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12 (회원 0)  

Home >  나눔터 >  퍼온 글들

 
작성일 : 13-07-26 11:46
   어둠 저편에(2편) <간증기>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5,198  


<서울 노요한님의 글입니다>


어둠 저편에 빛이 있다 하잖아요

그러나 어둠 가운데 있는 자가 빛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내가 처한 어둠이 얼마나 깊은 지 알아야 하듯

진리를 알게 하시기 앞서 거짓이 뭔가를 알게 하시며 은혜의 진리는 바로 그런 거짓에 속하지 않은 것임을

그 반대 편에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진리보다는 거짓된 말에 더 익숙해 있고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지요, 저는 그토록 인본주의가 성경적이 아님을 알았기에 내가 나의 구원을 지킬만한 자신이 없어서

나는 여호와증인을 떠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은혜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그럴까요?

신앙 생활은 온갖 세상적인 원리와 법칙에 근거한 종교행위요 십자가 단 절간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지요

 

그러던 차에 아직 김목사님 설교를 접하기 전에 김모 선교사님의 설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선교사님은 자기 인생의 목표를 다 포기하고 선교사로 헌신해 오신 분이시고 오늘날 교회의 실정을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바, 교회의 부패와 모순을 실날하게 비판하며 예수를 바로 믿고 예수의 발자취를 본 받아 살며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야 한다고 헌신과 회개를 촉구할때는 많은 은혜를 끼치곤 했습니다.

그가 주님 사랑을 역설하는 설교엔 힘이 있었고 나름대로 감동과 은혜가 넘쳤기에 기도원 집회도 참석하여 설교를

들은 적도 있었죠, 그러고는 이렇게 매일 쓰러지고 넘어지며 향방 없이 믿는 것은 잘못 된 것이지 하며 두손 불끈 쥐고

새 삶의 의지를 불태운 적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결단 마저도 만용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하시네요

우리는 내가 결심하고 결단하면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다는 어설픈 자신감은 기만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그리 긴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나는 결단코 내 의지의 능력으로 하나님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못 돼며,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했고,  나는 내 힘과 의지의 결단으로 회심하여 돌아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닐뿐더러 회심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셔서 내가 죄인 임을 자각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라는 것과  

진정한 회개는 내가 죄인 임을 스스로 깨닫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찾아 오시는 것이라는 자인식이 들

때 비로서 우리는 내 주도권을 주님께 이양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거에요

 

이처럼 우리에게는 진리 보다 거짓이 더 익숙하며 자연스러운 법이지요

왜 그것이 우리 몸에 배어서 그런것입니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 없는 결과가 없으며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되어진다고 배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원인이 없는데서 결과를 가져 오시고 옳은 이치가 아님에도 이유 조건 없이 어떤 자들은 애초부터 배재하시고 

어떤 자들은 이유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택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또한 심은대로 거둔다는 추수론 있잖아요?

이런 말을 내세우며 복 받은 자들은 다 복 받을 만한 행위를 했으니 복을 주시는 것이라며 세상의 약육강식의  승자가 독식하는

승자승의 힘의 논리가 그대로 신앙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김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1년 가까이 지날 때까지도 납득되지 않았던 문제도 바로 하나님 안에서는 힘의 논리가 배재된다

는 역설같은 진리에요

왜 이제 내가 가진 것 없고 능력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내 열심 하나로 가능해진 마당에 이것이 아니라니요 

그러나 이 논리가 맞다면 누가 더 열심을 갖고 정성을 들이느냐의 여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인데 끔찍하지 않은가요!

 

이렇게 기도하여 응답 받는 자들의 주 된 생각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이지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능력있는 하나님께 구하여 얻는다는 거잖아요

이런 자들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만 찾게 됩니다.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고 잘 안 되면 뭔가 정성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게 되지요.

