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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03 11:04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3,760  




비유(12)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초반부 중에서


.....

19세기에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의 대 문호라 불리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이었던 것처럼 도스토예프스키도 예수를 믿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말년 작품이 그러하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년 작품에도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본질
참 선과 진짜 악, 영과 육에 관한 고찰이 진하게 묻어나옵니다
그의 작품 중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 속에 들어있는 기독교 현실 비판의 내용 중에서 한 대목을 제가 간략하게 각색을 해서 들려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1,800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편만하게 확장되고 있는 당신의 교회에 한 번 내려가 보고 싶으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신 채 러시아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분은 연한 순처럼 연약해 보이셨고, 풍채도 없으셨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을 전혀 소유하지 못한 
채 내려 오셨습니다
얼마나 못났으면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보기 싫어할 정도였습니다.(53) 
심지어 그 분은 십자가를 지신 무력한 모습이셨습니다
그러한 예수가 러시아의 한 교회 문 앞에서, 예배당 안으로 예수를 예배하러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십자가를 진 초라한 예수를 본 그들은 이내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막으며 그 분의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리고는 물었습니다. ‘당신 누구요?’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너희들에게 영생과 내 나라를 선물하기 위해 연약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이렇게 십자가를 진 
예수란다’ 
그 말을 들은 예배당 앞 교인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이 예수라고
우리가 우리 목사님께 배운 예수하고는 너무 다른데
당신이 그런 꼴을 하고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을 해 줄 수 있단 말이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난 너희들의 세상 소원을 들어주러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란다
난 너희들을, 사망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를 진거야
그렇게 날 못 알아보겠으면 너희들에게 나에 대해 가르친 너희 목사를 데리고 오너라’

그들이 얼른 목사님을 모셔왔습니다
예수님은 반색을 하며 ‘네가 이 교회 목사구나너는 나를 알아보겠니? 나야,
너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2:20), 지금도 여전히 너희들의 죄와 정욕이 되어 매일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는 예수란다.(5:24)
그 말을 들은 목사가 예수님을 밀며 한 쪽 구석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교인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거보세요. 지금 우리 교회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어요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사람들을 모았는지 아세요
십자가의 예수는 2,000년 전 사람이고, 지금 우리가 믿는 예수는 하늘 보좌에 앉아서 우리의 모든 소원과 
필요를 열심히 채우시고 공급해 주시는 힘을 가진 예수라고 가르쳐서 겨우 이만큼 모은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지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 버리면, 지금 예배당 안에서 어렵사리 마련해온 헌금을 들고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내 꼴이 뭐가 됩니까
사람들에게 몰매 맞고 쫓겨나기 전에 얼른 떠나세요
당신이 이런 모습으로 자꾸 나타나면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됩니다. 어서 떠나세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제가 오늘 날의 상황에 맞게 조금 각색을 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왜곡된 
현실 기독교 비판이 너무 적나라하게 우리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진짜 예수는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된다는, 그 목사의 말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 교회의 현실은, 진짜 예수가 전해지면 전도가 되지 않는다는, 그 엉터리 목사의 말처럼 
가짜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 찬양’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그런 형국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 나라에서 당신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한 마디로 신처럼 살고 싶어서, 신이 되려 하는, 우리의 옛 자아의 자기부인과 이 사망의 땅의 
부정이 그 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목적이었단 말입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아담 속에서 ‘하나님처럼’을 지향하던 우리의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죽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과 욕심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둘 다 과거시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고, 우리의 정(파데마, 인간관계에서 얻는 힘과 만족)과 욕심(에피뒤미아
정욕이나 욕망)도 십자가에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십자가를 넘어서 지고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 됩니다. 맞습니까? 논리적으로는 맞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영적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다르지요?

~~~ 중  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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