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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02 09:57
   상속자들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4,532  




< 서울 조규만님 글 >


혹시 사람 죽여본적 있으세요? 혹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셨어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은 있었지만 정말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는 안해보셨다면 더군다나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을 죽이는건 차마 못하실겁니다.
혹 그렇게 멀쩡한 죄없는 사람을 어떻게 죽이냐고 생각되신다면 그사람이 아주 나쁜사람이라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그래도 아니라면 혹 그 사람이 내 사랑하는 가족 중에 제일 소중한 한 사람을 죽였다면 그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을까요?

최근에 본 '짚의 방패'라는 일본영화는 자산이 조 단위가 넘는 어느 재벌 할아버지가  너무도 아끼는 자신의 손녀딸을 
무참하게 살해한 아동 연쇄살인마의 사진과 함께 그를 죽여 달라는 전면광고를 신문에 내면서 시작합니다.
그를 죽여주면 현금 100억을 주겠다고 광고 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 살인범을 죽이려는 시도가 잇다르고 연이어 
아슬아슬 미수에 그치자 목숨에 위협을 느낀 범인은 경찰에 자수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보호하는 경찰도 치료를 담당했던 간호사도 모두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덤빕니다. 

전부 미수에 그치자 죽이려다 실패한자에게도 10억을 보장한다고 했더니 모든 사람이 더욱 열심으로 그 살인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영화는 그렇게 진행됩니다. 
100억이나 10억이나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인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아마 많으실겁니다. 
어쩌면 현실과 너무 거리가 먼 금액이고 느낄 수 없는 단위의 돈이니까요. 
하지만 여러분에게 정말 딱 필요한 만큼의 그 돈이라면 어떨까요...

영화를 통해 작가는 과연 돈 앞에서 누가 나쁜 사람인지 누가 착한 사람인지 관객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어린 아이를 골라 연쇄 살인하는 살인마, 그 살인마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각기 그럴듯한 명분이 있는 가난한 일반
시민들, 법의 수호자이면서 돈앞에 무너져 수많은 동료를 죽이는 경찰, 자신의 손녀딸의 복수를 위해서 수십명의
희생자가 나오든 말든 개의치 않는 재벌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대항해 법과 정의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범인에게
날라오는 칼날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는 훌룡한 경찰.....다 부질없는 인간들의 몸부림들입니다.
 
어쩌다 문서 작업 중에 실수로 종이에 베어보면 웬지 칼에 베었을때보다 더 아프기도 하지만 웬지 모를 분한 마음과 
함께 신경질이 납니다. 막 화가 나는거죠. 
칼에 베이거나 혹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이게 되면 내가 좀 조심할걸 그랬네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다음부터 
더욱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넘어가는데 종이에 베이는건 다릅니다. 

그 이유는 원래 종이라는건 무언가를 베는데에 쓰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는 종이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갑자기 살을 베어 피가 흐르게 만든다면 어그러진 그것의 본질과의 관계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겁니다. '믿는 콘돔에 세 쌍둥이라더니 젠장...ㅠㅠ' 정도의 신뢰는 그나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믿는 사람에게, 
그것도 정말 믿는 사람에게 베이게 된다면 그 아픔은 상처 자체가 주는 고통의 수십수백의 고통일 것입니다.

저는 심성이 고와서(?) 어지간한 큰일을 당해도 화를 잘내지 않습니다. 대견하죠? 
하지만 저는 자잘한 '종이의 배신'같은 어그러짐에는 '살인의 충동'을 느낍니다.
김성수 목사님을 통해 참 복음을 알게 된 제가 스스로 가장 민망했던 사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제가 그'예수'에 
정작 그 예수에 대해서는 너무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몇십년을 교회에 다니면서도 왜 굳이 예수인지, 왜 딱히 십자가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사랑의 하나님이란다. 그냥 구원해 줄께" 하며 하챦은 해리포터도 휘두르는 마법의 요술봉 한번 휙하니 한번 
휘둘러주시면 될껄 뭘 아들까지 보내서 굳이 죽이시고 또 되살리셨나 싶은 생각부터 예수님은 왜 하필이면 서양인일까? 
예수님이 왜 위대한거지? 아픈 사람들 많이 고쳐주셔서 그런건가? 십자가에서 죽는게 그렇게 아픈건가? 
더 힘들게 살다가 더 고통스럽게 정의를 위해 살다간 위인들도 많은데...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정말 모르고 살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몰라서 끙끙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전에는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정말 잘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아는건 순백의 예수님이 우리의 까만 죄들을 온통 다뒤집어 쓰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뜻에 따라 
'죄를 아는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감히 짐작해 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죽이셨다니...
죽일만한 사람만 죽이기는 커녕 아무 죄없어 보이는 사람조차 별 생각없이 자신의 작은 유익을 위해, 가끔은 알량한 
감정에 충실해서 마음 속에서 하루에도 몇번이고 살인을 일삼는 저같은 사람을 위해 말입니다. 
찬송가를 불러줄 이들이 없어서도 아니고 마귀와 싸워줄 총알받이 쫄병이 필요해서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참 신기하고 놀라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에 감격하다가도 다시 저는 제 본분을 벗어나 하루 죙일, 아니 사는 내내 예수님을 베고 다님을 알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함을 얻었노라며 요즘은 안하던 나쁜 짓도 외려 더 하는거 같고 알량한 지식 좀 얻었다고 천하무림을 
다스릴법한 무슨 비책이라도 얻은양 의기양양 으시대는 꼴이라니 정말 하루하루 꼴보기시러 죽겠습니다. 
믿는다하면서 좀 안다하면서 그렇게 매일 베고 또 베고 .....

