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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5 20:50
   11. 성령(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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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3,042  


(요16:7-11)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마귀는 항상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공격하여 그들을 괴롭힐 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천사 중에서도 아름답다고 묘사가 될 만큼 커다란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오죽하면 그가 하나님하고 대결을 해 보겠다고 반란을 다 일으켰겠습니까?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단 칼에 전멸시킨 것이 천사 하나였습니다. 그러한 천사들의 장(長)이 마귀입니다. 그 마귀가 수천 년 동안 고민하고 있는 게 바로 어떻게 하면 인간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인 가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그렇게 어리석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할까요?
 
일본에서처럼 예수님의 사진을 밟게 하는 ‘후미에’를 시켜 말을 듣지 않으면 감옥에 쳐 넣어 버린다든지, 북한에서처럼 예수를 믿는 자들을 수용소에 격리 감금한다든지, 로마에서처럼 사자 밥으로 던져 버린다든지 하는 그런 방법은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어떤 전략과 전술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겠습니까?
너무 쉽지요. 그냥 예수를 믿게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배당에 나가서 거짓 예수와 거짓 복음에 광분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열심을 부리게 놔둡니다. 헌금도 하게 하지요. 그러나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됨이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도, 하늘나라 삶의 원리인 십자가의 도 같은 것들은 무시하게 하고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는 그런 하나님을 만들어 열심히 믿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엉터리 기독교를 좇아 평생 열심을 낸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를 믿는 줄 착각하면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마7:21-23)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는데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고 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지경이 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정말 여러분은 제대로 잘 믿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우리는 얼마든지 열심으로 위장된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 행위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이단들이나 이교에서도 그런 열심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열심히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그러한 마귀의 소행으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행하던 것들이 버젓이 교회에 들어와서 섞여 버렸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어떤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비빔밥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 맛도 아니고 저 맛도 아니고 도대체가 미뢰(味蕾)를 혼란시키는 그런 잡교가 된 것 같아요.
 
엘리야와 겨루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그들의 소원을 바알에게 빌면서 어떤 행위를 했는가 보면 오늘날 교회에 얼마나 많은 이교적인 것이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상18:25~30)
26 그들은 가져 온 소 한 마리를 골라서 준비하여 놓은 뒤에,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은 응답해 주십시오" 하면서 부르짖었다. 그러나 응답은 커녕,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바알의 예언자들은 제단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었다.
 
그들은 바알을 경배하며 춤을 춥니다.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흥을 돋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어디서 많이 볼 수 있지요? 여러분, 한 때 한국 교회를 강타했던 열린 예배라는 것을 아십니까? 아니 지금도 한국교회를 비롯해서 전 세계 교회의 예배가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열린 예배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어 믿지 않는 자들을 예배당으로 모으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러한 예배에는 드라마와 댄스, 간증, 연주 등이 가미가 됩니다.
사람들이 흥겨워하고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극장이나 나이트클럽에 가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예배당에서도 연출을 해 주어 그들을 예배당으로 불러 모으자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렇게 사람을 모아서 복음을 설명하면 정말 창세전에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도 구원의 문으로 들어 올 수 있습니까?
재미있는 드라마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 정말 하나님께서도 놀랄 만큼 전도에 효과가 있을까요?
 
예배가 뭡니까?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예배입니까?
예배는 구원 얻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며 그 분께 받은 선물이 너무 감사해서 그 분 앞에 엎드려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천국잔치가 예배입니다.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열린 예배가 도대체 뭡니까? 그런 것은 다 이교에서 슬며시 들어온 것들입니다.
계속해서 27절을 보세요.
 
27    한낮이 되니,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더 큰소리로 불러라. 바알은 신이니까, 다른 볼일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용변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멀리 여행을 떠났을지, 그것도 아니면 자고 있으므로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느냐!"
28    그들은 더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그들의 예배 관습에 따라,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도록 자기 몸을 찔렀다.
 
