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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16 09:32
   "자기 아들로 죽고 자기 아들로 살다" 중에서...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3,697  


<  대구 이은주님, 로마서 82번 녹취를 마치면서.. >

우리안의 진리로 오신 친 아버지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 되세요~^^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자~ 진리이신 생명을 품고 오신 예수가 말씀하세요.  
“내 안에 아버지가 계셔. 그 아버지가 일을 하시는 게 내 일이야. 그게 내가 하는 일이야. 
내가 하는 일이 아버지의 일이야. 나는 아버지에게 장악되어 있어. 
그 아버지가 내 안에서 일을 하는게 이렇게 나타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 아버지가 내 안에 일을 하는데 그 진리가 내 안에서 일을 하는데 이렇게 나타나는 거야.”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세요. “나는 내 아버지가 하라는 말만 했고 하라는 일만 했다” 
그래요. “내 스스로 한 거 아무것도 없다” 그래요. 본인이 직접… “다 아버지가 했다” 그래요. 
예수인 그 껍데기는 아무런 주도권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니까요. 

근데 그 분이 <아들>이었단 말이에요. 그게 아들의 삶이에요. 
아들의 육신이 부정이 되고 그러나 아버지의 하시는 일만 부각이 되는 거에요. 
그게 육신의 죽음이에요. 그걸 그냥 십자가가 그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거에요. 
<아들은 이렇게 아버지에게 장악되어 아버지의 일을 나타내는 자다> 라는 걸… 
그게 우리라니까요. 이걸 직역을 하면 “내가 아버지야” 이런 말이에요. 그렇잖아요. 

내 안에 그 하나님이 말씀으로 진리로 들어와 있어요. 
그걸 히브리 사람이 ‘아버지’라고 읽는다 했습니다. 
그럼 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나 있으면 내가 아버지란 얘기 아니에요? 그죠? 
근데 유대인들이 뭐라 그랬냐 하면 “어떻게 너와 아버지가 동일하냐? 
네가 그 아버지 아들이야? 그 하나님이 네 아버지야?” 그랬어요. 
여기 친 아버지라고 그랬는데… ‘친’이라는 단어는 없고, “아버지야?” 
그러면 예수님이 이렇게 욕을 먹었으면…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죠? 

양 아버지? 친 아버지? 친 아버지에요. 그 분이 여러분을 만들었다니까요. 
양자됨은 adopt(입양)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버지 되심>이라는 뜻이에요. 
친 아버지라니까요. 우리 친 아버지…
그럼 우리도 그럼 똑같이 욕 먹어야 돼요? 이렇게? “야!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맞아요? 틀려요? 
이것 봐! 자신이 없다니까! 
아니 성경에는 우리를 창세 전에 하나님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라고 하는데 우리는 자신 없죠? 
섬기는 데는 도가 텄어요. 

근데 그 하나님이 내 안에 아버지로 와 계시고 내가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뭔가 꺼림칙해요. 
이게 헬라의 이원론에 빠져서 그래요. 
여러분, 그건 불경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백성을 그렇게 창조될 수 밖에 없는 거를 보여주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는 거에요. “내 안에 내 아버지 있어. 그리고, 그 아버지에 의해 나는 <존재>야. 
그 아버지가 하는 일을 내가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아버지와 나는 하나지. 
그러면 내가 사는 거는 내가 존재인 것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거죠? 그죠? 그게 아들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 매커니즘이라구요. 그것이… 그러니까 육이 부정 당하는 거에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내가 하나님이다’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에요. 
<진리를 담은 자는 하나님을 담은 자고,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마음으로 가진, 그 진리를 마음으로 </div>
가진 아들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근데 로마 헬라 철학에 물든 유대인들이 이원론적 사고에 푹 젖어서 하나님과 아들의 하나 됨이라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도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나가 돼?” 왜? 
그들은 영과 육 이런 거는 완전히 분리를 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 하나님과 육, 인간이 하나가 돼? 그 분은 당연히 섬김의 대상이어야지…

근데 육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라고 하는 건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 흉내를 내는 거란 말이에요. 그것이… 
그러니까 그 예수님의 말씀을 배격해 버린 거에요. 그 진리의 말씀을 배격해 버린 거에요. 
알아 듣지도 못했어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냐?” 
분개했단 말이에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도처에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은 많은데 
그 분을 그냥 내 밖에 어떤 타자로 저기에다가 던져 놓고 그냥 열심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만 하는 거죠. 
그걸 우상이라 그래요. 

여러분,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힘있는 존재,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내 유익을 내 인간적인 욕심을 
에피뚜미아를 도와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내가 섬기게 되면 그걸 믿음이라 하지 않고 신앙이라 하지 않고 
<우상 섬김> 이라 그래요. 그것을… 그게 무속 신앙이라니까요. 

신비주의나 기복주의는 말 할 것도 없고, 그런 건 이제 이야기도 하지 말자구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이 다 하셨으니 야~ 십자가, 피, 이것이 다 완성했으니까 우리는 거기에다 다 맡겨 놓고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그냥 죄인으로 살면 돼! 막 살아!’ 이거 위험한 거에요. 

똑같이 십자가 십자가 피 피… 하지만… 그건 내 밖의 십자가라니까요. 그건 내 밖에 피에요. 
그게 사뭇 경건하고 거룩하고 인본주의를 탈피한 율법주의를 탈피한 대단한 신앙인 것 같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돼요. 

<들음> 다음에는 <앎>으로 가야 돼요. 거기서 끝나면 안 돼요. 그래 알았어? 그럼 됐지… 뭐. 
이게 아니라 <됨>의 자리로 가야 된다니까요. 그건 과정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인생 전체… 
그 기간 동안에 일어나는 과정 그리고 <누림>의 자리로 가는 거에요.
그렇지 않고 들음, 앎 거기서 끝나버리면 이걸 <영지주의>라 그래요. 그래 다 완성됐다며, 이뤄 졌다며, 
그 십자가가 다 했다며, 그 피가 다 했다며, 그 예수가 다 했다며, 근데 뭐? 

내 밖에서 일어난 그 일… 그것이 나를 구원하지 못해요.
그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야 그것이 내 십자가… 내 피가 된다니까요.
십자가와 피가 내 밖에서 나를 구원한 어떤 능력으로 객관적인 어떤 개념이나 관념으로 존재하면 
그것 자체가 우상이에요. 무시무시한 다른 우상보다 더 무서운 666 같은 우상이 되는 거에요.

십자가와 피라는 이름을 가진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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