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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05 20:32
   남의 속도 모르면서 ㅡ 서울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18,576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늦어서는 종아리가 뻣뻣하고 뭉쳐서 걷기가 힘들었다는 하소연으로 약속시간에 늦은 핑계를 대신 

했습니다. 친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등산이라도 다녀왔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어제 늦게 새벽에 집에 귀가했는데 마침 아파트 우리동의 엘리베이터가 정기점검을 하느라 운행을 안해 집까지 

걸어 올라가느라 다리가 이렇게 아픈거라고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관심없이 듣던 친구는 그거 쪼금 걸어 올라간거 가지고 뭘 그리 엄살이냐고 그제서야 관심을 보이며 핀잔을 주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너 우리집이 몇층인지 아냐? 35층이야. 지하2층에 주차하고 35층을 올라가려니 결국 37층을 올라가야 된거라구. 

너 63빌딩 계단으로 올라가기 대회있는거 알지? 그거 힘들어서 아무나 못나가. 그런데 그거의 절반이 넘어. 

난 그러니까 마라톤으로 따지면 하프마라톤을 뛴거라구... 나...진짜 계단앞에서 한참 고민했다. 

어디 여관에서 자구 아침에 들어갈까 하구 말이야.

그러다 결국 엘리베이터 핑계대고 외박했다는 소리듣기 싫어서 에베레스트 등반하듯이 밤새 올라간거라구ㅠㅠ 

걸어 올라가면서 저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이 입에서 절로 나오더라..... 짜식이 남의 속도 모르면서......"

 

언젠가는 어느 아는분의 푸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집안에 작은 행사가 있어 시댁식구들이 좀 모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저녁을 준비하셨다는군요. 메뉴는 닭볶음탕이었구요. 

사람수도 있고해서 평소보다 조금 많이 준비를 했는데 저녁들 드시라고 상을 차리고는 마저 준비하던 음식 다 마무리 

하고 후식으로 미리 과일 좀 깎아 놓고는 이제 본인도 먹어볼까 하고 상 가장자리에 앉았더니만 글쎄 닭볶음탕이 

하나도 안남고 싹 비워져 있더랍니다. 순간 울컥하셨다는군요. 


한여름에 땀흘려가며 장만한 자기에겐 한번 먹어보라는 빈말도 한번 안하고 얄미운 시누이에 더 꼴보기 싫은 남편하며 

하나같이 다들 웬수처럼 보이더랍니다. 그게 흔해빠진 닭고기 한점 못먹어서 그런건 물론 아니었겠죠.

식구들 맛있게 먹여보겠다고 애써 준비했더니만 준비한 사람 성의도 몰라주고 자기들 입만 입이고 누구입은 주둥아리

인지 무심코 지나쳐버린 그무관심이 서운했던거겠죠.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원망할일이 아니다. 다음엔 닭을 한 열마리 볶아버려라. 

그래서 배터치게 먹게 하고 자기도 여유롭고 당당하게 보란듯이 양손에 닭다리 잡고 자기몫 챙겨먹으면 된다고 말이죠.

아예 기대를 버려야 됩니다. 그렇면 행복해집니다. 모든 사람마음이 다 내마음 같을거라구 생각하며 인사치레 기대하며 

살기에는 세상이 좀 빡빡해졌습니다.

 

옛날옛날 그렇게 힘들다는 보릿고개를 넘기던 어느날 시집간지 얼마안된 젊은아낙이 시장에서 친정동네에 사는 잘아는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시장 한귀퉁에 자리잡고 쭈구리고 앉아서는 하소연을 하며 울더랍니다. 

시집살이가 무척 힘들어서 사는게 너무 버겁다는 얘기였죠. 

잠자코 듣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는 젊은 아낙에게 물었습니다.

"아그야, 너 하루에 똥 몇번 싸냐?"

"저....세번 싸는디요...."

"아따, 그럼 되았다. 그만 인나라"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 똥 세번 쌀 정도의 여유면 죽는 소리하지말고 행복한줄 알라는 얘기인 거죠. 

먹을게 없어 피똥싸던 그때 그시절 하루에 세번의 응가를 할 정도로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것 그리고 화장실에서 하루에 

세번이나 쭈그리고 앉아 잠시나마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어디가서 죽는 소리 하지말라는 얘기인거죠. 

정말 힘든 사람들 속도 모르고 어디서 행복에 겨운 엄살이냐는 얘기입니다.