또 그들은 소리쳐 신을 부른다고 합니다. 주여 삼창이나 통성기도가 생각나지요? 하나님이 귀가 막히셨습니까? 왜들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물론 너무나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때 소리가 크게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도 너무 기쁘거나 너무 애절한 간구가 있을 때 소리를 지를 때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 ‘주여‘를 외치거나 목이 쉬도록 소리쳐 기도를 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연유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 한 가지가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목소리가 커야 거룩한 신앙인처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를 작게 해서 기도를 하면 왠지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처럼 보여 지는 것이 사실이지요. 또 한 가지는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게 목이 터져라 외치는 데도 하나님이 외면하실 수 있겠는가?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목소리가 큰 것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큰 복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이가 나보다 더 간절해 보이면 안 되니까요. 아닙니까?
 
그리고 이교도들의 특징이 자신의 몸을 자해한다는 것입니다.
28절에 보시면 피가 흐를 때가지 창과 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더라는 구절이 있지요? 불교인들이나 힌두교인 들이 구도의 방법으로 가장 흔하게 쓰는 것이 뭡니까? 고행입니다. 자기 몸을 자해하는 것입니다. 소지공양이나 소신공양 같은 것을 보세요. 오체투지는 어떻습니까? 자해를 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신념이 그러한 것을 배태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그런 것들이 들어 왔습니다.
금식기도 같은 것을 보세요. 금식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에너지원으로 삼아, 다른 말로 힘을 삼아 사는 곡기(穀氣)를 끊고 ‘하나님 저는 이 땅의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저의 힘으로 삼아 이 세상을 살겠습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금식은 ’내가 이렇게 굶어가면서까지 기도를 하는데 안 들어 줄 거야?‘라는 공갈협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금식이 어떻게 쓰여 지고 있습니까? 새벽기도나 천일기도, 철야기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새벽기도나 천일기도, 철야기도를 그렇게 자신을 자해하여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공갈협박으로 쓰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지금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29절로 갑니다. 
 
29 한낮이 지나서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될 때까지, 그들은 (바알 예언자들)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없고, 아무런 대답도 없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들이 무얼 합니까?
미친 듯한 예언을 합니다. 여러분, 예언 좋아하시지요?
이게 다 뭡니까? 우리가 예배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다가 참수되어 죽은 자들과 똑같은 짓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이 좋은 신앙의 표본이라고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속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의 열심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니고 지성이면 감천으로 필요한 것 얻어낼 수 있는 자들 아닙니다.
 
(계13:1-18)
1    나는 바다에서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뿔 열과 머리 일곱을 가졌는데, 그 뿔 하나하나에 왕관을 쓰고 있고, 그 머리 하나하나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2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한데, 그 발은 곰의 발과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과 같았습니다. 그 용이 자기 힘과 왕위와 큰 권세를 이 짐승에게 주었습니다.
3    그 머리 가운데서 하나는 치명상을 입은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치명적인 상처가(그, '죽음의 재앙이') 나으니, 온 세상은 놀라서 그 짐승을 따라갔습니다.
4    용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주니, 사람들은 그 용에게 경배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맞서서 싸울 수 있으랴?" 하고 말하면서, 그 짐승에게 경배하였습니다.
5    그 짐승은, 큰소리를 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고,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6    그 짐승은 입을 열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니, 하나님의 이름과 거처와 하늘에 사는 이들을 모독하였습니다.
7    그 짐승은 성도들과 싸워서 이길 것을 허락받고, 또 모든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7절 상반절이 없음.)
8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때부터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또는 '창세 때부터 죽임을 당한 그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9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10    "사로잡혀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11    나는 또 땅에서 다른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린 양처럼 뿔이 둘 있고,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12    이 짐승은 첫째 짐승이 가진 모든 권세를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하여 행사하였습니다. 이 짐승은, 땅과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치명상에서(그, '죽음의 재앙이') 나음을 받은 그 첫째 짐승에게 절하게 하였습니다.
13    또 그 짐승은 큰 기적들을 행하였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도 하였습니다.
14    그리고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해서 행하도록 허락받은 그 기적들을 미끼로 해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미혹하였습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칼에  맞아서 상처를 입고서도(또는 '칼의 재앙을 받았다가도')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말하였습니다.
15    그리고 둘째 짐승이 능력을 받아서 첫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또는 '영')넣어 주고, 그 짐승의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도 하고, 또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하게도 하였습니다.
16    또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다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사람, 곧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나타내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팔거나 사거나 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18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상징하는 숫자를 세어 보십시오. 그 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수는  육백육십육(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육백십육')입니다.
 
