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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0 10:33
   의로운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5,267  


( 로마서 8편 말씀 중에서 )

생각해보자고요.
그러한 믿음 안에서 제사를 드렸던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가정해 보세요.
거기에서 열납이라는 단어는 ‘look, respect’라는 의미를 가진 ‘솨아’라는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쳐다보지도 않으셨다는 것인데, 만일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취급을 하셨다면 아벨의 태도는 어땠을까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 자체가 ‘내가 드리는 제사가 아님’을 전제하는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던 받지않으시던 내가 화날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 제사의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제사가 담고있는 복음의 메시지로 인해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니까요.
제사는 그 자체에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구원의 현실을 담아내는 성례전적
그림(sacramental picture)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어땠습니까?
‘다른 제사는 몰라도 내가 드리는 제사는 반드시 받아야한다’가 가인의 태도였습니다.
 
(4:5-7)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
 
내가 행하는 행위, 내가 드리는 제사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질과 양에 따라 하나님의 보상이 차등있게
주어져야 한다는 그 발상이 바로 요한사도가 말한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행위, 악한 행위의 구별은 사건화되어 밖으로 드러난 어떤 행위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느냐 아니냐로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지 않고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성을 챙기려 하는 바로
그것을 벌하신단 말입니다.
왜냐? 그렇게 자기의 행위에 가치를 두고 그 행위를 내어놓은 자기자신이 기특해지게 되면 그 행위가 그
행위를 내어놓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대상이 죽도록 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인은 자기의 가치있는 제사행위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자를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건 자기의 제사행위의 가치를 폄하하고 폄훼하게 만드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여 자기
제사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마귀적 발상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자신의 왕됨을 방해하는 대상이 하나님일지라도
그 대상을 없애버리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 그림을 그대로 들어서 신약시대로 가져와 다시 펼쳐놓은 것이 예수님의 비유 중에 등장합니다.
 
(18:12~13) 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가인이 누구입니까?
자기의 종교행위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있는 바리새인입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가슴을 쳤던 세리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까?
깨끗하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목숨을 걸고 종교행위를 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게 가인의 악한 행위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에서의 가인은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나의 행위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게 죄입니다.
 
그게 범신론의 ‘자기 옷벗기’입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고통의 옷을 벗겠다고 하는 그 행위가 하나님을 죽이는 행위란 말입니다.
인간이 입은 타락의 옷은 마치 네수스의 피가 묻은 옷을 입고 그것이 벗겨지지 않아 최후를 맞게되는
헤라클레스의 형국인 것입니다.
그건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도 스스로 벗을 수 없는 무서운 옷입니다.
그 옷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벗겨질 수 있는 옷입니다. 그 옷은 믿음으로만 벗겨지는 옷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더러운 옷, 다윗 왕의 혈통, 육체를 입으시고 오셔서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입혀졌던 네수스의 저주의 옷이 벗겨졌고 새로운 몸이 주어지게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새롭게 부활을 하게된 자신의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죽어야 할 아담 대신에 아벨이 죽고 셋이라는 새 창조물이 태어나 하나님 나라 백성의 혈통이 이어지는 그
위대한 복음의 현실은 죽어야할 다윗 대신에 우리야와 아기가 죽고 솔로몬으로 태어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 속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고, 죽어야 할 나 대신에 예수가 죽고 새로운 부활의 ‘나’가 이 세상에 존재
하게되는 교회의 탄생에서 다시 한번 확증되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아벨의 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가인들에게 맞아죽어 셋으로 부활 해야하는 자들이고, 자신의 더러운 죄를 폭로 당하고
솔로몬으로 부활을 해야하는 자들이며, 해산의 고통으로 예수를 낳아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고 죽다가 결국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이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성도들이다 그렇게 죽었습니다.
 
(23:33~35)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의인 아벨부터 시작하여 사가랴까지 모두 어디에서 죽습니까?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습니다.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했던 유대주의와 율법주의의 상징입니다.
그러한 범신론적 발상이 은혜의 복음을 말하는 자들을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옛 옷을 벗을 수 없다는 자아의 죽음이 우리의 옷을 벗겨버리시는
예수를 붙드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철장을 들고 달려오신다는 생각이 들때 너무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여러분은 선한 척, 의인인 척, 경건한 척, 자신의 의를 자랑하던 욥을 죽이시고 13 5천 앞의
300으로 낮추심으로 그를 살려내셨던 하나님의 그 사랑을 떠올리실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옷을 벗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철장으로 우리의 옷을 벗기시려 오시는 것이니 기쁘게 그 철장을 받으십시다.
 
아벨은 죽어서 믿음으로 말을 했습니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11:4)
신자는 죽음으로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는자들 입니다.
자신의 기특한 종교행위, 선한 행위 몇개 내어놓고 ‘나 좀봐주세요’ 하는 것이 신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로운 행위를 했다고 하는 아벨의 행위가 성경에 하나도 기록이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도 죽음으로 말을 했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 역사 속에서 그렇게 죽음으로 자신의 신자 됨을
확인받고 떠났습니다.
 
그렇게 죽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힘내세요.
 
죽음이라는 네거티브의 총화 앞에서 힘을 내라는 위로를 할 수 있는 이 역설의 미학,
부디 여러분에게 이해가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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