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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27 07:27
   내일의 기억 -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2,531  


어느날 대학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들어 온 아내가 깔깔대며 웃습니다. 

무슨일이냐고 물어보니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라 자꾸 웃는다는 겁니다. 아내가 모임에서 흔히들 그러듯 말안듣는 아들 녀석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얘기를 했나봅니다. 그 얘기를 듣던 어느친구가 아내에게 그러더랍니다.
"야....말도마...너 아들 배위에 올라타서 목 졸라 본적있어? 난 그정도였다구~"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아내에게 그얘기는 어쩌면 위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똑같구나...그런거구나...우리아들만 그런게 아니구나......하고 말이죠.


안타깝게도 지금 저희 아내와 두아이들 모두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기독교라고들 합니다. 교회도 안다니면서 그런말이 나오냐고 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걱정안해도 된답니다. 헐...이건 무슨 베짱이지....이게 진정한 믿음인가.....

그래서 주일날 혼자만이 조용히 준비를 하고 교회로 가는 제발걸음은 그렇게 가볍지가 않습니다. 다 제탓인걸 아니까요.......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온가족이 주일날 교회에 가는것만으로도 얼마나 큰기쁨이 될런지 요즘은 상상도 안됩니다. 

어린시절에는 억지로 끌고 다녔는데 이젠 그것도 쉽지가 않네요. 그렇게 아픈 마음으로 어느주일을 맞이하여 온가족이 점심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쳐묵쳐묵 밥을 먹으며 자기들끼리 주일 오후의 스케쥴들을 얘기하는데 교회에 가는건 안중에도 없는 아이들과 아내를 바라보니 웬지 부화가 치밀어 오르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반찬투정하며 밥을 먹고 있는 아들에게 다소 억지스러운 뜬금포를 날렸습니다. 

"민석아....너....혹시 목사 할 생각있냐.....??"
순간 흐르는 정적.....서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도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딸도 이게 뭔얘기인가 싶어 제 의중을 분석하기도 전에 아들이 이내 곧 결심했다는듯이 입을 열어 답을 합니다. 그 표정이 짐짓 비장하기도 하고 담담하기도 한것이 나라를 구하기 직전의 얼굴입니다. 

"그러죠....전 좋아요........."


뜨아.....아들이 목사할 생각이 있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별 생각없이 던진 분노의 뜬금없는 얘기였는데 그얘기를 듣고 좋다고 얘기하는 아들에게 제가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먼저 떠오른 생각은 솔직히 아차 싶었습니다. 어쩌자고 이넘이 목사를 하겠다는거지? 교회도 안나가면서 말이죠. 진짠가? 이런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라는건가 싶은게 모골이 송연해지더군요. 

이윽고 밀려오는 순간의 두려움은 아들이 목사가 되면  나는 목사의 아버지가 되는 거니까 무척 깝깝할것 같은데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뜨...새벽기도도 매일 다녀야 될것 같고 뭔가 좀 경건하고 믿음이 흘러 넘치는 사람처럼 보여야 될텐데 그건 좀 아니다싶더군요. 더 멋지고 화려한, 전도가 유망한 좋은직업도 많은데 불쑥 내밀어 본 제질문에 아주 오랜동안 이미 생각해 본 적 있다는듯 목사가 되겠다고 대답한 아들이 순간 무서워 졌습니다. 

그렇게 입안의 혀와 밥과 반찬이 입속에서 공중부양을 한 상태에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수습해야 되는거지?....'그래...아들을 하나님에게 바치는거야...기쁘게 생각하자....그럼 이제 주여 제아들을 받아주소서 해야되는건가??' '아들아....김성수 목사님같은 훌룡한 목사가 되어라....이래야 되는건가??' 그랬다가는 하나 있는 귀한 아들 목사 만들었다고 마누라한테 맞아 죽을것 같은데....ㅠㅠ 그렇다고 웃으면서 아드님아, 농담도 잘하심돠....목사는 뭔목사....할게 그렇게읍냐? 그냥 해본 얘기여. 잊어. 그러기도 글코.....아.....진짜.....어뜨케.....


