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없어두 예수만 바라봐라!!
(출애굽기 32장) 1절을 보면요.
시내산에 십계명 돌 판을 가지려 올라 간 모세가 안내려오자 이스라엘 전체가 불안해하고 있죠?
‘어 그 사람은 왜 안내려와’ 그러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
그러면서 모세를 뭐라고 부르냐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이때에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아래에서 그걸 보고 있으면서도 그 하나님을 못 알아먹더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요.
지금 모세하고 하나님은 열심히 위에서 돌 판에다 글씨 쓰고 있는데 그 아래에서 이들이
그 하나님이 없다 라고 하는 거예요. 안 보이니까.
분명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분은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모세만 바라보는 거예요. 이게 인간들의 맹점이에요.
여러분 설교를 잘 하는 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대언하는 설교자,
어느 틈에 여러분은 그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어 있어요.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여러분, 그 사람이 사라지잖아요.
그러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게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어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건 모세 뒤에서 일하신 하나님이었단 말입니다.
그걸 보셔야 여러분이 그 까짓 모세가 없어도 목사가 한 달 동안 비워도 안전하게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안 나오기만 해봐 그냥, 방송으로 다 보고 그냥 ....
아 그런데 이 모세가 안보이니까 이 사람들이 불안해 갖고 눈에 보이는 모세를 쫓았던 그들은
눈에 보이는 뭔가를 대체물로 만들어 내야 되요. 그래서 고작 만들어 낸 게 금송아지에요.
그런데 이건 모세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 이가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신이다. 라고 부르는 거예요.
조금 아까 모세를 불렀던 이름이에요.
그거는요. 그러니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평화를 얻기 원했고
이런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통해서 평화를 얻기를 원한 거예요.
그러니까 떡 하니 그거 만들어 놓자마자 화목제 드리고서 평화, 평화 그러는 거예요. 평화 ~~~
( 중 략 )
그런데 교회 안에서 조차,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를 설득하라는 식의 그런 종교관이 있다. 라는 건
정말 심각한 거예요.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 해요.
무슨 감동을 자꾸 받으려고 하고 체험을 하고 싶어 하죠.
나를 역사 속에서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종교는 인정할 수 없다. 라는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
목사 너도 나를 기쁘게 해줘야 되고,
말씀도 나를 기쁘게 해줘야 되고,
교회도 나를 기쁘게 해줘야 되고,
나를 감격시켜 줘야 되고,
예배도 훌륭한 용병들을 고용해서 찬양도 멋지게 좀 해서
내가 은혜 좀 받게 하고,
이런 식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패역의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화목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세요.
다 죽이겠다고 하셨는데 모세가 막고 서요.
보세요. 다 죽이겠다 이 말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 마지막 재앙 때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다 죽이겠다죠? 그죠?
어린양의 피가 발린 집, 그 집 장자만 살리겠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 어린양의 역할을 지금 누군가 해야 되요. 지금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 상태에요. 이제.
다 죽이겠다. 에요. 너희들이 지금 애굽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를 잊어버리고
그 진정한 화목제물로 드려진 어린양의 피 그거 잊어버리고
또다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너희들의 평화와 화평을 기원하고 있는데
‘그래, 다시 가르쳐주게.’ 그러더니 다 죽이겠다. 로 가요.
그리고는 거기에서 어린양의 역할로 모세가 막아서는 거예요.
모세가 막아선 사람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