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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01 05:20
   마음의 소리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2,399  


아주 오래전 같지만 그렇게 오래전은 아니었던 어느시절 한때 '무스탕'이 엄청 유행이었습니다.
어쩌면 동네의 좀 있는집 개들도 한벌씩은 걸치고 다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어느날인가 저희 아내도 저에게 그비싼 무스탕을 한벌 사준다고 저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물론 백화점 세일기간이었습니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얼떨결에 당시 돈백만원하던 무스탕을 한벌 떡하니 걸쳐입으니 정말 따숩고 좋더군요. 
지금 보면 웬지모를 촌스러움에 개나 줘버려할지도 모를 패션이지만 하여간 당대에는 정말 누구나 한벌쯤은 입고 다니던 옷이었습니다. 무스탕을 걸쳐입은 저를 보며 아내가 흡족한듯 생색을 내며 한마디하더군요. "명심해~!! 나한테 잘하라고 사주는거야....깨끗하게 입어야되...한 십년쯤 입어....."

내돈 주고 사입는데 아내가 생색을 내는건 뭔조화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좀 난감했지만 하여간 다소곳하게 대답했습니다. "넵.....감사합니다....곱게 입을께욤"


아마 그때 저는 아주 순진하고 착한 기독교인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착하게 살아야지 하면서 나쁜짓 많이 하고 다니던 젊은 시절이었는데 아내가 사준 무스탕을 떡하니 걸쳐입고 출근해서는 아주 잠깐 당혹스런 고민에 빠졌던 기억이 었습니다. 당시 사무실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는데 퇴근할 무렵이 되어 고이 모셔놓은 무스탕을 걸치고 나가는 순간 늘 사무실 앞에 죽때리고 계시던 부랑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떠오르는 겁니다. 당시 무척이나 추운 날씨였는데 
늘 가을옷인지 츄리닝인지 하여간 아주 가벼워 보이는 꼬질꼬질 더러워 보이는 옷들을 몇겹이나 껴입은 불쌍한 노숙인 할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가슴속 깊은 한구석에서 마음의 소리가 울려오는 겁니다. 

"규만아.....무스탕을 벗어서 할아버지에게 입혀드리렴...하나님이 기뻐하실거야......"


헉.....당황.....황당.....머지...... 하필 이럴때 마음의 소리가 울리다니......어쩌라는거지.....
무스탕을 산지 이제 겨우 일박이일됬는데 이귀한 무스탕을 노숙자에게 주란말인가......말도 안돼...이건 억지야....그렇게 따지면 모든 재산을 팔아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 나눠주고 살아야지.... 그런데 그런 기독교인이 얼마나 된단말인가? 어떻게 새옷을 벗어서 노숙자 할아버지께 입혀드리냔 말야... 할아버지는 아마 깨끗하게 입지도 않을껄....귀한지도 모를거라구....그래...이건 잘못들린 소리일거야... 하나님도 이해하실거야. 그리구 마누라한테 얼마나 혼나겠어....아내의 성의를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버리면 
안되는거지....

머리 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100분토론을 하는동안 저는 조심스럽게 회사앞을 나섰습니다.


그리곤 결심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마누라가 더 무섭다구....무스탕을 벗어드리는건 정말 무리야....' 그리고는 퇴근길 빌딩구석에 늘 자리잡고 있던 할아버지옆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부디...할아버지...퇴근하셨기를....아님 먼곳으로 이사라도 가셨기를........'
그런데 그때 할아버지는 놀랍게도 어디서 낫는지는 몰라도 아주 깨끗하고 두툼한 외투를 입고 계셨습니다. 굳이 제가 벗어드리겠다고 해도 됐네 이사람아~ 할 정도로 좋아보이는 옷이었습니다. 누군가 새옷을 구해드린것 같았습니다. 아....정말 다행이다....괜히 고민했네....우씨.....
그리곤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액면을 들켜버린거죠. 