 

일본영화 중에 색깔이 있는 다양한 영화를 찍는 '소노 시온'이라는 감독이 연출한 '확실히 전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와 서먹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발병한 암을 계기로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잔잔한 영화입니다. 극중에서 아버지를 끔찍이도 간호하던 아들은 자신이 요즘 소화가 좀 안되는거 같고 더부룩하다고 

의사와 식구들앞에서 지나가듯이 얘기했다가 기왕 병원에 온김에 진찰이나 한번 받아 보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진단을 받아보니 불행히도 아들도 말기암입니다.

의사는 아버지보다 아들이 먼저 죽을 확율이 더 높아 보인다고 얘기합니다. 아버지가 낫기만 한다면 아니 돌아가실때 

돌아가시더라도 침대에서 일어나 퇴원하시는 날이 온다면 함께 꼭 낚시를 가겠다며 아버지의 쾌유를 빌며 기도하던 

아들은 그날 이후 기도의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제발 아버지가 자기보다 먼저 돌아가시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그나마 곧 돌아가실 아픈 아버지에게 아들이 먼저 죽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불효를 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늘 아버지 곁을 지키는 아들을 보며 효자라고도 하지만 아들은 누구에게도 말도 못하고 그저 

아버지의 쾌유가 아닌 아버지의 빠른 죽음을 바랄뿐입니다. 

결국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아버지는 먼저 숨을 거두시고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장애우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바램도 비슷하시다죠. 더도말고 덜도말고 우리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것 말

입니다. 비슷한듯 다른 맥락으로 묘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절대 굳이 보실 필요 없는 영화입니다) 

 

'크래쉬(Crash):충돌'이라는 영화 기억하시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을 쓰고 제작한 폴 해기스가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고 나서 그 다음해에 자신이 쓴 

각본을 이번엔 자신이 직접 연출하여 만든 그의 첫감독 데뷔작 영화입니다. 역시 이영화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등 3개부문을 차지합니다. 

의외로 첫연출로 이정도 성공을 거두는 감독은 사실 흔합니다. 첫작품에 대부분이 혼신의 힘들 다하거든요. 

그래서 첫끗빨이 개끗발이 되는 경우가 도박판 만큼이나 영화판에서도 다반사입니다. 이영화는 다양한 인종들이 다양한 

사건을 계기로 서로 얽혀서 진행이 되어갑니다.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과 아랍인 그리고 백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출연합니다. 반갑게도 동양인의 대표로 

한국인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자기잘못으로 교통사고가 났음에도 되려 큰소리치는 전형적인 메이드 

인 코리아 아줌마와 밀입국한 베트남인들을 인신매매하는 나쁜 남편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영화를 기억하는건 이영화 시작16분 22초후쯤 그 한국인 남편이 인신매매용 봉고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순간 차속에서 울려 퍼지는 한곡의 노래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계시록 어느설교 시간에 언급하셨던 김성수목사님의 노래입니다. 제목은 'City of Angel'이죠. 

그 노래중 '어머니 땅에서 잊었었던 사람...' 딱 그정도의 가사가 들립니다. 

너무 짧게 나와서 전에 모르고 무심히 볼때는 엥? 영화에 한국노래가 나오네 하고는 누구 노래인지 관심도 없었는데 

설교시간에 목사님 노래라는 걸 알고 다시 영화를 봤더니 진짜 반갑더군요. 이렇게 저렇게 목사님을 계속 만납니다. ^^;;

 

감독이 의도하고 고른 음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노래가사가 영화랑 좀 어울립니다. 캘리포니아로 떠나 살게 된 한

젊은이의 다짐이랄까 회한이랄까 하여튼 그런 의미가 담긴 목사님이 직접 가사를 쓰신 이곡이 머나먼 이국땅 진짜 캘리

포니아에서 겨우 인신매매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교포의 차속에서 흘러나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탐욕으로 가득찬 그 한국인의 모습에 노래가사가 오버랩됩니다. 

'어머니 땅에서 잊었었던 사람....바보 이반의 얘기를 떠올려....가슴 한켠에 깊이 새기고 걷네....'

목사님 가사속에 나오는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의 이야기에 나오는 탐욕스런 이반의 형들의 삶이 영화속에서 그나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교포의 모습에 투영되니 정말 절묘합니다.

