 하셨구나.“ 라는 것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 안 하면 안 들어주시나요? 네, 안 들어주십니다. 이해가 안 가세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우리 성도의 기도를 통해 일을 하시기로 하셨으며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 실패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할 수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론이 나오지요?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만드신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그래서 성경에 그렇게 수많은 구절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반복하여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에만 관심을 두고 사느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을 도외시할 때 하나님은 성도를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성경에서 그 ‘파이데이아’라는 단어를 ‘징계’라고 번역을 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면 반드시 우리를 혼내신다는 것으로 잘 못 이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징계는 discipleship training, 즉 하나님 자녀들의 자녀 됨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징계로 말미암아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쉽게 초등학교 육 학년 수준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유치한 논리 같아 보이시더라도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만 잘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에게 기도를 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지만 나중에는 그 공로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려주십니다. 성도는 그렇게 자신의 기도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며 참 된 하늘의 행복과 기쁨을 맛보게 되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 되면서 성도는 자발적으로 기도의 깊은 자리를 점차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일들이 이루어 진 것이 성도가 묘 자리를 잘 써서 그렇게 되었는지 사주팔자가 좋아서 그렇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는지 구분하게 하기 위해 기도라는 것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지 기도 좀 했다고 ‘하나님 나 잘했지요?’라고 하나님께 뻐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고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되며 나의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 포기할 수 있게 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하는 그런 것,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만이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가 올바른 기도생활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야지 그가 얼마나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가가 올바른 기도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하는 기도의 응답이 안 들어지는 것이 더 정상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이 육신을 입고 있기에 우리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기도의 은사가 있다는 둥,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보좌도 흔들려서 병도 낫고 사업도 잘 된다는 둥의 너스레들은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호언일 뿐입니다.
 
(시106:14-15)  14    그들은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었고 사막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하였다.
15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다.
 
잘 보세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엉뚱한 것들을 많이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구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뭐라 합니까?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받은 것이 그들의 영혼을 파리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요구한 것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적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일이 내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기도는 하나님과 내가 이제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내가 요구한 것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서면 모두 돌격을 받아 죽어야만 하는 죄인에서 이제 그 분의 자녀가 되어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 기도의 초점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인가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 아버지하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 기도는 허공에 날리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실존하는 분이 나의 말을 들으신다는 사실이 전제된 것이 기도입니다. 본문 23절을 다시 보세요.
 
(요16:23-24)  23    그 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묻지(또는 '요구하지') 않을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너희의 눈이 뜨이게 되면 너희는 그 날에 아무 것도 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 말씀은 지금까지 너희가 세상에서 너희의 자랑을 위해 구했던 세상의 힘, 그러한 세상의 것들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하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또 무언가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 것은 구하지 말 것과 구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구하지 말 것은 세상살이에 필요한 세상의 힘,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구하는 것들이었다면, 구하라고 하시는 것은 이제 예수로 말미암아 보게 된 새로운 세상에서의 삶의 원리인 십자가의 삶, 거룩한 삶에로의 전진과 성숙, 그리고 그로인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관한 것들을 구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근거가 된 기도는 절대 이 세상의 필요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이라면 아버지께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를 생각해 보고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 주님과 성경의 기자들인 사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기도였고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는 성도의 인내와 거룩한 삶으로의 성숙을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막11:23-24)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잘 보시면 성경에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우리에게 있어도 산을 들어 바다로 던질 수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산이 들려서 바다로 던져진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인가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산은 성전이 있는 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 성전은 구약의 율법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시며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참 성전인 예수가 아니면 이 율법을 상징하는, 너희들의 형식적인 열심과 노력으로 상징되는 성전으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그 옛 성전을 청소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옛 성전을 파괴하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 산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로 말미암아 그 율법은 바다에 던져진 것입니다. 옛 것은 이제 끝이 난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제 율법의 산, 형식의 산이 없어지고, 그 산이 바다에 던져지고 하나님과 우리를 가리던 것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사40:4-5) 4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5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바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새 언약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구하는 것을 모두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모두 들어주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말씀은 우리가 그 전까지는 꿈도 못 꾸던 것들을 우리가 구하게 되고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을 얻은 자들은 바로 이런 것을 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갈5:22-26)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26    우리는 허영에 들뜨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것을 구하게 될까요?
이제 죄에 대한 자각이 생기고 회개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려는 욕구가 생기게 되며 하나님께 그러한 성령의 열매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뭐든지 구하면 다 주겠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그 예수의 십자가와 보혈을 근거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 그 영원한 하늘 백성으로서의 수준으로 가기 위한 그런 거룩한 구함에는 모든 것으로 응답을 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내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어 보겠다고 하는 율법의 산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미 그 산을 바다에 던져 버리셨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산은 우리의 기도로 바다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보세요.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 율법의 산을 바다에 던져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지만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 산을 던지시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하세요? 여전히 여러분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기적을 요구하고 계신가요? 그런 사람들이 왜 저 산은 저 자리에 아직도 저렇게 건재한가? 왜 이 역사 속에서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진 사건이 한 건도 없는가?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적은 성도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산이 들려 바다에 들어가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의 기도는 전부 그러한 기적만을 요구하는 기도가 되어버리지 않았나요?
 
우리가 믿음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미 그 율법의 산, 형식의 산, 죄악의 산이 바다에 던져졌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현실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가시적으로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병에 걸리신 분들이 계신가요? 기도하세요. 그러나 무조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제게 이 병을 허락하신 이유가 뭡니까? 내가 이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까지 오게 된 것입니까? 그래서 저를 부르시는 건가요? 아님 제가 건강을 가지고 너무 저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서 입니까? 아님 아픈 저를 통해 또 다른 어떤 영혼을 구원코자 하심입니까?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선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 선한 결과를 이룰 것은 뻔한 것이고 그래서 저는 그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힘이 듭니다. 저도 아파보니까 그 때는 정말 그 고통이 너무나 커서 다른 것 생각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지어져 가야 합니다. 큰 그릇으로 성숙되어져 가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인내의 열매가 맺히고 절제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에 죽도록 미워하는 분이 있으세요? 그 때 ”하나님 저 인간만 없으면 저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어요. 저 인간 좀 치워주세요”하시기 전에 “하나님 왜 그리스도인인 저에게 이런 미움이 있습니까? 저 사람으로 하여금 제게 가르치시려 함이 분명 있겠지요? 그렇다면 저 사람도 하나님께 들려 쓰임을 받는 사람채찍 인생 막대기이군요. 그것을 알았으니 저 이가 나를 괴롭힐 때마다 저이를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중을 헤아리겠습니다.”까지 가세요. 거기서 사랑의 열매, 용서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참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기도를 은혜의 수단으로 주셨습니다. 그러한 올바른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를,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부터 몇 주간은 주기도문을 함께 공부하면서 기도의 진의에 대해 더 깊이 공부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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