오....주여.....왜 저에게 이런 시험을.......ㅠㅠ


얼마전부터 아내가 예쁜 속옷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누리딩딩하고 실밥이 삐죽삐죽 튀어 나와있던 낡은 속옷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안타까운 마음에 이쁘고 좋은 팬티하고 브라 좀 사입으라고 하면 아내가 그랬습니다. "보이지도 않는데 모....뭐하러 그런데다 돈을 써...난 괜챦아....그럴돈으로 맛있는거나 사먹자구~"
그러던 아내였는데 갑자기 예쁜, 그래봤자 뭐 대단히 비싸지는 않을것 같은 속옷을 사입는겁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이제 보여줄일이라도 생긴거냐?....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거냐?..... 그러자 아내가 아메리카 신대륙이라도 발견한듯 놀라운 표정으로 얘기하더군요.
"그게말야. 생각해봤는데, 갑자기 교통사고나 혹은 뭔지모를 질병으로 쓰러지기라도 했을때 말이지. 앰뷸런스가 와서 나를 싣고 병원 응급실에 갔을때....아무래도 옷을 벗기지 않겠어??
그런데 그때 의사나 간호사들이 내속옷을 보면 놀라겠더라구....아니 이여자 겉은 멀쩡해가지구 속옷들이 왜이러지? 할것 같더라구, 서로가 얼마나 민망한 일이냐구......그래서 결심했지...이쁜속옷입고 있다가 쓰러져야겠다구......" 오홋~천잰데......진짜 그러네......


그 순간 제 빤쮸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입고 있는 빤쮸들이 얼추 십년은 된것들이거든요. 아내가 빨래한 옷을 개면서 당신 속옷 좀 사야겠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해져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빤쮸를 들고 놀리기라도 하면 통풍 잘되고 좋기만 한데 뭐하러 사냐면서 힘없이 축축 늘어진 탄력없는 고무줄의 빤쮸들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며 계속 입겠다고 
고집했었는데, 저역시도 병원에 실려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겁니다. 그래, 이건 정말 응급실에 계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거 같으다. 그분들이 뭔죄람....그래서 저도 앞으로 깨끗하고 멀쩡한 빤쮸를 입어야 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몇일후 쿠폰할인에 이런저런 할인을 얹고 또 얹어 쿠팡질해서 주문한 15000원에 열장하는 눈부시도록 컬러풀한 새빤쮸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입고 있던 아주 오래된 빤쮸와 서랍장속의 모든 빤쮸들을 모두 꺼내어 버리는데 정말 온갖 잡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더군요. 너무도 편하게 잘입었는데 이제 이아이들을 보내고 불편한 빤쮸들을 입어야하는구나 싶으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파왔습니다.


2002년에 만들어진 독일영화 '신과 함께가라'라는 영화에서 네명의 신부가 나옵니다.
카톨릭에서 이단으로 파문당한 칸토리안이라는 교파의 신부들입니다. 이교파는 성령이 '소리'로 오신다고 믿고 그소리를 따라 살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는 얘기족족 다 그럴듯한데 하여간 이단으로 판명되어 지금은 이탈리아와 독일 딱 두곳의 수도원만이 이교파를 지키고 있답니다. 

그들은 늘 찬송하고 묵언수행을 하고는 합니다. 실제 목소리인지 더빙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속 신부님들은 너무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찬송가를 부르곤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시련이 닥치어 수도원 원장님이 돌아가시고 그분의 유언으로 교파의 오리지날 버전의 진귀한 교리책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진지한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잔대가리로 익숙해진 저같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단순하고 반전없이 진행되어 다소 식상합니다만 웬지 뻔할것같은 스토리에도 은근 기대하며 보게 만드는 그런 묘한 여운으로 관객들을 신부님들의 여행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독일의 세신부님이 머나먼 이탈리아로 걸어서 길을 떠납니다.