그러니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고 내 삶에 구름이 끼고 비 바람이 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요

내 삶에 임하는 모든 문제 고난 박해 실패 이런 것들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으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

이라고 받아 들이기 되어 있어요 이런 것들을 통하여 말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가 막히게 되어 있답니다.

일방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전능자로 그저 섬기며 숭배하기에 급급한 미신적인 신앙으로 자꾸만 흐르게 됨은 너무나 당연,

 

이 즈음 모두가 다 오로지 내 구원 내 복 받는거 내가 잘되는 거 내가 변화 받는 것에 모든 촛점이 맞추어져 있을 때

내 구원을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는 생각 조차 잘못된 것이며 이는 내 구원을 위하여  예수를 수단과 도구로 전락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내 구원이 중심이 되고 내가 구원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게 되는 넌센스의 신앙이 된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심을 아주 우연잖게 접하게 됩니다.

인간은 본래 없음의 자리에서 그 절망을 처절하게 체험하고 이 세상에서 그 존재성을 부인하며 핍박과 저주 받은

죄인의 길을 걷다 결국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묵시 안에서 천국을 살게 되어 있다는 자기부인의 삶을 강조하는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히 듣게 하십니다.

 

진리를 물처럼 흘려 준다고 하지요

왜  내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다른 사람에게 흘려주는 것이지요

이 말처럼 저에게도 우연잖게 인터넷 링크로 클릭에 의하여 목사님 설교에 접근하게 되었네요 지금도 그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냥 여기 한번  들어가 들어보세요'

이런 멘트를 발견하고 가서 듣게 된 말씀이 아마 계시록의 어느 부분 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마를 타신 예수가 이한 검을 가지고 적진을 향하여 진군하고 계십니다. 예수에 의하여 심판을 받아야 할 적은 누구죠?

그때까지 예수그리스도에게 심판받아야  할 자들은 저들 믿지 않는 자들과 이 세상의 악한 원수 마귀들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바로 예수에 의하여 공격 받아 죽어야 할 장본인이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의 검을 들고 심판하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는 믿지 않는 세상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거에요

죄인 중에 괴수이지만 내가 죄인인 것을 모르는 나를 향하여 양날 선 말씀의 검을 들고 나의 어둠을 걷어 내시며

의인 흉내를 내고 있는 나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밝히 드러내시기 위하여 지금 그리스도의 영으로

내 안에 오신다는 겁니다

만일 지금 이 예수의 심판대 앞에 서지 못하면 우리 육신으로 주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영원한 형벌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귀가 번뜩입니다. 그래 문제는 나인 것을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살 수도 없으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저 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하여 예수를 믿은 것 같은 나의 추한 내면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면서 진의가  드러나고 맙니다.

 

이때 부터 들려 오는 목사님의 말씀 나의 어지러운 신앙을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듯 했지요

처음에 듣고 또 듣고 정말 중독성이 이렇게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다른 목사님 말씀은 한 번은 은혜롭게 들어도 두번은 듣지 못하겠잖아요,

그런데 김 목사님 설교는 열번 스무번까지 들은 말씀도 있을 정도로 성경의 엑기스를 그대로 쏟아 붓듯이 그렇게 들려

주셨지요,스피커를 통하여 들려오는 소리의 청량함, 그 표현의 정확함, 그리고 깊은 곳에서 나오는 호소력,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설득력,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성경 안에서 성경을 오직 은혜로 풀어내는 영적 혜안과 통찰력 쉴 틈을 주지 않고

쏟아 붓는 폭포수 같은 준비된 방대한 내용의 설교는  당대 최고의 설교가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들을 때마다 속이 후련해 집니다.