과연 한국어를 모르는 감독이 이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선곡을 한것일까요?ㅋ 하여간 목사님


노래는 영화 OST 앨범에도 등장하는걸 보면 별 생각없이 선곡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997년 한국에서 활동하실때의 이 음악이 정말 수년후 정말 캘리포니아로 가실 생각이 있어서 쓰신건지 아니면 이미 

사모님과의 인연 때문에 LA를 왔다갔다 하시던 시절이라 쓰신 가사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결과인지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닌 참 재미있는(?) 곡입니다.

 

영화속 주인공들은 모두 인종에 상관없이 외로워 보입니다. 모두의 표정이 어둡고 근심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다 자신들만의 공간속에서 잠시들 짧은 위로를 얻는듯 싶다가는 다시 세상에서 그렇게들 서로가 만나 또 '충돌'합니다. 

나빠보이는 인간도 착해 보이는 인간도 결국은 모두 똑같이 예상외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은 겉에 드러나는 피부색을 

통하여 판단하고 또 차별받으며 그렇게 외롭게 살아갑니다. 영화속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에서 드러나는 모습과 갖은 이해

관계로 충돌하다가 결국 가족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위안과 안식을 얻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만 이상하게 제가 보기에는 

그마저도 억지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더욱 외로워 보이고 더욱 쓸쓸해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기만 합니다. 

그것이 연출자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영화는 그렇게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우리의 부끄러운 

뒷모습을 비춰주는듯 담담하게 마무리 됩니다. 

큰 기대를 하실 필요는 없는 영화입니다만 시간이 되시면 그래도 한번 두어시간 투자는 해볼만한 영화입니다.

게다가 우리 목사님 노래도 몇초 나오니까요.ㅋㅋ

 

가을이 오나 봅니다. 늘 그러듯 쓸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전과는 좀 다른게 있다면 지금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그리 열심히 찾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전에는 이런 허전함과 외로움을 친구들이, 가족들이, 혹은 돈이나 물건들이 채워줄 수 있을거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하여간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무엇인가가 나에게 절실했고 그래서 

그것들을 기다렸습니다. 마치 옛사람들이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모시면서도 그들의 다른 신들의 우상은 우상대로 자신의 

필요로 깍듯이 모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점점 미련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오염의 찌끄러기, 아니 큰덩어리가 

잔존하여 저자신을 자꾸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충돌'합니다. 

바보스러운건 그것이 '만남'이 아니라 '충돌'이 될것이라는것을 이미 알면서도 그렇게 김유신의 말에라도 올라탄것 처럼 

못이기는척하고 그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는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그들과 충돌하여 크고 작은 생채기를 간직한채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괴로워 합니다. 영화 크래쉬속의 인종간 피부색으로 인한 오해처럼 '보여지는 그것'이 그것의 전부가 아닌데도 

결국은 나역시 그들을 보여지는 모습으로 판단하고 함부로 정죄하며 그들 역시 저를 함부로 한정하고 낙인찍는데 잠시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반복된 외로움의 부질없는 몸부림을 언제까지 해야되는건지....

 

하지만 전 하루에 화장실 세번가는 행복한 아낙입니다. 배부른 소리하고 있는 어린 사람입니다. 

어두움이 그어두움의 진정한 무서운 모습을 아직 저에게 보이지 않았고 배고픔이 그배고픔의 진정한 목마름을 아직 

저에게 비추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가서 찍소리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입에서는 칭얼거림의 혼잣말이 맴돕니다.

힘들어요 하나님...저 정말 힘들어요...저 좀 도와주세요...이제 그만 저좀 돌아봐주세요...

물론 아무런 대답도 안해주십니다. 아니죠. 이미 오래전 묻기도 전에 벌써 답을 알려주셨죠.


그래서 요즘은 힘들어도 힘든 이유를 알아서 감사합니다. 

이 어려움이 어찌 돌아갈런지 이 아픔이 어찌 끝이 날런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결국의 끝을 알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내마음속 모든걸 다 아신다고 하셨죠? 그러면 됬습니다. 

저의 속마음 다 아시는 당신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비빌 언덕이 되어주시는 언덕위의 큰나무같은 하나님이 계시니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얘기합니다. 넌 따지고 보면 얼마나 행복하니...

또 어떤사람들은 저에게 얘기합니다. 넌 내가 알지만 지금 얼마나 힘들겠니...

전 그런 세상사람들의 아낌없는 관심에 그저 웃습니다. .

 

당신이 뭘 알겠어요...남의 속도 모르면서.... 




이경란 14-10-07 09:51
    
하나님이 계셔서
김성수 목사님이 전해 주신 말씀이 있어서
이 가을이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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