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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11 08:57
   어머니 복중에 생명의 씨 - 로마서 88강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290  


이렇게 설명을 한 번 해볼게요. 

어머니가 복중에 생명의 씨를 받아서 잉태를 하게 되죠? 그건 다 하나님의 자손 그 ‘제라’가 어떻게 아들로 탄생되는가를 설명해주기 위해 하나님이 모형으로 주신 거예요.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런 과정 거치지 않고 만들어서 뿌릴 수 있다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게 굳이 그런 과정을 통과하게, 경험하게 시킨 건 우리에게 그걸 통하여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함이란 말입니다. 여자는 복중의 생명의 씨를 남자로부터 선물 받는 거예요. 부여받는 거예요. 받아서 잉태를 합니다. 그리고는 10달 동안 그 생명의 씨에 의해 그 어머니의 인생이 장악되고 조종되게 되어 있어요. 10(열)이라는 것은 항상 십계명, 율법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아래의 ‘호(ὁ) 코스모스(κόσμος)’의 세상은 열이에요, 열(10). 옛 성전, 율법, 아래 세상, 이건 다 같은 거란 말이에요. 그 열(10), 그 열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씨를 받아,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진리의 말씀이 그 씨가, 그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는 순간부터 그는 열의 삶을 사는 거예요. 내 복중에 생명의 씨를 가진 자로 사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열(10), 그 열을 그 씨에 의해 장악당하고 조종당하며 살게 돼요.

어머니들이 그러죠. 어머니들이 임신하면 그 임신 전의 여자와 그 후의 여자가 다른 여자가 됩니다. 그 안의 씨가 조종하기 때문에 그래요. 장악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안에도 그 성령, 진리의 영이라는 그 씨가 들어가면 그 성령이 여러분을 어떻게? ‘아고’(ἄγω) 인도해 간단 말이에요. 끌고 간단 말이에요. 생명의 씨를 받지 못했을 때 여자로써 추구하던 모든 욕망과 애씀을 그 씨에게 빼앗겨요. 아니, 나는 안 빼앗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어떻게 빼앗기게 돼요. 심지어 먹는 것까지 조종당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따로 있어요. 그런데 내 씨가 먹으라고 하는 걸 먹게 돼요. 그 입덧이에요. 저희 집사람, 결혼했을 때 임신 하자마자 통닭을 사달라 그래서, 고기라는 걸 아예 안 먹었던 사람이에요. 김치도 안 먹었어요. 닭고기? 전혀 안 먹었어요. 회, 야채, 비싼 거만 먹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통닭을 사달라 그래서 당연히 다 안 먹겠지 그러고 다리 두 짝을 제가 다 먹었어요. 그랬더니 20년 동안 그걸로 제가 바가지 긁히고 있어요. 그 때 돼지 같이 다리 두 개 다 먹었다고. 아니, 먹는 것까지 바뀌어요. 그 안의 씨가 “너는 이걸 먹어야 돼”라고 조종한다니까요. 생명의 씨를 잉태하지 못했을 때 여자가 좋아하던 그 먹거리는 그 여자를 살리는 양식이 되지 못한다라는 것을 그 복중의 씨가 알려주는 거예요. 상징이에요, 물론. ‘당신은 내가 먹으라고 하는 걸 먹여야 산다’라는 암묵적 강요예요, 씨의 강요. 생명의 씨의 강요. 그걸 입덧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당연히 여자는 힘들죠. 여자, 여자 그러니까 뭐 딴 사람 생각할 거 없어요. 우리 얘기예요, 여러분. 신랑인 그 하나님, 그 예수 그리스도 말고 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비로소 존재가 될 수 있는 우리 얘기하는 거예요. 이 땅에 내려온 하나님의 신부 얘기.

그 여자는 힘들죠. 어렵죠? 고통스럽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사니까. 그런데 그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자기 몸을 가꾸고 자신의 건강을 위하며 자기 몸을 자랑하는 삶이 점차점차 지양 돼요, 지향 되는 게 아니라. 그때만큼은 조금 살이 쪄도 용서가 되고 부스스한 채로 마켓을 가는 것도 스스로에게 용인이 돼요. 아이, 그 전에는 정말 허리가 1 cm 두꺼워지는 것도 스스로 용납이 안 돼. 그래서 자기를 막 학대해. 꼬집기까지 하고. 근데 임신을 하고 나면 여자들이 코끼리가 되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녀요. 왜? 내 안에 생명이 있거든. 씨가 있거든. 이거 하나로요. 그 씨에 의해 조종당하는 거예요. 좋아하던 커피나 몸에 안 좋다는 음식들도 스스로 자제하게 돼요. 자기 안에 잉태된 그 생명이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에 이 삶이 나타나게 돼 있어요. 그러나 원래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도록 태어난 선악과 입에 문 아담들이 그렇게 자기 자신의 욕망을 몰수당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게 고통이 아닐 수가 없죠.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임신하면 우울증 걸리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 안의 생명이 그걸 하게 하는 거예요.

