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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02 14:32
   (05) 말
 글쓴이 : njsmyrna
    조회 : 6,010  




말이 참 쉽습니다.
머릿속 필터가 한두 켭 아니, 필터가 아예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걸러지고 받혀지는 기능들이 애시당초 상실된 사람들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떠오르는 대로 내뱉습니다.

그런 말들이 선의로 드러나 쓰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줄 지, 어떤 치명적 공격이 되는 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떠들 뿐입니다.
적나라하게 뱉어진 가십(Gossip 근거 없는 험담)의 사체(死體)는 썩은 내를 풍기며
또 그런 류의 말들에 배고파하는 자들 틈으로 스며듭니다.
무리를 이루고 암묵적 동의에 의해 진실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말이라는 건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자신입니다.
그래서, 말 따로 사람 따로 일수가 없습니다.
내어 뱉는 말이 결국엔 나의 지금을 가늠하는 척도를 상대방에게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래서 내가 무엇에 동의하고 어디에 마음이 가 있는지가 말로 표현됩니다.

간혹, 감추는 기질이 뛰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현재를 말로 보이지 않습니까?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 태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말을 하지 않는 실수를 할 뿐입니다.
그 속의 진실이 그게 아닌데 말을 안 함으로 실수를 줄이자는 건,
너무 소극적이며 초기 단계의 미숙한 대처법 아닙니까?

저는 언변이 어눌하거나 말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밌게 말하는 재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 말이라는 건 굉장히 제한적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조금 솔직했고, 잘 믿고, 그래서 잘 보여 버린 것이
상대적 관계에서 오히려 해가 되는 경험이 잦아지다 보니 점점 말이 줄어듭니다.

누구나 말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필터가 여러 겹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그 필터의 그물이 단단히 조여져 있지 않아서입니다.
그물의 강도와 밀도가 조여지는 게 꼭 어른스러운 건 아닙니다.
세상에 그만큼 적응되어 간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예의와 격이라는 부분에서는 저도 동의하고 따랐습니다.
살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세상이 내어놓는 어떤 기준보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기준을
하나님과 말씀에 의해 함께 세웠기 때문에
이젠 말 실수라기보다
조금 아니, 많이 다른, 세상과 사람과 인생에 대한 각도를 가졌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할 뿐입니다.

그 말이 실수라기보다는 다름의 표현일 때가 요즘은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정말 기준 없이 생각 없이 해대는 말들에 많이 상처를 받습니다.
무시하라고요?
그게 되면 고민도 안 합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받을 때마다 깊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마음 밭이 후벼지고 뒤집어지니 그게 문제입니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라는 그룹을 이루어 근거와 근원을 알 수 없는 말들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포스트 모던 세상에서 소수의 무리라도 동의하면 그건 힘이 됩니다.
큰 기준은 주로 그런 겁니다.
내가 보니, 내 생각에, 그렇다더라, 근거도 판단도 집행도 다 본인들 기준입니다.
제가 겪은 경우는 그랬습니다.

본인들의 해명은 변명이 되고 오히려 죄악이 됩니다.
사람들은 진실 따위엔 관심도 없습니다.
그냥 무료한 시간을 때워줄 어떤 자극이 필요할 뿐입니다.
도마와 칼은 준비됐습니다.
언제고 그 위에 던져 올려 회 뜨고 포 뜰 재료만 있으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그렇게 당당하게 만들기도 하는 걸까요?
보통은 그냥 시기심에서 출발합니다.
비추어 거기에 내 마음이 다 가 있는 건 보지 못합니다.
결국엔 내 욕심이 투영됐다는 거 절대 인정 안합니다.
내가 안 가진 걸 다른 사람이 가졌으면 그건 이미 부당함으로 시작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마음에 많이 담아둔 거면, 표적이 되고 적대감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공격이 시작됩니다.
세상적 기준에서 단지 상대적 상실감 그거 하나 잡고
내가 '이 한마디쯤은 해도 되겠지' 로 갑니다.
아니, 그런 생각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튀어 나옵니다.
세 치 혀로 해대는 일갈에 상대방은 돌덩이에 눌리는 고통을 겪습니다.
산 채로 관에 갇혀 땅 속에 묻히는 고통이 그런 걸까요?

세상적 잣대로 볼 때 결격사유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들,
불쌍해서 혹은 어설픈 동정으로 그런 걸 언급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그게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약하고 동정심을 가져야 하고 무조건 도와줘야 하고,
그래서 그들이 혹여 마음 상할까 봐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뤄져야 하는 대화의 내용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이혼을 했든, 감옥엘 다녀왔든, 힘들었다는 그런 과정들로 인해서
그 사람의 지금이 인생을, 삶을, 하나님을, 사람을 아는 자가 됐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세상의 교육이 줄 수 없는 격이 있습니다.
그건 영적으로 먼저 느껴집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소재도 이야깃거리로 가능합니다.
단지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저급한 출발선이 스스로에게도 밟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고급한 자며 위선 떨 자가 아니라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 알자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에 저마다 큰 가시 하나쯤은 있는 법인데, 왜 내 것이 제일 크고 제일 무겁습니까?
그래서, 나만 아니면 되는 것입니까?
아무나 쉽고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 여깁니까?
도대체 그 기준들이 어디입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감히 길잡이도 자처합니다.
자기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으니 남 이야기들만 합니다.

내 안의 내 모습을 확인하면 그렇게 쉽게 남 이야기 못합니다.
내가 이 지경인데 무슨 말을 합니까?
모든 말이 행동이 돌아 내게로 화살되어 오는데, 그 아픔을 어찌 하려고요.
 
그래서, 자꾸 입을 닫게 되던데 왜들 그렇게 쉽습니까?
말들이 너무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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