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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7 13:39
   " 돈 "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5,771  




로마서(13) "사랑하심을 입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 중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미쳐있는 이 세상의 힘과 가치의 정체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목숨 걸고 추구하고 있는 이 세상 가치와, 그 가치로 치장하여 신이 되고 싶어 하는 그 자아가,
정말 우리가 사랑해도 되는 그런 것이 맞습니까? 자신 있으세요? 만일 나의 가치를 올려주고, 나의
행복지수를 높여 줄 것으로만 알았던 그것들이 나를 죽이려 교묘하게 위장을 하고 숨어든 마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큰일 나는 거지요.
 
(전5:10-17)(표준 새 번역)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 재산이 많아지면 그만큼 돈을 써야 할 데도 많아진다.
많은 재산도 임자에게는 다만 눈요기에 지나지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적게 먹든지 많이 먹든지,
막일을 하는 사람은 잠이라도 달게 자지만, 배가 부른 부자는 잠도 편히 못 잔다.
나는 세상에서 기막히게 억울한 일을 보았다. 아끼던 재산이, 그 임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재난을 만나서, 재산을 다 잃는다.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에게 아무것도 남겨 줄 것이 없다. 
어머니 태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돌아갈 때에도 맨몸으로 간다. 수고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또 한 가지 비참한 일을 보았다. 사람이 온 그대로 돌아가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를 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인생이란 평생 어둠 속에서 먹고 지내며, 온갖 울분과 고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다.
 
보세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이 세상 힘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돈이 오히려 우리를 근심케 하는 괴물이라는 것입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확실하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말씀에 절대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가치를 한없이 올려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돈은 분명히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유익하게 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치와 소유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그 돈이라는 것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해서 신의 자리에 
올려놓고 싶은 ‘나’, 그 육적 자아는 과연 우리가 사랑해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잖아요?
 
(눅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보세요. 그 육적 자아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그리고 나를 사랑하여 나의 ‘하나님처럼’의 삶을 도와 줄 것이라 생각
했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 투입이 된 악당 ‘잭’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세에
심판을 받을 자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를 하는 것입니다.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육적 자아, 즉 '자기 자신‘과 ’돈‘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심판대에 세워 죽일 수 있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나‘를 사랑하여
’나‘라는 존재를 '하나님처럼’의 자리에 올려놓아 줄 수 있을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deceived’라는 영화에서의 골디 혼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자신의 가치를 높여 주었던, 그러나 사실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잠입을 했던, 그 멋진 남편에 대해 그토록 오랫동안 달콤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에 잠입해 들어오는 살인마 ‘잭’같은, 
재물과 자아를 몰아내고 죽이라고 반복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히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힘과, 그 힘을 제물 삼아 섬기려 
하는 육적자아는, 몰아내고 죽여야 할 것이지, 모으고 살찌워야 하는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적 자아가 날마다 죽어가는 것을 자랑한 것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
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내가 날마다 죽어 가는 것은 이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육의 세상 
속에서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는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하고 있단 말입니다. 
사도는 자기가 부정되고, 부인되는 현장, 날마다 죽는 현장을 자랑거리로 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보세요. 사도는 약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절대 강한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육적 자아의 신분
상승이나 명예 획득, 세상 가치나 소유의 증대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약함을 자랑합니다. 
세상은 소유가 늘어나고 신분이 상승 되는 것을 성공이라 추켜세우고 있는데 사도는 그 앞에서 자신의 
약함으로 자랑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기독교 전도는 너무 솔직하지 못합니다. 그저 호객행위를 하는 술집의 삐끼들처럼 
어떻게 해서든 예배당으로 손님을 모시고 가는 데에만 급급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예수 믿으면 강해진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이다, 등등의 감언이설로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켜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고 신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 그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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