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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30 10:32
   행함이 없어야 진짜 교회다??
 글쓴이 : admin
    조회 : 22,078  


< 서울 김성겸님 글입니다 > 

요즘 여러분들이 드나드시며 기존에 가지고 계신 신앙관과 새롭게 김성수 목사님말씀을 접하시고는 것을 서로 조율하시는 

듯한 글들을 자주봅니다.

페러다임 시프트를 시키지 않으시고 자기 신앙관에 살짝 덧칠을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신앙관에 김성수목사의 복음을 조금 더하면 어디에 내어 놓아도 떳떳한 신앙인이 되신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열심을 믿는 서울서머나교회에서 행함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와 행위는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물이므로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을 

알수 있다의 차이점은 어떤 것입니까??

앞뒤 순서만 바뀌였지 여전히 그 행위라는 것에 메어 있는 꼴입니다.

행위가 구원이라는 결과물을 내어 놓는다와 구원의 결과물이 행위다는 같은 말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들어온 그 착하고 선하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겠지요...

여러분이 말하는 그 착하고 선한 그 행위는 도덕 율리책을 읽는다거나 불교의 경전을 읽어도 나오는 그런 결과물들인 

것들입니다.

이 세상 어느종교 아니 어느 교육 덕목에 마음데로 살아도 된다고 써있습니까??

그것은 인간 보편이 추구하는 당연한 것이지 기독교에서 요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표피적으로 보면 많은 부분이 지켜 행하라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원문을 보면 그 행함은 '솨마르'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행하라라는 뜻보다 간직하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아싸'라는 비슷한 의미의 히브리어도 되게 하다라는 의미이지 결코 어떤 것을 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성서에서 이미 행함은 실패하였고 은혜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 행함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안하면 큰일 날것 같거든요....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증거들을 찾아 헤메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아니라 그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그 어떤 것을 해도 진리로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게 우리가 선악구조로 알고 있는 죄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죄 자체에 

촛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솔로몬, 다윗, 삼손, 기드온, 입다.......등등 믿음의 선진들의 말년이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삶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히브리서 믿음장에 떡하니 써 있을까요...??

그들이 행한 죄까지도 하나님의 그 하늘의 선하심을 설명하기 위해 쓰임을 받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왜 나를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셔서 수천년동안 성경을 읽는 독자인 성도들에게 부끄러움을 

당케하셨나요..??  하나님에게 불만이 있을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어진다는 오해를 받을지라도 부득불 전한다고 

한 것입니다.

율법주의 인본주의에서 우리교회를 욕하고 비방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어떻게 진짜 교회를 끌고가시는 것을 성도들에게 

체험하여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이 아나데마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차압되어 진리 설명용 도구로 또 다른 진리된 자들에게 설명되는 교보재역할을 함과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더이상 죄인에 머물수도 없는 존재이며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육신이 되어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이끄어 가시기 때문에 더이상 죄인중에 괴수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라는 것이 어떤것입니까???

불가능한 피조물에게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려 내시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 아닙니까???

그 은혜의 필연성을 알고 죄인됨의 고백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됨과 그리스도로 연합되어진 나를 경험하게 되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를 동시에 체율하며 사는 것이며 그런경험을 통해 그 진리를 더 배우고 결국 완전한 그 나라로 가서는 더이상 

이런 것들이 없는 완전한 것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 아닐까요???  

거기서 행위 하나 더 나오고 덜나오고가 무슨 상관입니까???

크로노스의 삶에서 카이로스를 경험하지지 못한자는 결코 완전한 진리로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경험하고 배우고 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내 행위는 하나님의 열심에서 나오는 부산물이지 나의 

구원의 증거나 결과가 될수 없습니다.

이제 진리가 되었으니 막살자와 이제 진리가 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행위를 내어놓자는 전혀 다른말이지만 같은 말이란

말입니다.

여전히 그 행위하는 것에 메어있으니 말입니다.

내 행위 자체가 이제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한 것도 진리로 행한것이고 삼손이 이방여자와 결혼한것도 드릴라와 간음한것도 유다가 다말과 간통한

것도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한것도 다 진리데로 행하고 진리로 살아낸 모습니다.

