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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1 05:57
   피안화 -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4,240  


아마 구구단때문이었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저를 앉혀 놓고 구구단 외우기를 테스트하고 계셨습니다.
한손에는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그땐 어느집이나 한두개는 늘 굴러다니던 총채를 손에 쥐시고 말이죠. 그땐 그게 어찌나 무섭던지요. 구구단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요즘 애들은 무려 19단까지 외우기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인간은 진짜 진화하기는 하나 봅니다. 누구나 그럴것 같기는한데 전 7단하고 8단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혼자서 웅얼웅얼 거릴때는 잘 되던것도 어머니의 총채 앞에서는 그게 그렇게 잘 안되더군요. "다시!...6단부터 다시!....8단만 다시!"....헐 그놈의 다시 다시 다시....
결국은 울먹울먹 미적미적 흐지브지....그렇게 외우기에 실패하면 어머니 손에 들려있던 총채는 저의 종아리를 여지없이 아프게 했습니다. 엄살 약간 섞어서 종아리를 매만지며 울고 있으면 어머니는 큰소리로 혼내셨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와!!.............." 

화장실에 들어가 문고리를 잠그고 서럽게 울면서 거울을 보며 어린 규만이는 비장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확 죽어버릴거야, 어흑어흑...자살해야지ㅠㅠ 그럼 엄마가 마음이 아파서 괴롭겠지?....엉엉...복수할꺼야..."
그렇게 어린노무 자식이 참 앙증맞은 결의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아버지 면도기의 도루코 면도날을 만져보기만 하는걸로 녀석의 귀여운 복수는 막을 내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자기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았다는건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는 얘기인데 왜 그때 저는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의 회초리를 죽음으로 복수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사람이란 동물은 어릴때나 어른때나 참 대책이 없는 존재인듯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철없기만 했던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그때 그무렵 언젠가 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안방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시는 얘기가 귀에 들리더군요.
"오늘 시장에서 개구리 말린걸 한소쿠리 샀어요. 푹 고아 달여 먹으면 몸에 그렇게 좋다네. 규만이 달여 먹일라구. 그런데 이걸 막상 끓이고 보니 냄새가 너무 역하네....저녀석이 입맛이 보통이 아닌 놈인데 안먹으면 어쩌지.....?""인삼 넣고 닭고은 물이라고 하고 어떻게 하든 먹여봐...저녀석 몸이 약해서 큰일이야....." 
그렇게 두분의 얘기를 듣고 저는 이미 다 알아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비비고 일어나 앉아 있으니 웬지 긴장된 얼굴로 어머니가 뭔가를 한사발 들고 오셨습니다.
"규만아....이거 닭에다가 인삼하고 이거저거 넣어서 푹 고아 만든 보약이니까 어여 마시렴....." 
그때 어린노무 자식이 어쩜 그렇게 철이 있었는지 역겨운 냄새가 풀풀나는 그개구리 달인물 한사발을 쉬지 않고 들이켰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저에게 좋은거 주시려고, 저를 사랑해서 속이시는 거라는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그사랑에 어떻게 감히 개구리 국물이 역겹다는 말을 하겠어요....
"에이, 우리규만이 이번 겨울엔 감기 한번 안걸리겠다....자알했다....." 하시며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물려주시던 어머니의 밝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도 가끔 그얘기를 하시며 막내 아들 속여먹은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시는데.....
그때 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추워지니 역시 또 낙엽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 삼사년전 부터인가 저는 부모님에게 1박2일로 나들이를 한번 가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운전이 어려워지셔서 늘 집에만 계시는 부모님이 너무 답답하실것 같아 저 혼자 두분 모시고 놀러갔다 오고 싶더군요. 물론 아내와 손주들도 함께하면 좋으련만 뭔 약속이 그리도 많고 학원 스케쥴은 그렇게 복잡한지 아내와 아이들은 제끼고 그냥 저혼자 다녀오려구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본가에 갈때마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아버지....이제 겨울가고 봄기운 나면 저랑 콧바람 쐬러가요...." "그래...좋치..."
"어머니....이제 여름가고 선선해지면 저랑 단풍구경 가요....." "그래...좋겠구나..."

이러기를 벌써 몇해째 반복하고 있는지 정말 스스로가 민망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되질 않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년전 생각했던 계획들을 저는 계속 뒤전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마치 언제까지라도 그자리에서 기다려 주실것 처럼 말입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늘 저희에게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 찾아올 때는 빈손으로 오면 안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엄마도 짜장면 좋아하고 아빠도 불고기 좋아하는데 너희들 사남매 때문에 많이 못먹으니까 나중에 꼭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와야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시다가도 본인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돈을 아끼시던 어머니는 버릇처럼 늘 입에 달고 사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돈이면 온가족이 먹을 수 있는 쇠고기가 몇근인데....." 

그런 어머니가 늙으시니 이제 무언가를 사가지고 찾아뵈면 자꾸 나무라십니다. 
니가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걸 사오느냐....이런거 먹으면 살찐다...이거 아이들도 잘먹는거 아니냐....가져가서 너희나 먹어라...난 이제 이가 부실해서 먹지도 못한다....하시면서 말이죠. 그래서 요즘은 마트에서 주전부리 하실만한 먹을 것들을 집었다가도 정말 내려놓고 사가질 않습니다. 잔소리 듣기도 싫고 정말 싫어 하시는것 같기도 해서 말이죠. 물론 잘 드실것 같은 비싼 것들은 몇번을 집었다가 내려 놓으며 주머니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비싸야 몇푼이나 한다고 순간이라도 망설이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참 염치도 없습니다.