모든 말씀들이  인본주의적으로 너무나 당연시 해석 되어질 말씀들을 은혜로 풀어내니 그 말씀 안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그리고 희열 그리고 안도의 한 숨 ,아 난 이제 살았다.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왜 그 말씀 대로 살지 못해서 난 헛 믿은거로구나? 언제나 말씀대로 살아지나? 이런 고민이 그치질 않았는데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은혜로 풀어질 때 그럼 그렇지 하며 말씀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요

 

저는 김성수 목사님은 이 시대에 필요한 분으로 하나님이 내시고 충분히 쓰셨고 그리고 데려가셨다고 믿어요

뭐 그분이 너무 탁월하고 유능해서 하나님이 그 목사님을 쓰셨다기 보다는 이 시대에 그런 진리의 말씀이 필요했기에

그런 분을 내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지요, 인간이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연구한다고 그런 진리가 나오는 것

아니잖아요? 

 

지금까지의 모든 진리라는 말씀이 다 잘되는 나,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나, 하나님께 승인 받는 나,였잖아요

그런데 김목사님의 모든 말씀의 내용은 부정당해야 할 나, 그래서  예수가 필요한 것이고 부인되어야 할 나, 그래서 예수만

믿어야 되고 이 세상에서는 복받는 자로서가 아니라 심판받고 저주받는 죄인으로서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나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끝 날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구원 받는 은혜의 메카니즘 안에서 어찌 우리가 세상부귀 영화의 길로 가겠어요

어찌 우리가 잘 되는 나 만들기 위하여 자기 치장하는 어설픈 성화론 고상한 변화론에 다시 빠지게 될 수 있나요

 

이렇게 성경은 나를 살려 사람 답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자랑하기 위하여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한계를

알라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깨달아지면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려 집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되었고  예정과 구원과 영생과 모든 삶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나라는 존재는 나의 믿음에 발을 붙일만한 자리가 없음을 알게 하셨죠

믿음도 내가 믿은 것 아니요 주님이 믿게 하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란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우리가 이 말씀 들으면서 제일 고민되는 문제 있지요? "그럼 난 아무것도 안해도 된단 말인가?"

그러나 어느 때 부터인가 나의 의지가 그리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난 그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한데

내가 무슨 일에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한 관심과  이것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지요

이 세상에서의 썩어질 육신으로 한 어떤 행동이 그리도 하나님 앞에 챙길 만큼 중요한가? 그렇다면 그분이 낱낱이 기록하여

행한대로 갚으신다 했는데 그것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로 드러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위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삭제 해 버리시겠다 말씀하고 있잖아요?

감사하게도 이 은혜 안에 있을 것인가요? 

아니면 나 잘 한 거 되게 많은데 행한 대로 갚아주세요?  한다면 이런 자들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행한 대로 쏟아질 겁니다.

내 행위를 기억하지 않고 내 행한 대로 갚지 않고 예수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보아 주신다는 것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은혜요 우리가 누리는 참 자유 아닌가요?

 

이렇게 김성수 목사님은 나의 모든 것을 해체 시키며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가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었고 잘못 된

것을 바로 잡아 주었네요, 어떤 성경 해석 한 두개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잘못된 신앙의 한 부분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골조를 다시 세우고 새롭게 건축하는 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주도권 이양의 문제, 불가항력적인 은혜론

신율주의가 아닌 무조건적인 은혜 베푸심

묵시 안에서의 창세전 예정

어설픈 성화론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부인이 참된 성화라 하셨지요

그리고 내가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하나님 앞에 부정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라고 하셨죠

 

이런 진리에 어찌 인본주의가 발을 붙일 수 있으며 신율주의 성화론이 감히 넘 볼 수 있겠어요

잘 되는 나, 인정 받는 나, 변화 받는 나, 예수를 본 받는 나,  그럴 듯한 이론이지만 성경은 이런 걸 목표로 하지 않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우리는 부정되지만 결국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수로 봐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요  예정이요 영원한 은혜요 사랑인 것을. 이 진리를 잘 흘려 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요.

우리는 그 말씀을 맡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를 4년 정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체험임을 밝혀 드립니다.




 
   
 

모임소개  |  로그인 
Copyright ⓒ 2023 뉴저지 교회 NJ Church, All rights reserved. Comment to nj.smyrna@gmail.com (T)201-658-3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