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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20 22:13
   드라마 ㅡ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0,688  




아주 어렸을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그친구의 소식을 들은건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를 통해 오랜만에 그친구의 소식을 듣게 된것입니다.
 
그친구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좋아하던 첫사랑이 있었다는군요. 그런데 그녀는 그친구의 마음도 몰라주고 그만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났답니다. 시름에 젖어있던 그친구는 결국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내고 있었답니다.
첫사랑 그녀를 잊지 못하고 말이죠.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첫사랑 그녀를 만났답니다.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그의 사랑이 봄날의
아지랑이 마냥 스물스물 피어올랐음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녀는 외국에서 살다가 잠시 친정에 볼 일이 있어서
귀국했는데 마침 그친구를 길에서 만난 겁니다. 둘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해후에 가슴 설레여하며
차한잔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차한잔 그리고 식사나 한끼 그러다 술이나 한잔...
그러다 그만 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친구의 곁을 떠나 우리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친구와의 하룻밤으로 인해 그만 아이가 생겨 버렸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의 추궁으로 인해 결국
그녀는 하룻밤 불륜을 고백하게 되었고 결국 그남자와 헤어져 귀국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슬픈 그녀에게는 그친구가 있었죠. 기다렸다는듯이 그친구는 그녀를 책임지고 그렇게 결국 아이 낳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얘기를 듣고 제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이랬습니다.
"으아~이거 완전히 순애보네....한편의 드라마야........."

김성수목사님은 어느 설교에서인가 '그림 같다'라고 표현하는 우리의 말을 통해 우리의 깊은곳에 자리잡은 진실과
허상의 왜곡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적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놀라운 장면을 보면서 '그림 같다'라는 표현을 하게 되었을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주 오래전 그때의 훌룡한 그림은 눈으로 보이는 그무엇을 정확하게
똑같이 묘사할수록 좋은 그림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사진기'라는 것이 발명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똑같이 그림을 그려보아도 그림은 사진기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화가들은 그림에
생각을 불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이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도 보는 사람의 눈과 붓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통하여 본능적으로 살아 남기위한 몸부림을 시작한거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가다보니 추상화니 초현실주의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이건 뭐 그림인지 낙서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가는 그런 그림을 잔뜩 그려 놓고는 니들이 게맛을 알아 그러듯 감히 너희가 내예술세계를 어찌 이해하리오 하게
된게 그림의 역사의 작은 한부분이 된것이 아닐까 하는 무식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저 예술에 무지한 저의 단상입니다.
까 하는 무식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저 예술에 무지한 저의 단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가 '그림 같다'라고 감탄하는 이유는 '있을 수 없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또다른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명하고 확실한 경이로운 존재
앞에 서서 그것을 '그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그것들이 여지껏 보아왔고 생각했던 그것들에 비해서
'작위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기에 유한한 인간의 입에서 튀어 나올 수 밖에 없는 탄성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신 아름다움을 우리가 감히 어찌 이해하겠어요. 
그러니 아주 조금은 용서가 되는 표현이기도 한거죠. 
그렇듯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그무엇은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것 처럼 제한적이고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잠시 친정에 보내줬다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어 헤어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남자의 친구들은 저의 바보같은 탄성처럼 그들의 사랑을 순애보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친구앞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할 수 없었을런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그랬을겁니다. 
"나쁜 X놈들, 이거 완전히 막장드라마구만...."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진실인양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드라마에 묻혀서 삽니다. TV를 켜보면 여기를 돌려도 드라마 저기를 돌려도 드라마입니다.
지난주 평생 드라마라고는 본적이 없던 저희 매형을 주말밤마다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게 만들었던 모 드라마가
막을 내렸습니다. 뭔 얘기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싶어 저도 마지막 편을 보았는데 정말 가관이더군요.
그간의 대충의 스토리를 줏어듣고 그결말을 어찌 맺나 보았더니만 보면서 느낀 제 솔직한 생각은 심한 모멸감
이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한류로 세계를 빛내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시청율 1위 드라마의 마지막 편은 '작가'의
개인 놀이터일 뿐이었습니다. 그 놀이터 모래장난보다 못한 드라마 때문에 얼추 몇백만명은 족히 될듯한 시청자들의
시간을 빼앗은걸 생각해 보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출생의 비밀, 우연의 연속, 꼬이고 꼬인 관계, 온통 사장님 사모님뿐이고 공주님과 도련님들 뿐인 드라마들의
어설픈 권선징악에 울고 웃는 우리를 보면 참 슬퍼집니다. 결국 드라마도 그림처럼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어야지
눈길을 끄는것인가 봅니다. 그렇게 막장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그날을 기다리며 또다시 텔레비젼 앞에 앉아 그것들을
보게 되는 우리의 오늘을 생각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을 하면 사람들은 또 그럽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뭘 바라냐...."