그 부정한 자리에서 그리스도가 나온것입니다. 우리의 죄 선 악 이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막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들은 알아서 하시되 진리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니 더 이상은 행위에 대해 

말씀하진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열매 열매 하시는데 그리스도가 첫 열매이고 그 열매의 씨를 받아 또 다른 열매인 내가 그 열매이지 내 행위가 그 열매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열매이고 보석이며 진리입니다.

 

 


박 ㅎㅅ 22:46 new

예수님은 자신의 하시는 말씀이 곧 아버지께서 그 안에 계셔서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예수님이며 동시에 그분의 일, 열매, 행위입니다.
밀알로 죽으신 말씀이신 예수님의 열매들인 우리 또한 바로 그분의 말씀, , 열매, 행위여야 할 것입니다.
살아 운동력 있어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분별해 내시는 말씀의 검이 
우리의 입을 통하여 나올 때 그 말씀이 우선 그 말하는 나부터 심판하실 것입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부터 심판해내는 것이 바로 나의 할 유일한 일이며 행함이며 열매입니다.
우리가 말씀이나 계명을 지킨다고 할때 지킨다는 의미는 행위로 옮김이 아니라 경계하며 비밀로 지키고 간직한다는 원문단어의 뜻이 있더군요.

경계하며 지킬때 그 말씀이 나의 생각을 사로잡고 생각은 말로 나오며 고백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김 ㅈ 22:47 new

참그리스도인은 본인이 열매를 맺은줄도 모릅니다. 마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전엔 악도 몰랐거니와 선도 모른 이치와 같은것입니다 열매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통합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지는 모든것이 열매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는 사랑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게서 이루신 그사랑입니다 곧 열매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것이고 그것이 믿음이고 행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행함을 주장하고 행함으로 판단한다는 자체가 우스운것입니다 빛이 비추이는 것은 필연이고 진리입니다 인간의 한계적 시각으로 열매운운 행함운운 하는 것은 말씀에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귀한글에 감사드립니다

 

신 ㅇㄱ 23:14 new

에효~ 우리 개미집사님만 맨날 총알받이 되시고...뒷수습까지 다 하시니...
생전의 목사님께서 그렇게 피터지라 알려주시고 가셨는데도...
카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온통 꾸중물이네요
허기야 우리 인생의 바다에 어떻게 풍랑이 없겠습니까? 이 풍랑 인연하여 더 잘 갈 수 있기를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ㅎㅊ 23:18 new

김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해결된것이 이 행함과 믿음 입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선악과 물고있는 죄인으로서 나타내는 행함이 아니라 묵시속에서는 완성되어 있지만 이 역사속에서는 예수그리스도와 연합 하는.. 예수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하는 행함이 진짜 행함이라고 이해하고 있 습니다. 만약에 들어나는 행함이 있다면 그 행함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행함 이겠지요.. 
우리는 자아숭배에 사로잡혀 결코 순전한 예수그리스도의 행함을 할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박 ㅈㅎ 23:22 new

오늘 카페 글들을 보며 smyrna 라는 이름으로 댓글 달아주시던 생각이 났습니다.....지금도 어디선가 그래주실거 같은...아니 그래주시길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습니다..
수고 많으신 개미집사님..감사합니다.




njsmyrna 13-09-30 10:4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예수님의 비유9중에서

그들은 열심 있는 종교행위를 강조합니다.
특별 새벽기도니, 금식이니, 천일 제단이니, 하면서 열심 있는 종교행위를 강조하고,
착하게 살자고, 선하게 살자고 눈물 섞인 호소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열심과 선함의 결과는 항상 인간의 유익으로 결론지어집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성공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위해, 우리가 열매를 맺자는 것입니다.
좋은 설교 같지요? 건강한 설교 아닙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생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걸 아는 이들은 절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착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착한 일을 합니다.
그걸 아는 이들은 절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백일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걸 아는 자들은 절대 자신의 가치 챙기기를 위해 구제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은혜를 나누는 차원으로 구제를 합니다.
그걸 아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몇 배로 더 복을 받기 위해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기 아들 예수의 목숨으로 우리를 위해 헌금을 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나 자신을 전부 주께 맡긴다는 신앙고백으로 헌금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짜 열매를 맺게 하는 예수님의 은혜를 충분히 가르쳐주지도 않고 무조건 착하게 살고,
종교적 열심을 부려 이 세상에서도 인기와 자랑을 챙기고,
이 세상에서도 풍성한 복을 누리며,
천국도 가자는 식의 가르침은 마귀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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