올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 모자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차남이 잡혔었습니다. 
10억 정도의 재산을 가진 홀어머니가 죽으면 재산을 물려받게 될터인데 형만 없으면 나눠 갖지 않고 혼자 모든 재산을 
전부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연탄가스로 어머니를 먼저 죽이고, 나중에 들어온 형은 다시 수면제를 먹인후 가스를 
마시게해서 살인한 정말 엽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차남은 유력한 용의자로 잡혔다 다시 풀려났다가는 아내의 제보로 다시 구속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 아내마저 
공범으로 몰리자 아내는 자살을 하고 말았기에 더욱 충격적이고 슬픈 사건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난해 2012년 살인사건의 40%가 친인척간의 살인이라더군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살인이 가족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호환, 마마, 중학교
2학년 학생도 귀신도 아닌 가족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실제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두가지 조사를 하게 됩니다. 원한 치정관계 그리고 보험 여부입니다.
사망자의 보험 수익자를 확인해보면 일단 큰 줄기의 범인의 윤곽은 그릴 수가 있다는것입니다. 

그렇게 '상속'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지 않는 한 상속은 없습니다. 
물론 언젠가 피보험자는 사망하게 되지만 '언젠가'라는 단어는 돈의 노예가 된 이들에겐 절대 오지않을 미래와도 같은
것입니다. 황당한 결론이지만 결국 달리 얘기하면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사망자와 원수지간인 자거나 혹은 사망자의 
상속인, 달리 얘기하면 사망자의 살아있던 시절 그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짚의 방패'라는 말은 일본 속담인데 '아무 쓸모없는 일을 하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실제 영화에서도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과 사연으로 죽이려고 하고 막으려고 하고 쌩 난리를 피우고 사건은 마무리 됩니다.
그런데 정작 사형이 언도된 범인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해보라니 이렇게 말합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반성합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저지를걸 그랬다고 말입니다"  영화의 결론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쭈그리고 앉아 새끼를 꼽니다. 그렇게 한참 짚을 꼬아서 새끼줄을 만들고 다시 그 새끼줄을 엮고 또 엮어서 
방패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이 방패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줄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심장 앞에 떡하니 놓고는 행복해 
합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빈약하고 부질없는 방패로 앞을 가려 놓고는 어떤 창이든 덤비라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습니다.

김성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얘기한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는 얘기를 곱씹곤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을 거의 다 한번 정도 듣고나서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생각은 제가 무언가를 
열심히 함으로써 얻고자 하고 알고자 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어쩌면 또 다른 모양의 새끼를 꼬아 나 자신을 가리고 막아줄 
헛된 세상의 방패를 만들고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렵습니다. 배우고 익혀도 결국 모르겠습니다. 
지리도록 느끼고 흐느끼며 울어도 결국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상속자들'입니다. 
원수지간이었거나 가장 사랑하는자이었거나 하여간 우리가 상속자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그래서 예수님은 죽으셔야 했나 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우리가 해야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해가 가려나봅니다. 
그렇게 무심하게 가려는 한해의 어깨를 잡아 다시 바라봅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답답한 사람을 위해, 이런 바보같은 사람을 위해 그 사랑의 하나님 똑바로 알아 먹게 해주시겠다고
그렇게 소리높여 외치시던,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고마운 사람 김성수목사님,.. 

그가 떠난 한해가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는 여백 가득한 종이가 되어서는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칼처럼 이를 드러내고는 주인을 베기라도 
할듯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가는 걸음걸음 목사님 떨어뜨려주신 빵 부스러기 말씀 부스러기 먹으며 
저도 그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직...아직은 막막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위에 서서 헤메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겠지요..
 
그땐 꼭 한번 안아봐요...그땐 용기가 날지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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