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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28 10:17
   누가 천국가나? (로마서 26편중에서)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4,116  


(로마서 26편 중간) 

사실 예수의 은혜를 모르고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공자가 그러했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던 동서고금의 많은 착한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결단과 노력과 투지를 폄하할 생각이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저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들이 지켜 낼 수 있는 도덕과 윤리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정말 마음을 빼앗길만한 것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도덕으로 붙들어 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평생 자기가 정말 마음을 빼앗길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고 그의 생이 마감될 때 그는 훌륭한 군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타가 공인하는 가치 있는 것이, 자기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을 만한 것이 나타나게 되면 인간은 반드시 
허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난 안 그럴 거라고 너무 서둘러 단정 짓지 마세요.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되는 그런 허접한 것 앞에서는 의지의 강약이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이 담긴 대상 앞에서는 그런 거 다 소용없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의 심드렁함을 도덕지킴이라고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은 누가 얼마나 큰 욕망을 갖고 있느냐에 의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짜 큰 욕망을 가진 사람은 작은 것들에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착하다, 도덕적이다,
윤리적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작 인간집단이 요구하는 행동기준으로서의 윤리라는 것은 인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제어의 마지노선 
아래에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마지노선 너머의 그 매력적인 것들 앞에서는 전혀 힘을 못 쓰는 우스꽝스러운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법, 법,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다 지키다가 한 가지 어기면 그 전에 지킨 것 다 무효처리 하신다고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은 완벽을 요구하신단 말입니다. 
그 말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는 다 똑같이 취급하신다는 말과 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내어 놓는 행위나 됨됨이에서 차이라는 것이 발생한다고 믿고 그 차이를 계산하여 차등을 
매깁니다. 정말 하나님도 겉으로 드러난 그 차이라는 것으로 차등을 매기실까요? 

아담 안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의 삶을 추구하게 된 모든 인간, 오늘 본문의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 모든 인간들은 세상을 대면하여 살아갈 거짓 인격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안에 진짜 자기 인격이 있어요. 그건 더럽고 나약할 뿐 아니라 추악하기까지 한 타락한 본성입니다. 
첫째 아담에 속한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걸 들키게 되면 ‘하나님처럼’ 살아야 하는 자신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됩니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와 착한 행위 등으로 자신을 위장해 내지요. 모든 인간이 바로 그러한 가면을 쓰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가면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가면 인격, 거짓 인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 안의 내면 인격을 못 보게 됩니다. 자기스스로도 철저하게 속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면이 벗겨지고 그 안의 진짜 인격이 폭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감추고 싶은 자기 안의 진짜 모습이 어떤 대상에게서 발견이 되면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그걸 공격하게 됩니다. 
그래야 자기 안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고 자가진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걸 투사(projection)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비판(critic)을 업으로 삼다시피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 보면 참 불쌍하고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자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스스로 다 까발리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아요. 
그들은 사실 홀딱 벗고 대중 앞에 서서 자기 자신 속의 추한 것들을 다 들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비평가는 항상 ‘난 안 그런데’를 그 비평의 행간에 담아내지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 했던 그 무리는 자신들의 내면의 욕구를 들킨 것입니다. 
자기들도 하고 싶어 죽겠는 것을 어떤 인간들이 해 내고야 만 것입니다. 
그걸 돌로 쳐 죽여야 자기 안의 그 욕망이 감추어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을 꿰뚫어 보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너희는 어떤데?’하고 되물었더니 다 도망갔잖아요? 
왜 백인들이 흑인들을 그렇게 싫어해요? 
자기들 안의 저급함이 흑인들에게서 표면적으로 나타나자 그것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더러움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하나님은 분명 자기 백성들까지도 상실한 마음에게 넘겨주셨단 말입니다. 
본문 32절이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더라고 기록을 하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행사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마치 나만은 거기에서 제외된 것처럼 
그렇게 재는 자들은 뭐냐고요? 
하나님이 실수로 몇 명 빠뜨리고 넘겼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이라 우기고 싶은 거겠지요. 아닙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가 상실한 마음에 넘겨진 자가 맞네요’하며 자신의 내면 인격의 실체를 올바로 자각하고 시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성도인 것입니다. 
‘저 사형당해 마땅한 자입니다’하고 자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자가 성도입니다. 
그들만이 겉과 속이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게 창녀와 세리들이었잖아요? 하나님은 그들만 구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창세전에 구원하신 자는 반드시 그 자리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위장된 겉 가면을 벗고 자신의 내면 실체를 겉으로 드러내는 이들, ‘내가 죄인 중의 괴수 입니다’를 고백하는 
자들의 그것을 ‘회개’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한 회개에서 필연적으로 격발이 되는 것이 ‘그래서 내게는 예수가 필요합니다.’라는 상한 심령입니다. 
외면 인격, 거짓 인격이 너무 튼튼하면 인간은 자신의 내면 인격의 실체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그것을 찢어발기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은 죄 생산 공장이요, 
그래서 예수의 의가 필요한 자요, 그 길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은 전무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그러니까 교회는 아담들의 거짓 가면을 벗기는 곳이지 도덕과 윤리와 봉사와 착한 일을 억지로 독려하여 그들의 가면에 
덧칠을 해 주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건강한 교회, 올바른 교회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what we do?로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who we are?로 판단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을 감동시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하나님이 ‘넌 내 백성이야’라고 당신의 
이름을 주신 이들이 구원을 얻는 거란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없는 자들의 실체’를 올바로 보고 ‘예, 제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맞습니다.’하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제가 비록 실수는 좀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세요.’ 
이 사람이 바리새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 중략 --

여러분,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절대로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지요? 
바리새인의 의란 자기들의 행위를 근거로 한 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의 말고 다른 의를 찾으세요. 
더 나은 의라는 것은 둘을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나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종류의 의 말고 다른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의 말고 다른 의를 내어놓은,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했던, 세리와 창기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히 다른 이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저건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느니, 적어도 나는 저런 죄는 안 
지었다느니, 이런 말을 하며 다른 이들을 정죄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왜 우리에게서 자꾸 그런 정죄가 나온다고요? 
그게 바로 우리 안에 욕망으로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서 그런 겁니다. 
그걸 상대방에게 투사해서 상대방을 죽임으로 나의 의로움을 증명하려 하는 그런 마귀 짓 이제 그만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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