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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21 05:37
   이런 변이 있나!!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2,747  


더러운 이야기들입니다. 꼭 식후 30분 이후에 읽으세요!

 

회사원이던 시절 조대리님이라고 계셨습니다. 이분은 늘 지각을 하곤 하셨는데 이상하게 윗분들로 부터 혼나지를 않는 겁니다. 혼나기는 커녕 터벅터벅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느분께 조용히 물어봤습니다.
저분은 왜 늘 지각을 하는것이며 왜 혼나지도 않는 것이냐고 말이죠. 얘기를 들어보니 조대리님은 장이 아주 안좋으시다는군요. 그래서 늘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신답니다. 언제든 뱃속에서 신호가 오면 내려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랍니다. 대중교통은 절대 탈 수가 없다는군요. 그걸 윗분들도 다 아셔서 지금은 그러려니 하신다는 거였습니다. 

음......부럽다....는 생각은 차마 안들었지만 조금 억울하더군요. 확실히 어중간하면 손해입니다. 화끈하게 안좋거나 건강하거나 해야 되는건데 저는 인생이 늘 그렇게 어중간하거든요.


새해에는 운동 열쒸미 하고 살도 빼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열달이 다 되어서야 마음을 먹고는 집앞을 나섰습니다. 가벼운 옷도 입고 배가 나와 흘러내리는 츄리닝바지 끈도 확실히 동여 매고 신발끈도 조이고는 길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초딩 첫등교하듯 씩씩하게 걷고 있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가는날이 장날이라는 의미가 가는날이 장이 안좋은 날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게, 새삼 배가 실실 아파오기 시작하더군요. 늘 쳐묵쳐묵 먹을때는 좋은데 그것들이 뱃속에 들어가면 왜 꼭 일부는 다시 나와야 되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쉽지 않았으나 뱃속으로부터 지금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니라는 강력한 신호가 느껴지더군요.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닌지라 약간의 신호만 와도 저는 분주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유롭게 화장실을 찾습니다. 전보다 화장실 인심이 좋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개방된 화장실이 별로 없습니다. 이건물 저건물 들락거리며 열려있는 화장실을 찾는데 만만치 않습니다. 젠장 운동됩니다. 하지만 결국 찾았습니다. 에혀...

그런데 역시나 화장지가 없습니다. 잽싸게 뛰어나가 편의점에 가서 화장지를 하나 삽니다. 그리고 다시 뛰어 들어 갔는데...아뿔싸.....그 사이에 웬 넘이 자리잡고 앉아 있습니다.


이런 된장....밖에 서서 발자국 소리도 내보고 헛기침도 해보고 별짓을 다해도 이넘이 나올 생각을 안합니다. 칸막이 안에서 들려오는 핸드폰의 문자 누르는 소리로 봐서 장기전에 들어섰나 봅니다. 마지막 압박으로 노크를 해 봅니다. 그러자 여유있게 그넘이 노크로 반사합니다. 저에게는 '지둘려! 짜샤~'로 들립니다. 우씨....더이상은 못 견딜것 같은데....이제 와서 다른 곳을 찾자니 너무 막막합니다. 여유있게 서둘렀는데도 이 모양이니 더욱 화가 납니다. 생각 같아서는 합승이라도 하자고 하고 싶은데 아니면 잠시 교대 후 번갈아 볼일을 볼 수는 없겠냐고 타협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 넘이 뭔 소설이라도 쓰는지 도무지 나올 생각은 안하고 핸드폰만 눌러대고 있습니다. 
내가 졌다. 많이 싸라. 생각 같아서는 바께쓰로 물 한바가지 들이 붓고 가고 싶은데 도망갈 힘이 없어서 그냥 길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이 건물 저 건물 기웃 거립니다. 아..진짜 한계에 왔습니다. 무릎이 굽혀지지가 않습니다. 
엉덩이에 힘을 하도 줬더니 무릎을 못 굽히겠더라구요. 그렇게 이상한 걸음걸이로 다른화장실을 찾다가 마침내 겨우 찾았습니다. 웅와.....얼마나 행복하던지요.