그러다 한신부님은 '가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무리를 떠나고 다른 한신부님은 '명예'의 유혹에서 빠져나
오질 못해 여정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가장 젊은 신부인 '아르보'는 끝까지 길을 갑니다. 영화는 쉽게 예상되듯 떠났던 신부님들이 다시 아르보와 함께 이탈리아로 가는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영화중간 두신부님은 옷이 바뀝니다. 어머니에게 돌아갔던 신부님은 츄리닝으로, 그리고 카톨릭의 높은자리에 앉았던 신부님은 양복으로 말이죠. 영화내내 아르보만이 수사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내내 수사복을 입고 믿음을 지켰던 젊은 아르보만이 결국 수사복을 입은 상태로 여행중 만난 '여자'를 선택하고 결국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떠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르겠다고 하며 교회를 나서는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영화는 구도자들의 여러모습을 통해 신과 함께한다는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새삼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김성수목사님의 설교를 듣기전까지는 성경에서 '속옷과 겉옷'의 이야기들이 나오곤 하면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모르겠습니다. 전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아담이후 입혀주시고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부터 신약성경에 나오는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도 주라는 말씀에 이르기까지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은 아 그런거구나 싶다가도 홱 돌아서면 그얘기가 무슨 얘기였더라 하고는 홀랑 까먹어 버리는 자이기에 '속옷을 달라니 그거 변태 아니에요? 하시며 재미있어 하시던 김성수목사님의 장난스런 목소리 밖에는 남는게 없습니다. 
사실 목사님을 통해 설교를 듣기전에는 그저 어려운 사람만나면 홀딱 벗고 다 주라는 나눔에 대한 권면의 말씀 정도로만 알고 불쌍한 사람만나면 어떡하나 싶어 새옷입고 다니는 날은 불편했던 기억만이 생생합니다. 물론 한번도 입고있던 무언가를 벗어서 어려운 자들에게 벗어주었던 적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분명히 제가 불편한건 진리를 알기전이나 후나 결국 저에게는 사랑이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속옷과 겉옷의 진리를 엷게나마 알게 되기전이나 후나 저에게는 여전히 벗어버리지 못하는 '자기의 의'라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는 그런 옷만을 걸쳐입고 있습니다. 아무리 벗어 버리려고 해도 벗겨지지 않는 문신처럼 몸에 새겨진듯한 더러운 옷이 내몸에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습니다. 손톱을 세우고 때수건을 동원해서라도 이옷을 벗어버리고 어떻
게 하든 깨끗하고 좋은 새옷으로 갈아 입으려고 애를 써봐도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그것을 벗어나려 할때마다 더욱 조여오듯 제숨통을 조여 올뿐임을 느낍니다. 

그리곤 초조해합니다. 나의 본모습, 나의 벗은 더러운 모습을 들키는건 아닐까... 나의 겉옷에 가리워진 더러운 속옷을 보고 남들이 비웃으면 어떡하나 하면서 괴로워 합니다. 그러면서도 다른이들에게는 이사야의 말씀처럼 아주 더러운 똥걸레 같은 옷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는 나도 이제 좀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잘난체를 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무섭고 힘들때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어 들어가면 모든것이 잘될것 같았던 그마음으로 하나님의 덮으심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사랑 아니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냄새나는 더러워진 속옷들을 덮어주시는 그은혜만을 바라볼뿐입니다. 눈부시도록 희디 흰 그하얀 은혜로 나의 더러움을 덮어주신다고 하니 그저 부끄럽지만 그덮으심 안으로 숨고 싶을뿐입니다.
이제는 희미해진 마음의 소리를 따라 주를 향하여 저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시고 주를 향하여 저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부디 저같은 이에게도 주님께서 동행을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서머나 성도 여러분......
바이야 콘 디오스
Vaya Con Dios...............
(신과 함께 가라)




김수희 15-11-13 00:41
    
울면서도 웃을수있음에
그은혜에 그말씀에 오늘도 버티고있습니다
집사님 글 재미있게읽었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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