철호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그는 어린 딸과 임신한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두남동생과 여동생과 함께 해방촌 달동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겐 처자식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짐과 함께 나날이 고통이 더해가는 양쪽 사랑니 두개의 고통이 있습니다.
가난에 찌들린 임신한 아내는 웃음을 잃어가고 전쟁의 상처로 자리보전을 하고있는 어머니는 거동을 못하고 누우신
채로 "가자..가자..."하며 헛소리를 하십니다. 고향인 이북을 떠올리며 헛소리를 하시는건데 괜시리 저에겐 달리 들리
더군요. 딸아이는 얼마전부터 새고무신을 사달라고 졸라대는데 그거 하나 쉽게 사주지 못해
속상하기만 합니다.
취직을 못하고 세상을 불평하며 건달 생활을 하는 남동생, 역시 공장 같은 곳은 안가고 돈을 쉽게 벌겠다며 양공주가
되어버린 여동생, 그리고 신문팔이를 하며 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어린 막내동생,
그렇게 누구하나 할것없이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은 그에게 버겁기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동생은 은행강도를 하다 붙잡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고 애기를 낳던 아내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고 맙니다. 황망하게 들이닥친 주체할 수 없는 고난에 힘들어하던 주인공이 어디로 먼저 가야할지 몰라 길거리를
헤메다 찾아간 곳은 치과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사랑니를 뽑아 버립니다.
한번에 하나씩 뽑아야한다는 치과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 바로 다른쪽 사랑니도 뽑아 버립니다.
그리곤 쓰러질듯 고통스러워하며 택시를 잡아 탄 주인공은 택시기사에게 노모가 계신 집으로 가자고 했다가 다시
잡혀간 동생이 생각이 나서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가 다시 아내의 주검이 있는 병원으로 가자고 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횡설수설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택시기사가 재수없다는듯이 한마디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 영화계에 발가락이라도 살짝 담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유현목 감독님의
'오발탄'이라는 영화입니다. 영화사적으로나 작품으로나 호평을 받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1961년도 영화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무척 오래전 영화죠. 전후 서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영화는 내내 암울하고 어둡
습니다.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수출하기도 한 이영화 오발탄의 영어제목은 'An Aimless Bullet'입니다.
그래서 총알이라는 Bullet 대신에 화살을 대신 바꿔 넣어보니 그것은 우리가 익히 배운 '죄'라는 단어가 되더군요.
과녁에서 벗어나 목표를 잃은 총알 혹은 화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주인공 철호가 더욱 안스러워
졌습니다. 그는 어쩌다 그렇게 힘든 고난의 주인공이 된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영화속의 그는 그저 선한 사람일뿐 다른 인물들에 비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거든요. 그에게 닥친 고통에 비하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웬지 요즘 그와 동화되어 말도 안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나는 지금 왜 이런 힘든 고통속에 있는것일까....내가 무엇을 잘못한걸까....
내삶의 고난은 어떻게 그리고 언제까지일까....하고 말이죠

죄라는 것은 '하마르티아'로 즉 '과녁을 벗어난 화살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이런 단어의 해석이 주는 의미는 사실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이런것들은 그저 우리에게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주어진 하나의 화두일뿐 그자체의 해석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혹 설교자들은 이런 단어 하나 가지고 하나님의 천국이라는 과녁을 향하여 제대로 날아가는 화살이 되기
위해 착하게 잘살자고 하던데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날아가는 화살이 자신의 노력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타겟을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화살이든 총알이든 그것은 그들을 세상에 출발시킨 궁수나 방아쇠를 당긴 자에 의하여 날아갈 뿐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화살이나 총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날려 보낸자가 과연 누구이 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날아가고 있는 화살이 아니라 날려진 화살로써 어딘가를 향하여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그 방아쇠를 당긴자가 막장드라마의 작가라면 오늘의 우리의 삶은 얼마나 허망하고 슬픈 일입니까. 
영화속 주인공 철호에게 마치 막장드라마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친 고난들이 그저 장난끼 넘치
는 한작가의 펜놀림에
불과하다면 그렇게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이 날아가는 오발탄이라면...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지만 우리의 끝은 삶과 죽음이니까요,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는 마법이 걸립니다.
모든 나쁜 사람들은 벌을 받고 모든 미움과 원한과 오해는 다 해결되며 그렇게 짜증나고 악독하
기만 하던 악인들은
전부 천사처럼 변하면서 마무리됩니다. 바보같이 참고 또 참던 주인공은 결국 모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사랑받고
성공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행복하게 마무리됩니다. 참 토나오나는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막장드라마 작가들은 욕을 먹지만 욕으로 시청율을 올립니다. 그렇게 비난과 욕을 먹으며 결국 인기작가가 되고
그렇게 욕을 먹었으면서도 그것으로 차기작을 보장받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논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해피엔딩도 아닐뿐더러 한심한 작가들의 손장난 수준으
로 간지럽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훨씬 막장같은 세상을 하루하루 보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주인공으로 사는 세상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막장드라마가
될것입니다.
 

우리의 갈곳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걸까요. 
결국 우리는 온갖 고난속에서도 자신의 썪은 이빨을 뽑아낼 궁리밖에 못하는 자들이지요.
그리고 나선 결국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릴뿐입니다.
그런 오발탄같은 저를 세상에 날려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그분의 자식만들기 프로젝트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염치없게도 허공으로 쏘아진 오발탄이 아니기를 바랄뿐입니다. 비록 지금 힘든 광야의 한가운데를 날아가고 있지만
우리를 날려주신 그분이 선한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 드릴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쓰시는 드라마는 완전할 것입니다. 그러니 과녁을 향하여 잘 날아가고 있는거겠죠? ^^;;
그렇게 즐겁지 않치만 즐겁게.....기쁘지 않치만 기쁘게 하루를 또 보냅니다.
 

우리목사님이 늘 그러셨습니다.
"힘드세요?  그럼 잘가고 계신 겁니다........."





이경란 14-10-25 07:28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단풍길을 걷다가도 ..
우리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이장혁 15-04-23 05:12
    
여러가지 좋은 것 많이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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