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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30 13:10
   너 한번 먹고 죽어봐라 - 조규만님 글
 글쓴이 : admin
    조회 : 25,368  




어릴때 참 먹을게 없었습니다. 동네마다 지금은 어설프지만 당시엔 꿈의 궁전 같았던 구멍가게들이 하나씩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먹을만한 것들이 많지도 않았지요. 처음에는 쫀드기나 건빵같이 참 심심해보이는 과자들을 사먹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뽀빠이와 라면땅, 자야같은 과자들이 나오더군요. 새우깡이나 사브레 같은 과자들은 한참 지나서야 나왔구요. 그러다 언젠가 어느 훌룡하신 손님이 미제초코렛이나 바나나를 사오곤 하셨는데 어머니는 그걸 안방 철제케비넷 안에 있는 금고에 넣어두시고는 하루에 한개씩 배급을 주시곤 했던 기억이 그립습니다. 밥때 되면 주인얼굴 바라보며 한없이 기다리는 강아지 마냥 엄마얼굴 한번 캐비넷 한번 바라보며 다음날을 기다렸던 아련한 추억이 있네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신선한 충격의 간식은 메론빵과 보름달 그리고 새알초코렛과 써니텐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돈 많이 벌면 장롱 서랍속에 잔뜩 쌓아 놓고 먹고 말겠다는 당찬 각오를 다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 그까짓꺼 박스채로 사놓고 먹어도 될만큼의 여유는 있는데도 그렇게 먹고 싶지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반면 그렇게 유행을 타면서 새롭게 출시되는 간식들과는 달리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도 우리네 주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간식이 떡볶이나 순대 그리고 튀김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는건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두 깎아 달라고 상인들과 씨름을 하셔서 솔직히 창피했거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장길을 따라나섰던 이유는 시장 안에서 하나씩 쥐어 주시던 간식인 튀김 때문이었습니다. 자식들이 넷이나 되고 언제나 친척분들 중 한두명은 꼭 신세를 지느라 집에 머물러 있게 되있던 서울의 큰집인 저희 형편에 사실 간식을 사먹는다는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떡볶이는 가끔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셨고 순대는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잘 못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악착같이 십원이라도 깎으며 다니시다가는 튀김가게 앞에 다다르면 튀김을 하나 사서 손에 쥐어 주곤 하셨습니다. 오징어튀김 먹을래 고구마튀김 먹을래 하시며 고개를 숙여 물어 보시는데 차마 둘다 사달라고 하기가 어렵더군요. 십원 싸게 파는집이 있으면 십리를 걸어 가시고 오원 싸게 파는집이 있으면 오리를 걸어 가야된다고 하시는 어머니한테 양손에 튀김이라니 당치 않은 욕심이죠. 하여간 어떤 튀김을 먹느냐의 선택은 정말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선택만큼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간장없이 먹어도 되고 양도 좀 많아 보이는 고구마튀김을 먹겠다고 하면 신문지에 뜨끈한 고구마튀김을 하나 손에 쥐어주셨는데 정말 어찌나 맛있던지 환장하겠더라구요. 그때 그렇게 손가락이라도 뜯어 먹을 기세로 고구마튀김을 먹고 있는 어린 막내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비장하게 한말씀 하셨습니다.
"규만아, 고구마튀김이 그렇게 맛있어? 그래, 날잡아서 엄마가 원없이 먹게 해줄께....."