잘 보세요.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그 짐승이 용에게 권세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짐승이 죽은 것 같았다가 살아납니다. 누구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그 땅에서 나온 짐승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경배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나온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들을 행하면서 바다짐승을 경배하게 합니다. 이건 또 누구의 흉내를 내는 것입니까? 성령 하나님을 흉내 내고 있지요? 그런데 성령 하나님을 정확하게 흉내를 내지 못하니까 고작 기적을 동원해서 성령하나님을 흉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데 그 수가 666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탄과 그 세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흉내를 그대로 내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흉내를 그대로 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복이나 받고, 신비적인 체험이나 하고,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어서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탄과 그 무리들을, 믿지 않는 자들을 포함한 그 전체 마귀의 세력들을 우리는 666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통합 ID카드도 아니고 바코드도 아니고, 베리칩도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두운 세력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이 성령의 사역에 관해서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사탄의 계략이라는 것을 이제 아시겠어요? 성령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적이나 체험하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불이나 내리는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마귀가 하는 일이라니까요?
 
왜 여러분에게 기적이 또 필요합니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시체가 살아나서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감지하게 되었는데 그 큰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병이나 고치고 은 이가 금 이로 변하는 그런 유치한 장난 앞에서 합장을 하실 수 있겠냐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믿음이 뭡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게 된 자들을 믿음이 있는 자, 믿음으로 사는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는 물질과 공간 속에서 감지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주셔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나 신비스러운 현상들을 자꾸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뭡니까?
‘난 믿음이 없으니 뭘 좀 보여 주세요’라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믿음이 없는 자, 불신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무슨 기적들을 그렇게 바라세요.
 
그럼 이제부터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의 사역을 하나하나 짚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오셔서 완성하시고 가신 창세전에 작정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빛이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빛을 증거 하기 위해 광야에서 그토록 애절하게 외친 것입니다. 여러분, 빛은 증거하고 설명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보면 됩니다. ‘아 저게 빛이구나.’ 이렇게 우리는 빛을 보기만 하면 그게 빛인 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빛을 증거 하도록 누군가를 보내셨다는 것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소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백성까지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1:6-11)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 사람은 빛을 증언하러 왔다. 그 증언으로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 자신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온 것뿐이다.
9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
10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인간들이 그 빛이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기 때문에 성령께서 오셔서 그 빛이 누구이시며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리고 그 분이 오신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요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내려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요16: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정확하지요? 이렇게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신 일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 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밝히 이해시키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의가 어떤 것이며 우리가 받았어야 할 심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16:7-11)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변호해 주시는 분' 또는 '도와주시는 분')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8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9    나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말씀해 주실 것이며,
10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므로 너희가 나를 더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임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11    세상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실 것이다.뿐만 아니라 여기를 보시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완전히 복귀하셨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완전한 영광의 복귀를 하셨다는 것은 그 분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하실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해 내시고 올라가셨다는 말이지요? 그 구속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이해가 가게 해주시는 분으로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성령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세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는 두 가지 의미로 이 세상이란 단어를 씁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이라고 했고 다른 한 가지는 원래 그 세상 속에 속해 있었으나 그 세상에서 건져내어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을 가리켜 세상이라 칭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입니다. 세상에 속해 있었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책망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절대 성령을 인식하지 못 하니까요.
 
