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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09 15:56
   2003년의 김성수
 글쓴이 : admin
    조회 : 25,928  


엘에이 온누리교회 청년부 전도사 시절 게시판에서 흔적을


Re..김성수 전도사 입니다

작성자: 김 성수   작성일시: 02/08/2003 11:16

해방신학, 자유주의, 과정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참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 심지어 개미 한 마리가 죽는 것까지 아니 세균 한 마리의 이동까지 간섭하십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car racer가 경기도중 차가 전복되어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동차에 10센트짜리 부품이 하나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경륜되는 인류의 역사 속에 아주 작은 것 하나가 하나님의 섭리를 떠나 돌아다닌다면 그 작은 것으로 인해 역사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인류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계획하셨다는 것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는 작정(decree)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작정을 이끌어 가시는 아주 세밀한 힘을 우리는 섭리(providence)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정 속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부분을 우리는 예정(predestination)이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왜 이 땅을 허락하셨는가? 질문해 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식만들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장정만 60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 가기 전에 다시 인구 조사를 합니다. 그 때의 인구가 정확하게 장정이 60만인 것을 여러분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류의 구속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이 광야로 표현되는 세상에서 한번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새 사람 만이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에 의해 죽습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거듭남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열심과 사랑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다듬어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죽는 데에 항상 기쁨만 있어서 되겠습니까? 항상 번영만 있어서 되겠습니까? 거기에는 눈물과 한숨과 고통이 동시에 쓰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같은 논리를 전개 하는 것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 그것이 우리가 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 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위정자를 세우시는 것도 우리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처사 같더라도 지나고 보면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하더라는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처참한 전쟁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9.11테러를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셨는가 우리는 의아해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관심을 갖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에 관심이 있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관심이 있으십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들에게 선한 결과가 오도록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완성해 놓으신 영원한 나라에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입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주를 경륜하시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 생기는 사건이나 상황은 어떻겠습니까?

kms님께서 물으신 북한의 김정일에게 그 땅의 백성들이 복종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저는 yes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복종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인정한다고 해야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신앙 인들을 걱정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지 못하고 마음껏 예배하지 못하는 것을 가슴아파 하십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의 핍박이 끝나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 부터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풍요의 땅 미국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착각을 합니다만 지금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가짜들이 있습니까?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어서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면서 엉뚱한 종교 다원론을 흘리고 십자가와 보혈은 간 곳 없고 이 땅에서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정일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그 땅에 지도자로 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실수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이고 선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지금 실수하고 계시니까 빨리 정신 차리고 그들을 돌아보라고'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전지(omniscience)하시고 전능(omnipotence)하신 그 분께서 실수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기독교가 사회참여에 관심이 있다면 사도 바울이 왜 당시의 노예제도를 그대로 인정했겠습니까? 오히려 종들의 할 일 상전의 역할을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엡6:5-9)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각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그리고 바울은 당시 로마의 압제에 대항해서 싸우거나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가이사에게 세금을 잘 바치라고 독려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회를 바꾸는데 힘을 쏟아 부어서는 안됩니다. 그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살아 낼 때 핵폭탄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격적인 대우와 처사를 위해 촛불 시위 같은 것 하면 안됩니다. 보도블럭 깨서 경찰 향해 던지며 민주주의여 만세 ! 외치면 안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주신 완벽한 환경에서 죄를 범한 것처럼 우리 인간은 환경에 따라 성품과 인격, 신앙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4년이 넘게 신림동 철거민 촌에서 야학을 인도하고 빈민 운동을 해 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이대로 놔두시는가? 하나님께 삿대질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유는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밥 한 숟가락 더 먹게 만들어 준다고 해서 결코 그들의 영혼에 유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언약에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성경이 말하는 유일한 "복"입니다.

사회사업과 사회참여는 타 종교에서 더 열심입니다. 선교지에 가서 빵공장 세워주고 유치원 세워주고 옷가지 걷어다가 나눠주고 하는 것은 불교나 이슬람이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오직 거기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마귀의 일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지상 낙원을 이루어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살수 있는가를 궁리하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너희들 안의 그 선을 개발해서 착하게 살자 , 선하게 살자'고 속삭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필요없습니다. 그들의 능력이 그들을 충분히 구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미 그 능력을 에덴에서 상실해 버렸습니다. 예수와 관계없는 선은 어떻게든 이기적인 선행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이 함께 하지 않는 선행은,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기독교의핵심은 '영혼의 구원'에 있지 사회를 개혁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나간 아이가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약을 하고 술집에 출입하고 성적인 타락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사회가 썩었으니 사회를 고치자고 말합니다. 성경은 사회를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집을 나온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처해진 상황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떳떳하게 살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이견이 있으신 분은 답글을 다십시오.

온라인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실명을 기입해 주세요.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교리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그 혼합주의의 홍수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청년부를 맡으면서 우리 청년들에게도 앞으로 강조해 나갈 reformed doctrine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김성수 전도사




admin 14-12-09 16:00
    
2004년 남가주 교회를 개척하기 1년전 쯤이네요.

다른 흔적들도
http://www.anconnuri.com/home/search?utf8=%E2%9C%93&keyword=%EA%B9%80%EC%84%B1%EC%88%98&x=0&y=0
조영목 14-12-09 19:44
    
요즘 히브리서 새벽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청년 김성수를 생각했습니다.
전도사 김성수가 그리워지네요.
이연숙 14-12-10 20:15
    
모태신앙 50년을 넘을때까지 "아! 저런천국 가고싶지않다...." 를 얼마나 속으로 부르짖으면서도 교회생활을 성실히도 했읍니다. 이해 안되는 말씀에 부딪칠때마다 "인간이 하나님을 어찌 다 이해하랴... 때가되면, 필요하면 깨닫게 하시겠지...." 넘어 갔읍니다. 김성수 목사님 만난뒤론 그 하늘나라가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성경말씀 읽는것도 재밌읍니다. 강해말씀으로 풀어주는 스승이 있으니까요. 전도사 시절의 목사님 글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감사의 눈물입니다. 이제라도 찾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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