문을 잠그고 기쁜 마음으로 갓 지은 하얀 쌀밥같은 하얀 변기를 내려다보며 급히 바지를 내릴려고 하는데.....끈이 풀리지가 않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츄리닝 바지를 이미 한번 묶은 상태에서 제가 한번을 더 묶어버린 거였습니다. 가뜩이나 마침 손톱을 자른 후 인지라 매듭이 풀리지가 않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내 보내 달라고 짜식들은 뱃속에서 우글우글 거리는데 바지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변기가 눈앞에 있는데 볼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바지를 찢을까....그럼 집에 어떻게 가지....사타구니 부분만 찢을까....그럼 팬티도 찢어야 되는데....아....이런 변이 있나..... 
갈비가 눈앞에서 익어가는데 못 먹는다면 그게 인생 최고의 고통일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그날 이후로 변기를 눈 앞에 두고 바지를 못내리는 고통이 가장 큰 것일 거라고 저는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어느 친구가 인생 다 산거 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저에게 얘기해 주었던 슬픈 이야기가 생생합니다. 그친구가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뭔 얘기인가 싶어 들어보니 자신의 응가 후 뒷 처리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아뜨...먼 얘기여 이건...왜 이런 얘기는 꼭 나한테 고백하는겨... 싶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가슴아픈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그날 그 시간까지도 X닦을때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닦는줄 알았답니다. 다들 손을 뒤로 돌려서 닦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의 충격이 너무도 크다는 뭐 그런 드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녀석이 이래저래 걸리적 거리는 것도 많았을텐데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뒷 처리를 하며 수십년을 살아왔다는 얘기는 정말 웃기기 보다는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긴 남들이 뒤 처리하는 걸 언제 볼 기회가 있었겠어요. 

그렇게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고는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깨끗이 닦는게 중요하지 이래 닦나 저래 닦나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거겠냐며 앞으로라도 남들처럼 손을 뒤로 돌려 닦는게 낫지 않겠냐며 친구로써의 소임을 다했더랬습니다.

 

 

보통 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르면 실수할 확률이 적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 배우가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가 뭐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도 심심치 않게 나오죠. 별로 안유명한 배우들이야 자기 주제에 작품을 고른다는게 사실 좀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이 정도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쉽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로버트 드니로와 에드워드 노튼 게다가 밀라 요보비치까지.....


이 세명의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면 뭔가 기대가 되는게 정상이겠죠? 영화 'Stone'입니다.
(절대 보시라고 추천드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렇게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거나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좀 불친절합니다. 설명을 안해 줘요. 이 장면은 왜 나온 것이고 이얘기는 어떤 이유로 나온 것이라고 대충 설명을 해주는데, 이 영화는 좀 불친절 합니다. 알아서들 생각하라고 그러는건가 싶은데 하여간 영화는 다소 어정쩡하게 마무리 됩니다.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는 가석방 심사관입니다. 죄수들을 면접하여 사회로 내보내도 될지 안될지를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노튼은 가석방을 간절히 원하는 죄수
입니다. 죄명은 스토리상 살인과 방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밀라 요보비치는 그의 아내입니다.


영화는 내내 기독교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어느 목사님들의 설교를 뒤로 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래저래 종교적인 색채를 많이 풍기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은 뭐 그닥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만, 하여간 영화는 관객들에게 로버트 드니로의 아내를 포함하여 네사람의 이런저런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극중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로버트 드니로는 죄인을 판단하여 감옥에서 나가게 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본인과 아내는 확연하게 가정이라는 감옥 안에 살고 있습니다. 늘 휑한 표정으로 교회를 함께 다니는 아내는 술과 담배에 쩔어 있습니다. 영화 도입부에 이부부가 스스로 가정이라는 감옥에 살게 된 힌트가 나옵니다만, 위에 언급 드린대로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폭력적이고 나쁜 근성을 지닌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시작 부분과는 달리 점점 신앙(기독교는 아닙니다)을 갖게되고 선하고 부드럽게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시종일관 악마스런 모습으로 영화를 휘젓고 다닙니다. 영화는 결국 죄를 판단하는 로버트 드니로 역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며 감옥이 아닌곳에 살고 있지만 그의 인생 역시 결국은 감옥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죄에서 멀어지겠다고 마음먹고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에드워드 노튼 역시도 결국은 감옥에서는 나올 수 있었을지 몰라도 자신이 갖혀있는 죄라는 감옥에서는 절대 자유롭게 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밀라 요보비치는 말할 것도 없이 끝까지 세상이라는 감옥 안에서 죄를 즐기며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인것이구요.