저의 뇌가 놀랍도록 빠른 스피드로 이난감한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해결해야되는지에 대한 답을 꺼내놓기 전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가련하고 불쌍한 아버지를 다시 한번 충격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은 목살인거죠??"
아...진짜...옆에 돼지족발 뼈다구나 삼겹살 덩어리같은 거 있었으면 진짜 디지게 패는건데... 나도 이참에 올라타서 목한번 졸라봐? 누가 엥겔가족의 장남 아니랄까봐 고뇌에 찬 아버지의 철학적 역설적 질문을 그저 돼지목살 수준으로 받아들이는건지 진짜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렇치...의사 집안에서 의사 나오고 교수 집안에서 교수 나온다더니 쳐묵쳐묵하는 엥겔계수 만땅 집안에서 뭐가 나오겠어요. 목사 할 생각 있냐는 질문을 목살 생각있다는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분위기에서 제가 어찌 심오한 복음을 전파하겠습니까....에혀.....진짜 주여 어찌 하오리까입니다 ㅠㅠ.....

그렇게 저는 또 혼자 교회를 나갑니다. 언젠가 아이들과 복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날이 오겠지 하는 큰소망을 간직한채 말이죠.

 

꼭 일본 남자같이 생긴 일본 남자와 꼭 일본 여자같이 생긴 일본 여자가 부부로 나오는 일본영화가 있습니다. '내일의 기억'이라는 영화입니다. 남자배우인 '와타나베 켄'은 할리우드 감독들도 무척이나 중용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남자 배우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여간 이남자분과 '히구치 카나코'라는 참한 아줌마가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들입니다.  

남자주인공 '사에키'는 잘나가는 광고회사의 부장님입니다. 그는 가족과 일밖에 모르던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그에게 '치매'가 찾아옵니다. 영화 속에서 50살도 채안되는걸로 나왔던거 같은데 하여간 무지 일찍 치매가 찾아옵니다. 
당연히 충격에 휩싸이고 그래서 현실을 부정도 해보고 외면도 해보고 숨기려고도 해보지만 그는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과정속에서 딸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남자는 집에만 쳐박혀 점점 작아지면서 자신의 기억들을 서서히 잊어 버리면서 영화는 강물처럼 서서히 흘러갑니다. 사에키는 하나하나 어제의 기억들을 잊어 버리면서 내일의 기억을 걱정합니다. 내일의 기억은 또 무엇이 남을지 걱정하면서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만은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아내의 이름 '에미코'가 새겨진 도자기 찻잔을 들고 숲을 헤메이는 장면은 슬프기만 합니다. 행방불명 된줄 알고 애타게 그를 찾아 온 아내를 둘의 첫만남의 계기가 되었던 그숲에서 다시 만납니다.
한손에는 그렇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 새겨진 찾잔을 들고 있지만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사에키는 아내를 바라보곤 가슴 먹먹하게도 아내에게 묻습니다. "난 사에키 마사유키라고 합니다......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내일의 기억'이라는 말은 웬지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내일'이라는 미래스런 단어와 '기억'이라는 과거스런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를 가지고 본 영화입니다 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니 주인공에게 내일의 기억은 또 어떻게 변할까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하지만 이상하게 저에게는 이 제목이 웬지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내일의 기억의 의미는 세상의 소중한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잊혀지거나 멀어져 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에게 어제의 기억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새롭게 만들어질 아름다운 내일의 기억을 소망하는게 어떨까하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우리처럼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의 기억을 '완성된 묵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건 실력없는 저에게는 버거운 일입니다만 한편으로 우리는 세상을 조금씩 잊으며 버리며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묵시속 하나님이 이미 주셨다고 하는 내일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희미한 생각에 이르러서는 내일의 기억이라는 명제가 가볍고 즐거운 문장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교회 중고등부를 다니던 한참 사춘기시절 언젠가는 난데없이 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구원을 못받아서 지옥에 가게 될까를 생각하며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위로가 되었던 말씀은 그 유명한 사도행전의 한 말씀이었습니다. 
'주예수를 믿으라....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앗싸..가오리...참 즐거운 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장로시고 어머님은 권사시니 말씀대로라면 저희집 모두가 구원 받는건 따논 당상 아니겠습니까. ㅋㅋ참 든든하더군요. 