(요14: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분을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것은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또는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죠? 그리고 여기서 “책망 하다”(8절)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엘렝코”는 ‘꾸짖다’는 의미와 함께 “깨닫게 하다”의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깨닫게 하다‘라는 의미가 더 적합한 번역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뚫고 들어오셔서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떤 지경으로 가야했는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의를 선물하셔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는지 그리고 세상 권세 잡은 자, 사탄과 그 무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고 우리도 원래 그 심판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행2:33)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려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성령을,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심판해서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님께서 그 예수를 살려내셨고 그 분을 오른 손으로 높이셨습니다. 그 말은 세상의 심판은 오판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잡아 엉뚱하게 심판하여 잡아 죽인 세상은 이제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신 하나님께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었다고 복창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함께 돌을 들어 예수를 찍었던 우리는 왜 건짐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은혜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종말은 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받은 세상에 자꾸 성을 쌓으려고 하면 어떡합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언제 이 땅이 끝이 나며 심판이 일어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겁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말세의 징조로 “처처에 기근이 일어나고 재난이 일어나고 홍수가 일어나며 지진이 일어나며 나라와 나라가 싸우며 민족과 민족이 싸우리라” 그것이 말입니다. 기근, 지진, 전쟁, 홍수는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 고조선 시대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세의 진의가 뭡니까?
“이 땅은 곧 끝나버릴, 재 하나도 남김없이 불 타버릴 그런 곳이다. 그러니 너희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라.”그게 바로 말세를 사는 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요 세상을 사는 자세여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이 일고 지진이 일어날 때 나의 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이미 심판을 받았고 모두 불타버릴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집에 매일 세 번씩 지진이 일어나고, 풀과 나무가 심기만 하면 말라죽고 이상하게 그 집에만 들어가면 싸움이 일어나고 하면 그 집에서 얼마나 오래 사시겠습니까?
당장 집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구를 그렇게 흔들고 계신 것입니다. ‘나의 백성들아 너희는 저 하늘로 완전히 이사 가게 될 자들이다. 여기에 정주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즉 구원과 은혜에 대하여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령이 오셔서 하신 일은 교회를 세우신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2장의 그 유명한 마가의 다락방 사건에서 120명의 제자들이 불의 혀 같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적어도 열다섯 개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각기 자기의 난 곳 언어로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는 많이 잊었지만 오랜 포로 기간을 거쳐 헬라어와 아람어를 모두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하고 싶으셨다면 당연히 제자들의 입에서 헬라어나 아람어로 말이 나오게 하셨겠지요? 그랬으면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해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들이 태어난 나라의 언어로 그 말이 들리게 하셨을까요?
 
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 사건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회복하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교만해지고 패역해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겠다고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인간들을 저주하셔서 그들의 언어를 갈갈이 찢으셨습니다. 언어가 갈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증거라 했지요? 그 사역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고요. 그 교회는 하나님의 저주가 풀린, 다시 하나가 된 한 무리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그들이 각기 난 곳 언어로 들으면서 언어가 소통이 된 것입니다. 이제 언어가 하나가 되어 다 통하더라는 것이지요.
 
고린도 전서에서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12:12-26)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합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냄새는 어떻게 맡겠습니까?
18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19    전체가 한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20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 할 수가 없습니다.
22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몸 가운데서 더 약하다고 여기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그리고 몸 가운데서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24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더 큰 존귀함을 주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시면 교회가 하나가 되고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걱정하며 사랑하며 때로는 옳지 못한 행실을 사랑으로 꾸짖으며 한 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자 그 곳에 있는 교회들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그들의 기도를 이해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저주에서 풀려난 ‘하나’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교회 안에서 굶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니는 불쌍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팔이 부러지면 잘라버리지 않고 잘 싸매서 목에다 걸  듯이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도우며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어떤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어느 한 분이라도 우리의 구원의 사역에서 빠지면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을 홀대하지 마세요. 아무렇게 나 그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성령 하나님께 오라 가라 명령하지 마세요. 그건 성령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아무 때나 램프를 문지르면 나와서 나의 필요를 채우고, 나에게 깜짝 쇼를 보여주고 돌아가는 그런 저급한 요술쟁이가 아닌 것입니다. 잘 아셨지요?
 
그럼 다음 주에는 ‘성령 충만’에 대해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무엇을‘성령 충만’이라 하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공부하지요.
얼굴 빨개져 가지고 몸을 벌벌 떨면서 입에 거품 무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 하나요?
확률 50퍼센트도 안 되는 어줍지 않은 예언이나 하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 합니까?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 합니까?
아니면 방언하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 하나요?
다음 시간에 성경만 가지고 밝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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