영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기독교 방송의 설교 내용과 가끔 나오는 목사님의 상담 내용이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 주려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을 더욱 혼란스럽고 소화 불량으로 만드는 결과를 만드는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중 어느 부분에 한 설교가 나오는데 어쩌면 이것이 영화 전반을 이해하는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죄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옵니다. 우리 안에서 생겨납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라 죄를 짓는 거죠.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해도 지옥에 가는 이유를 아세요? 이사야가 말하길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아서...." 결국 신을 믿고 있다는 사람이나 신을 믿겠다는 사람이나 신은 없다고 하는 사람이나, 결국 우리 모두는 똥걸레일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스톤'이라는 감옥 안에서의 에드워드 노튼의 별명으로 정한 것도 어쩌면 스톤처럼 신을 찾고 스스로 의를 만들어 내겠다는 우리의 모든 것이 결국은 더러운 똥걸레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의미로 그런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봤습니다.


얼마전 모 교단에서 김성수 목사님이 이단이니 어쩌니 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입가에 웃음 짓고는 '이런 변(變)이 있나.......'했습니다. 감히....감히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러셨겠지만 뭐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어쩌면 생전에 목사님이 다 예견하셨던 일이기에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쩜 우리 인간들은 결국 이 모양일까 싶은 자괴감에 조금 서글펐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이사야의 말씀처럼 우리가 결국 내어놓는 우리의 의라는 것들이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똥걸레 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이런걸 두고 하는 얘기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르니 한편으론 감사하더군요. 사람들은 스스로 이렇게 닦는게 맞느니 저렇게 닦는게 맞느니 하며 똥닦는 방법으로 고민을 합니다만, 우리는 모두 똥덩어리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래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변(便)이 있나.......'
마침 최근에 듣고 있는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김성수 목사님께서 진리의 편에서 살게 될 쓸쓸한 우리 가족들을 위해 얘기해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힘내세요....진리는 늘 단두대 위에 있었고 거짓은 언제나 왕좌의 뒤에 숨어 있습니다...."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입니다.
걸레로 쓰던걸 어느날 수건으로 쓰는 사람이 없고 걸레는 결국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똥묻은 바지를 빨다보면 그냥 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좋은 세제로 열심히 빨다보면 똥냄새는 지울 수 있을지 몰라도 아마도 한번 더럽혀진 똥 묻었던 바지라는 마음 속 생각은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스스로 '의'라고 내어 놓을만한 뭔가가 있기는 커녕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똥묻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지극히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히 진리를 운운하며 단두대에 목을 내놓고 자시고 할 사람이 못됩니다. 하지만 우리 김성수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를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한을 통해 복음을 전해주신 요한복음이 있듯 김성수 목사님을 통해 주신 '성수복음'이 저에겐 진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결국은 우리 모두가 각자 이름으로 우리에게 복음이 되게 하시고 당신을 위하여 복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습니다. 규만복음으로 내 놓을 수 있는 건 비록 지금 똥걸레일 뿐이지만 그런 저도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여 주신다니 그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저와 우리서머나 가족들을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감사하게 하시고, 어둡고 추운 그늘 속에서도 따스한 양지를 품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님께서 물으신다면......
누구처럼 수줍게 저도 얘기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다 마다요....주님.....




김미숙 15-10-21 14:09
    
글을 쓰신 집사님께도 감사! 글을 올려주시는 집사님께도 감사!^^
최미숙 15-10-22 07:11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한 맘으로 귀한 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리를 나눌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김미숙 15-10-22 15:43
    
옴마!
최 집사님은 어디 사시는 '미숙'이세요~?
최미숙 15-10-23 10:45
    
안녕하세요 김 미숙 집사님! 저도 깜짝 놀랐는데...저는 일본 동경에 살고 있습니다.
평소 조규만님의 글을 즐겨 읽고 많이 위로받고 있답니다. 이곳에선 예배가 여의치 않아
혼자 설교 번역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김집사님은 어디에 사시나요?
김미숙 15-10-24 12:22
    
반갑습니다, 집사님!
어린시절 학교 다닐 때도 '이 미숙'이 말고 '그 미숙'이 '저 미숙'이가 늘 옆에 있곤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저는 버지니아 샬롯츠빌에 살고있어요. 저도 조규만 집사님 글 읽는 거 참 좋아해요. 또다른 눈물이고 기쁨이에요.
최미숙 15-10-25 07:30
    
저도 많이 반갑게 생각합니다. 혹시 카톡하시면habiru0804  찾아 보시겠어요.
이장혁 15-11-03 00:51
    
집에 연로하신 부모님과 저 사이에 성수복음이라고 칭하는데
동일하게 칭하시는 분들도 계셧군요

귀한 편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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