물론 훗날 김성수목사님 설교를 듣고는 제대로 이해는 안되었지만 적어도 그말씀이 제가 생각하는 그런뜻은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만......하여간 그성경구절로 청춘을 버텼더랬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생각할 수록 무서운 성경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야기가 너무 무섭고 싫습니다. 물론 저에게 다가오는 공포는 뜨거운 불구덩이속 부자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사로의 손끝에 물을 적셔 잠시라도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는 부자의 고통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그거야 뭐 지옥에 안가면 되니까 우찌우찌 해결된다고 치겠는데 암만 생각해도 누가복음 16장 23절이 너무 너무 무서운 겁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헐.......ㅠㅠ
사실 이구절의 의미가 진짜 지옥에 가면 멀리 천국을 볼 수 있다거나 혹은 반대로 천국에서 설설 끓는 지옥의 불구덩이를 관광 할 수 있다는걸 얘기하는게 아니라는건 알겠지만 그래도 가본적 없는 천국을 어렴풋이 떠올려 볼때 정말 너무 끔찍합니다. 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보며 갈증을 느끼는 고통은 그렇다치고 천국에서 지옥을 바라보는 고통은 너무 힘들것 같습니다.


나사로가 제가 되고 부자가 제아들이나 저의 가족이 된다고 상상해봅니다.
저는 하나님의 품에서 홍알홍알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저기 멀리 보니 세상에서 아들이었고 딸이었고 아내였던 사람들이 마구마구 불속에서 허우적 거리는걸 보게 된다면....너무 끔찍한 겁니다. 아니 만약 그걸 볼 수 있다면 그게 천국이겠어요? 아이구...내말 좀 듣지 그랬어....어쩌면 좋아....물이라도 좀 떠다주고 싶네 ㅠㅠ 
이러면서 천국살이 행복하겠습니까? 언젠가 이고민을 얘기하자 저와 친한 어떤 믿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천국은 우리의 모든 기억이 리셋되는 또 다른 차원의 상상 할 수 없는 좋은곳일거라고.....그러니까 그런식으로 가슴 아플일도 없을거라고 하더군요.....짜식....가본적도 없으면서.....하여간 제가 걱정하는 그런 상황을 하나님이 천국에 만드시겠습니까만, 인간의 한계인지라 마구마구 걱정이 되는겁니다. 

하여간 이구절에서 말씀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물론 제가 생각하는 그런것은 아니겠습니다만 하여간 참 괴롭습니다. 만약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우리들의 기억을 리셋하거나 지워버리신다면 우리가 광야의 인생을 사는 이유도 없겠지요. 이세상 살아가며 알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온전히 알아 먹는게 하나님의 계획이셨다면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가족들이 어떻게 어떤 삶을 살게될지 제가 알 수 없겠습니다만 그저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할 뿐입니다. 솔직히 저자신도 나사로가 될지 부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또 배워도 천국을 그저 저희 가족들의 천국표 펜션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심한 저자신도 실망이지만 세상은 물론 하나님의 나라조차도 그곳의 중심이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참 불쌍한 돼지같은 존재입니다.


기억이란 단어는 어린시절 안방의 아랫목처럼 따뜻하고 안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하도록 무섭고 잔인한 단어입니다. 가족이란 단어는 어쩌면 기억이란 단어보다 더욱 그렇습니다. 기대하는 만큼 두렵고 사랑하는 만큼 무서운 또다른 '나'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면 할 수록 더욱 커다란 두려움이 한켠에 자리합니다. 
하나님이 선물해주신 또하나의 나, 가족....나 하나조차도 버거운 세상살이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아들 모두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하신 내일의 기억을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고 안다니고의 문제가 모든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래도 교회조차 다니고 있지 않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늘 마음이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유언을 남겨 놓았습니다.
"애비 죽거든....부디 이소원 하나만 들어다오.....김성수목사님 설교를 요한복음이나 창세기중에서 하나만 골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다오...기왕이면 다 들어줘...그리곤 교회를 다니던 안다니던 알아서들 해다오"
그리고 가끔 문득문득 다짜고짜 아이들 불러 세워서 확인합니다.
"아버지 유언이 뭐라고???" "김성수목사님 설교 듣는거욧!!!"
그렇게 닥달을 하고 채근을 해도 마음은 여전히 묵직하기만 합니다.


이제 추석이 되면 또 달은 떠오르고 가족들은 목살을 구워먹겠죠.
큰달님 떠오르시면 달님 바라보며 내일의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만은 기억하겠노라고 찻잔에 이름을 새기어 다니면서도 결국은 아내를 만나게 되었을때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에키는 어쩌면 어제의 기억만을 간직한채 내일의 예수는 잊고 사는 우리의 또다른 모습은 아닐런지요.......


부디 어제의 기억들 모두 다 버려도 오직 예수이름만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간절히.......그런 삶이 되기를.......소망합니다.


행복하시기를.......




최미숙 15-09-28 09:33
    
아멘. 감사합니다...
박창선 15-09-29 01:26
    
그렇게 살고있는 저에게 공감을주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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