저희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아주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손이 아주 크신 분이죠. 어머니의 평상시 음식지론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어머님의 평상시 지론은 "너 한번 먹고 죽어봐라"였습니다. 그래서 어린나이였지만 곧 어머니가 산더미같은 고구마튀김을 만들어 주실거라는 기대가 마음속에 가득찼죠. 그리고 몇일 후 그날이 왔습니다. 어머니는 김장이라도 담글 기세로 고구마들을 사오시더니 하루 종일 오늘 우리새끼들 원없이 한번 먹고 죽자시며 고구마를 튀겨 내셨습니다. 찌질하게 나하나 형 하나 나하나 누나하나 이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눈치 안보고 마음껏 먹어도 되니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먹어도 먹어도 불어나는 국수처럼 먹어도 먹어도 고구마튀김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원없이 배터지게 하루 죙일 먹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뱃속에 온갖 잡다한 기름끼가 별로 없었던 어린 규만이의 뱃속은 어땠을까요. 그날밤 이후로 사흘밤낮을 토하고 설사를 하며 쌩난리 부루스를 췄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저는 고구마튀김을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40여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탈리아 영화는 이탈리아의 코미디언이자 배우이며 감독인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극찬을 하고 영화제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주인공 '귀도'와 그의 실제 아내이면서 영화속 귀도의 아내로 나온 '도라' 그리고 그들의 사랑스런 아들 '조슈아'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입니다. 많은 극찬을 받은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큰공감을 가지고 본 영화는 아닙니다만 영화의 비극적 결말과 제목이 주는 이질감이 더욱 영화의 뒷맛을 느끼며 보게하는 좋은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영화 시작부분에서는 찰리 채플린이라도 나올 것 같은 고전적인 코메디같던 영화의 진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객들의 애간장을 점점 옥죄는 스토리로 전개가 됩니다. 수용소에 아들을 숨겨 놓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짠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던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아들을 숨겨 놓고 어디론가 끌려가며 혹여라도 아들이 걱정까봐 익살스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는 귀도는 결국 어느 골목으로 사라지고 아주 잠시후 커다란 총성이 나고 군인만이 다급히 뛰어 나옵니다. 은근히 끌려 들어갔던 귀도가 슬그머니 살아 나오기를 기다렸던 관객들은 귀도의 죽음에 큰실망을 합니다. 하지만 골목에 끌려갔던 귀도만큼 실망했을까요. 낙천적인 귀도가 강아지같은 눈으로 독일군인의 눈을 바라보며 애원했을 그순간 그 눈빛을 생각하면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영화에서 독일군 군의관 장교로 나오는 '레싱박사'라는 인물입니다. 전쟁전 귀도가 일하는 호텔에서 귀도와 인연을 맺은 래싱박사는 수수께끼광입니다. 지인들과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는 것을 큰즐거움으로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호텔에서 식사보다도 난해한 문제를 푸는 것에 더 집착했던 그는 귀도의 도움으로 수수께끼를 해결하곤 했는데 그런 그를 수용소에서 만나게 됩니다. 귀도는 나찌의 장교로 와 있는 래싱박사를 만나는 순간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구해줄 수 있는 구세주로 보였을테니 말입니다. 래싱박사는 실제로 조심스럽게 귀도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만찬장까지 귀도를 오게 해줍니다. 귀도는 어쩌면 살아날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꿈에 부풀었을 겁니다. 만찬장에서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래싱박사가 귀도를 부릅니다. 그리도 귀도는 그에게 귀를 갖다 댑니다. 그러자 래싱박사가 이곳저곳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귀도, 잘듣게..뚱보에 못생기고 노란색을 달고 있어 누구냐고 물어보면 꽥꽥꽥..날 따라오면서 똥을 싸지. 나는 누구일까? (중략) 비엔나에 사는 친구가 이 문제를 보내왔어. 이 문제를 풀기 전엔 내 문제를 보낼 수가 없어...(중략) 날 좀 도와주게...제발 부탁하네....도와주게...밤엔 잠도 잘 오질 않아...꽥꽥꽥....오리가 틀림없는데....."