그 고통스러운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내 복중의 생명이 인식되고 감지될 때마다 그 고통은 잠시 기쁨과 환희의 자리를 내주죠. “아, 그렇지. 내 안에서 내 아이가 내 배를 차네?” 그 때 뭐 내 몸이 코끼리가 되어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남편이 손가락질을 해도 그거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내 안에 생명이 있지? 내가 그 생명을 키우고 있지. 내가 그 생명을 품고 있지. 그 생명이 내 안에서 이렇게 역동적으로 뛰놀고 있지?” 이렇게. 내가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내 안에 소중한 생명이 있음을, 그것 때문임을 깨닫는 거예요. 카이로스죠. 그러나 자아라는 육신을 여전히 갖고 있는 그 어미는 이내 또 고통과 어려움 속으로 다시 빠져들어요. 그러면 또 남편만 달달 볶아. 그러면서 크로노스의 열이 채워지는 거예요. 그리고는 아이를 낳는 출산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크로노스의 열이 아들로 출산되는 거예요.

10(열)이, 이 아래의 세상이, 율법이 아들로 출산이 되기 위해서 12(열둘)이 필요했죠? 그래서 12 사도, 12 지파가 있는 거죠. 그렇게 그들이 12, 아들이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말씀을 내 마음으로 갖고 전하게 되죠? 그 때 그거를 7 이라 그래요. 그래서 그 다음에 7(일곱) 집사가 뽑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7 집사의 섬김은 그들이 구제와 뭐 긍휼의 어떤 사역을 담당한다고 하는 게 다 말씀을 전해서 구제하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존 칼빈이 정해놓은 집사, 장로의 이 서열은 성경적인 게 아니에요, 사실은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정말 뿌리는 이들이 됐을 때 그들을 집사라 그래요, 사실은요. 그 deacon 이라는 단어 자체가 ‘섬긴다’라는 뜻인데 성경에서의 섬김은 말씀을 전달해주는 섬김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들을 건져내는 거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그런 뭐 집사니 장로니 이런 명칭에서 그냥 자유로우세요.

아무튼 그렇게 10 달의 그 고통스러운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낸 그는 12의 아들을 어느 날 이제 출산을 하게 되죠. 근데 출산을 할 때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그 열(10)의 고통이 한 순간으로 모아지는 거예요. 그건 그들이 그 생명의 씨를 받고 열이라는 아래 세상을 사는 그것이 바로 이러한 죽음의 삶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이렇게 죽었다가 사는 고통만큼 힘든 거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왜? 우리의 육이 죽고 영으로 사는 시간이 바로 그 크로노스의 아래, 그 열(10)의 시간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여자가 자기에게서 나온 그 아들을 보는 순간 10 달 동안의 고통과 불편함과 우울함과 아픔 이런 게 싹 사라지죠, 한 순간에. 여자가 애 낳을 때 온 몸의 뼈가 다 해체되는 거 같다 그래요. 그만큼 아프다는 거죠. 그러니까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예요, 한 마디로. 그래서 “다시는 내가 애를 갖나 봐라” 그러는데 아들이 나오는 순간, 아들이라 그러니까 딸들이 서운해 할텐데 씨가 내 안에 들어와 생명으로 출산이 되면 성경이 그걸 그냥 아들이라 그래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경험했던 그 카이로스의 시간 “아, 내 안에 생명이 있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든 거지. 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그래서 가치가 있는 거지.”라고 했던 그런 문득문득 겪었던 그런 카이로스의 그 시간이 “아, 바로 이거구나”라고 완결이 되는 거예요, 아들을 낳게 되면. 결론이에요, 그게. 그러면 그 여자는 그 해산의 순간을 시점으로 해서 영원한 카이로스의 그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그걸 영원이라 그래요. 거기에서의 삶을 영생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시는 그 크로노스의 시간과 상관 없는 자로 살게 되는 거죠. 그게 그 묵시에 완성된 현실인 거예요. 이미 여러분이 살고 계신 그거. 그 크로노스의 10 달이라는 시간이 사실은 이 카이로스의 기쁨을 그 시간 속에서 나타내준 모형의 시간들임을 알게 되는 거죠. 열 달 동안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렵게 그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러나 그 시간은 바로 이 카이로스의 이 완결, 이 기쁨, 이 환희, 이 행복을 위한 시간이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크로노스의 시간은 바로 이 카이로스의 이 시간을 역사 속에서 나타내어 보여주는 시간이다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10 달 동안의 그 크로노스의 시간은 출산이라는 그 카이로스의 완성을 위한 거예요. 그런데 완전한 출산이 되기 이전에도 인간 안에 그 생명 그것이, 그 역동성이 감지가 된단 말입니다. 고 때마다 그 어미는, 그 여자는 카이로스의 감동을 맛보게 되는 거예요. 그걸 현실천국이라 그래요. 성경에 보면 천국이 왔다 그러잖아요?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나중에 착한 일 많이 해서 가는 거 아닙니다. 성경은 단 한군데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 나라가 온다 그래요, 우리한테. 심지어 왔다 그래요. 어디 있어요? 여러분이 그 카이로스의 그 시간을 살게 될 때가 그게 천국인 거예요, 지속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러나 그게 완료가 되면, 아들을 확 낳아버리면 그 때 여러분은 바로 그 나라를 살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근데 이 땅에서 그 현실천국과 연결이 되지 못하면 그 진짜 천국은 절대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야 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냥 행복하기만 하고 편안하기만 하고 기쁘기만 하고 이런 삶을 살라는 게 아니에요, 천국을 살라는 건. “아, 이게 그거지”라고 하는 고 순간 이게 카이로스란 말이에요. 그게 천국을 사는 거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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