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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07 14:20
   자기 자신을 보라고요
 글쓴이 : admin
    조회 : 14,209  


< 시드니에서 김연숙님 녹취, 로마서 77강 끝부분에서 >

 
 
여러분 자기가 하고싶은 걸 안 하고 그냥 꾹 참는 거, 그게 성숙한 신앙생활 아니에요.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거 맘대로 막 하고 살라는 말도 아니에요.
그렇게 살게 되지도 않아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요즘 저에게
, 목사님 말씀을 듣더니 그 시로도가 목사님이 그러는데 이제 막 살아도 된다. 그랬어.
그러면서 막 대한대요. 가족들도 그러고 자기에게도 그러고
그 사람은 아직 초짜예요. 그런 말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 메가스, 진리의 성령을 안 사람이 야, 인제 개차반으로 막 살아도 되겠네?
어떻게 이게 됩니까? 그리고 꼭 핑계를 나를 핑계를 대갖고..
 
꼭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그런 걸 먼저 법으로 주셨는지를 아는 거예요.
그러면 하고 안 하고의 행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제가 지난 수요일에 콘서트하면서 느낀 게 바로 그런 거였어요.
, 이 분들이 진짜 원하는 게 따로 있었구나!
한 번 탁 터트려주니까 그냥 그래, 그거! 하고 나오는 거죠.
 
그런데 그동안 그거 안하느라고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며 칭찬을 했을까요? 자기를.
, 너 아직도 그거해? , 나는 벌써 옛날에 끊었는데,, 웃기고들 있는 거죠.
사실은 그거 좋아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부아가 치밀었겠어요?
내가 하나님 나라 가면 보자, 내가! 그건 벼르는 거라니까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진리가 된 사람은 그게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그냥 그 속에서 진리를 오히려 찾아내요.
그리고 결국은 내가 즐기던 이런 것도 진짜 나를 즐겁게 해주는게 아니구나를 알게 되는 거지.
그걸 안하고 꾹 참으면서 넌, 왜 아직도 그 수준이야? 이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거예요.
그건 죽은 거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수준을 따집니까? 아니 누구를 정죄해요?
진리는요 자기를 보게 되어있다니까요. 요거 보기에도 바빠요.
얼마나 불가능하고 추악한지. (자기) 보고 얘(자기) 걱정하기에 더 바쁘다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오만 군데 돌아다니면서 남 참견들을 다 하고 다니는지 말이죠.
 
누가 그냥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는데 뭐 벌써 개척하면 되느냐? 왜 안 돼요? (전ㅂㅇ목사)
아니 아직 회개도 안 하고, 회개가 뭐예요? 사실 그거 질투하는 거죠?
, 나는 옛날에 어마어마하게 잘 나가서 굉장히 부러웠는데 그런데 쫄딱 망해서 얼마나 내가 고소했는지.
그런데 다시 재기를 한단 말이야? 절대 안 돼! 이거지 뭡니까?
진짜 무슨 교계의 정의를 회복하기 위함이에요? 교계의 정의가 뭔데요?
완벽한 성자들이 목회하는게 교계 정의입니까?
어차피 진리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면 거긴 그냥 친목계에요.
그럼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목회를 한다는데 왜 그렇게 난리냐고요?
그리고 혹시 거기서 진리가 제대로 전해지면 야, 하나님이 저런 사람을 들어서도 진리를 전하시는구나.
역시 호 코스모스 인간, , 푸시케는 낫띵, 하나님이 전부! 깨달으면 되지.
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책을 반납하네 뭐네. 시간들도 많아요. 나는 도대체.
보면 전부 삐리삐리 한 애들이 모여 갖고 그거하고 앉았더라고요. 괜히 질투 나가지고 말에요.
 
그런 거 하지 말아요. 날 보라고요. 자기 자신을 보라고요. 그리고 이 교회를 신경 쓰라니까요.
여기에 진리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가? 나는 과연 이 푸시케의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저 말씀으로! 남의 교회 신경 쓰고 난리에요. ?
그거예요. 그게 그렇게 죽고 다시 사는 게 우리의 신앙생활이에요.
진리만 남고, 나와 내가 관심 두고 살았던 이 호 코스모스적 세상이 조금씩 죽어서 말씀이 완성되는
그런 삶을 사는 자. 그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 죽음, 그 다나투스, 그걸 ‘디오마이’ 맛 봐야 하나님 나라, 그 바실레이야, 하나님의 통치를 ‘호라오’,
비로소 볼 수 있는 거예요. 깨달음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 좋은 죽음. 잘 사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렇게 죽어야 산다는 이 역설이 이해되어지는 것이 능력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어떻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은 고통이라고, 고난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 우린 그게 복임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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