귀도의 속마음을 아는 같은 편인 관객들은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은 뭐지? 하는 마음이지만 귀도의 마음보다 더 황당했겠습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귀도의 얼굴이 밝습니다. 아마도 이수수께끼 속에 자신의 가족을 구원할 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래싱박사의 수수께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레싱박사의 뜬금없는 수수께끼는 사실 미군의 탱크가 비엔나에 이미 도착했고 곧 이곳으로도 들이닥칠 것이라는 힌트가 아니었을까 하고 사람들은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감독의 말에 의하면 아무런 의미없는 순전히 영화 속 허무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 떨고 있는 귀도에 반해 그저 수수께끼 놀이에 빠져있는 래싱박사의 모습은 정말 어이없기만 합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큰흥미를 잃었습니다. 특히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은듯 보입니다. 세상살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에 마지못해 만나고 어울리는 시간을 갖고는 했는데 이제는 정말 같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관심과 가치에 목숨을 걸고 침을 튀어가며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들과의 합석이 쉽지가 않습니다. 서점에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전에는 서점에 들어서서 책 냄새를 맡기만 해도 행복하고 이것들이 다 두고두고 먹을 양식이다 싶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고르곤 했는데 이제는 전혀 서점에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쩌다 아이들 참고서라도 살 일이 생겨 가게되면 당신도 아이들한테 모범이 되도록 책 좀 골라 보라는 성화를 아내에게 듣곤 하는데 도무지 흥미가 없어서 책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온통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이나 마음을 다스려서 행복에 이르는 법등을 얘기하고 있는데 펼쳐보기도 싫고 냄새도 역겹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세상과의 정떼기는 다행스럽게도 당연히 성공적입니다. 점점 외로워지고 있고 점점 도태되어가고 있으며 점점 세상에 대한 입맛과 구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이별의 과정이 저의 늠름한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무능으로 인한 결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하여간 주님의 이끄심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세상의 집요한 관심은 레싱박사의 그것만큼이나 생경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자고 하고 있는데 하챦은 수수께끼나 풀어 보자고 달려드니 대화가 통할리가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스스로 참으로 비참한 것은 저 역시 가여운 귀도처럼 여전히 그들에게 의지하고 그들에게 애처로운 눈길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는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함이 있다고 하면서 뒤로는 그들에게 저의 문제를 맡기고 그들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저의 모든 문제와 난관을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음을 발견해서 너무 괴롭습니다.

갈수록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터널 깊숙히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는 보임직도한 터널 끝의 빛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믿음인지 습관인지 아니면 오기인지 하나님에게 더욱 의지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심한 것은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만 해결된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 열두번도 더 한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아마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결국은 저에게 좋은 것만을 먹게 해주신다고 하는데 저는 그저 당장 입에 달달한 고구마튀김을 마음껏 먹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한번 먹고 죽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펑펑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당장 배고파 죽겠으니까 뱀이건 전갈이건 마구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두려워 집니다. 하나님이 저의 철없는 기도를 들어 주셔서 일사천리 만사형통의 기도응답을 주시며 너 한번 먹고 죽어봐라 하실까봐 또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앞으로 쏟고 뒤로 쏟으며 더러운 것들을 소화하지 못하고 고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다시는 고구마튀김을 먹지 않겠다고 몸으로 느끼게 된 수십년전의 어린 저의 마음처럼 지금 다시 세상 것들에 대해 도리짓을하며 거부하는 몸짓이 제 영혼에 베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지나고 보면 손톱끝의 작은 가시같은 고통일뿐일지도 모르는데도 마치 십자가에서 대못이라도 박힌양 신음하고 아파하며 못살겠다고 살려달라며 주접을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지나 온 시간들의 글을 되새김질 해보니 오늘의 어려움과 두려움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또 오늘의 글을 되새겨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징징대며 죽겠다고 발버둥을 쳤을까 하며 웃음지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영화의 제목은 어쩌면 주인공들의 '사랑은 아름다워'로 어설픈 귀결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역설적으로 '인생이 아름다워?'의 느낌으로 마무리되는건 갈수록 시니컬해지는 늙어가는 한 기독중년 남성의 외마디 비명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주인공 귀도가 아들을 안고 막사에서 나오며 어울리지 않게 심각하게 하는 혼잣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부 꿈일지도 몰라....우린 꿈을 꾸고 있는거야....."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기에 비록 우리에게 드러나는 오늘이 탄식처럼 비명으로 제발 꿈이기를 바라며 어렵고 힘들어 할지언정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가만히 얘기해 봅니다.
 
어른이 된 주인공 조슈아의 나래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역시 조슈아의 나래이션으로 담담하게 마무리 됩니다. 억지로 눈물 콧물 빼내려고 온갖 잡기술을 발휘하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게 허무하리만치 담백하게 말입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희생한 이야기.... 그것이 아버지가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아주 오랜 후 저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고백이 제 입술에 담기기를 소망합니다.





최미숙 16-05-31 10:34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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