일본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중 1958년작인 '피안화(彼岸花)'는 그의 첫 컬러영화입니다.
1958년이면 우리나라 전쟁이 끝난지 겨우 몇해 지나지 않아서인데 어떻게 이렇게 훌룡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는지 감탄을 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상당히 호화롭고 잘사는 전후 일본의 모습을 보며 화가 나기까지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오즈감독의 후반부 영화속 주인공은 모두가 이름이 '히라야마'입니다. 참 웃기죠? 히라야마씨는 두딸을 키우는 회사의 중역입니다. 그런 그가 혼기가 꽉찬 큰딸을 출가시키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담담하게 진행되어 잔잔하게 마무리됩니다. 아버지와 딸, 부모와 자식이 느끼는 사랑의 차원이 얼마나 다른지 영화는 코믹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뭐 익히 다 아는 그런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계속 궁금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제목인 피안화는 어떤 꽃일까? 어떤 꽃이기에 감독은 굳이 제목을 피안화라고 지었을까 하고 말이죠. 피안화는 일본식 이름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석산' 혹은 '꽃무릇'이라고 불리우며 '상사화' '사인화' 내지는 '저승화' 라고도 불리운다고 합니다. 이꽃의 피고 지는 일련의 과정이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드는 것 같다고 하여 조금 스산한 피안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절 주변에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오즈 감독은 부모와 자식의 잔잔한 이야기를 빗대서 피안화라는 스산한 꽃의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짐작컨대 이런 이유인듯 싶습니다. 
피안화는 잎이 있는 동안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잎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잎과 꽃은 서로를 평생 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꽃말도 '슬픈사랑'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결국 접점이 있을 수 없는 평행선과도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닐까하는 감독의 뜻이 담긴듯 싶습니다. 

산처럼 커다랗던 아버님은 이제 구부정한 허리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 다니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계십니다. 키가 점점 줄어들어 딱맞던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신다고 어머니가 웃으며 흉을 보십니다. 어머니는 혓바닥이 마르고 잇몸이 아파 아무것도 맛을 못 느끼겠고 그래서인지 아무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시며 이젠 너무 늙었다고 쓸쓸해 하십니다. 그런 부모님이 요즘은 자꾸 고맙다는 말을 하십니다. 이러면 이래서 고맙다고 저러면 저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오늘도 현관까지 마중 나오셔서 바쁜데 와 줘서 고맙다시며 차조심하라고 배웅하시는 부모님과 헤어지면서 오늘의 이 모습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현관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결국 언젠가 부모님과의 마지막을 맞이 하겠죠. 부모님과의 시간이 이젠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식사는 몇끼나 남은걸까.....옛추억을 이야기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몇시간이나 남은걸까.....
저에게 예언의 능력은 없지만 아주 확실한 슬픈 예언을 하나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부모님은 돌아 가실것이고 저는 아마 후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이세상에 효자가 있을 수 있는걸까요...부모님에게 면목있는 아들딸이라는게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이제 저자신이 부모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하면서 저는 결국 이렇게 피안화의 꽃과 잎처럼 부모님의 사랑에 결국 답을 하지 못하는 면목없는 자식이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설령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한들 부모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자식이 될 수 있을런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아는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자처럼 살았던 어린시절의 저처럼 저는 여전히 그때 그시절과 똑같은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죽을병에 걸려 남은 시간을 의사로 부터 통보 받으면 그제서야 우리는 아쉬워하고 슬퍼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치만 늙으신 부모님은 시한부 인생이십니다. 딱히 큰병은 없으시지만 제기대나 바램보다 더 빨리 하늘나라로 가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슬픈건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후회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부모자식도 없고 부부관계도 없다고 하시는데.....어찌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을 알아 볼 수 있고 그곳에 함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 내려 주신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때면 이세상에 안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벌써 눈물이 흐르네요. 흐르는 강물을 잡아 놓을 수 없듯이 후회하지 않으려해도 후회할 불효자는 또 그렇게 웁니다. 
부디 피안화의 꽃과 잎이 천국에서는 함께 피기를 바랍니다.

가족이라는 절묘한 관계를 허락하시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늘 젖먹이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조금 기다가 그러다 조금 걷다가 그러다 마침내 어느날 주님과 함께 늠름하게 동행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시는 줄 아니까 죽어서 복수하겠다며 말도 안되는 땡깡을 부리던 어린아이 같은 저는 아직 징징대며 하나님에게도 원망의 기도를 하는 날이 더 많치만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기특하게도 그크신 사랑을 깨닫고 순종하며 역겨운 세상것들을 토해 버리는 자로 만들어 주시기를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영화 피안화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씨가 굳이 결혼을 서둘러 할 필요가 없다며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결혼이라는게 금인지 알고 해봤더니 놋쇠더라고....."
훗날 그얘기를 들추어 내며 결혼을 안하겠다는 지인의 딸에게 그는 다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치만 놋쇠를 금으로 만드는게 부부란다....."
제가 감히 어찌 금이 되고 효자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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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숙 15-11-11 06:55
    
저는 오늘 제 아들을 바라보는 맘으로 귀한 글을 읽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되는 그 은혜를
깊게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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