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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9 08:33
   (14) 묵정밭(오래 묵혀 거칠어진 밭)을 갈아 엎으며
 글쓴이 : njsmyrna
    조회 : 6,409  




대학 시절 제가 자주 찾아 쉼을 얻던 곳은
관악 캠퍼스 안에 있는 학생 도서관의 한 구석이었습니다.
아마도 철학 논문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던 책꽂이들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좀처럼 찾는 이들이 없는 인기없는 책들 사이에서 간간이 쉼을 청하곤 했습니다.
조용할 뿐 아니라 금상첨화로 늘 따뜻한 햇볕이 드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잘난 노트 하나 빌릴 수 없는 치열함과
내 친구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이라는 몰상식한 그 경쟁 구도 속에서
가끔 도망치고 싶을 때 저는 그 곳을 찾아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잠깐이지만 그 속에 저의 몸을 숨겼지요.

"왜 인간들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왜 그 관계라는 것은 이렇게 치열함과 애씀과 고달픔과 적대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 '관계' 가 주는 압박감을 잠시 내려 놓으면 이렇게 편안한 것을
왜 나는 또 다시 저 속으로 들어가 제도가 만들어 놓은 전쟁을 타의에 의해 치러내야 하는가?
아니, 이제 그 전쟁은 자의(自意)화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해 봐도 해결책이나 돌파구는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이기고 또 이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세상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분을 인격과 오성 속에서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는 마치 제 마음이 '살바도르 달리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의 처절한 외침과 같은 그림에서
제가 좋아하는 샤갈의 연한 평화의 블루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제 삶 속에서는
더 이상 나의 고지를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하는 그런 치열한 전쟁은 없을 듯 싶었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는 따분한 철학 논문들이 꽂혀 있는 도서관 구석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한 삼 년 잘 왔네요.
교회가 개척되고 참으로 바쁘게 달려왔습니다.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높이 올라갈 곳도 없는 막장 같은 곳이 목회지 인 줄 알았습니다.
그저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저는 그 삼 년 동안 마치 갈멜산의 엘리야가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견해와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만나게 되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러 그들의 목을 쳐 버렸습니다.
그게 잘하는 일인 줄 알았으니까요.
저 자신의 성숙의 정도는 헤아리지 못한 채 너무 많은 자상을 입혀 버렸습니다.

비록 그게 옳은 주장이었고 올바른 교리의 사수였다 할지라도,
그렇게 달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 또 다시 볕이 잘 드는 도서관 구석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멜산의 엘리야로 이야기의 막을 내리지 않으시고
로뎀 나무 아래에서 '이제 나 혼자 남은 것 같으니 날 좀 죽여 달라' 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신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힘으로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달리다 보면
내 다리가 대견하고 나의 튼튼한 심장과 폐가 자랑스러워지게 마련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우리의 본래 자리를 확인케 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오직 나의 은혜로만 사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그 시간은 참으로 복됩니다.
내가 스스로 '나' 라는 멋진 우상에게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강력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바울 사도가 광주리를 타고 도망했던 과거를 늘 자랑삼아 늘어놓으며
'나의 약함이 곧 강함' 이라는 말을 했는지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약함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크게 드러날 때,
우리 성도는 비로소 강한 자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사람을 알면 알수록,
정말 하나님을 떠난 도덕적 피조물과 그들이 뿜어내는 역사와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새록새록 깨닫습니다.
무섭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게 험담일 대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담임목사라는 직책 때문에 아주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저는 치열한 전쟁을 감지합니다.
그게 삼 년이 되다보니 저에게 또 다시 그 전쟁을 피해 구석진 도피처를 찾게 했나 봅니다.

저는 제 마음 속의 도피처인 그 볕이 드는 도서관 한 구석에서
하나님의 심중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구원자가 팔요했던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내 아들의 몸에 나의 모든 분노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 처절한 고통의 절규가 너무나 가슴이 아파 내가 그 순간 귀를 막았었노라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건져 내시려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역사 속에서,
더욱 더 더럽고 잔인하고 불쾌하고 억지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이 세상의 다른 곳으로 나의 몸을 숨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그 곳도 죄가 잉태해 출산해 놓은 끈적끈적한 이물질과 함께 꿈틀거리는
에일리언의 새끼들과 같은 타락한 인류의 역사 한 가운데이니까요.

우리는 그 때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왜 '스승은 많아도 아비와 같은 스승이 없다' 는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비는 절대 자기 아이를 죽이기 위해 때리지 않습니다.
아비는 절대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지 않습니다.
비록 매를 들더라도 그 아비의 마음 속에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간 제게 꼭 필요했던 것이 바로 그 아비의 마음이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분노 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이해이고, 기다림인 것이었는데,
그게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제 설교의 방향이 어떠해야 함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멋진 주석 책을 읽는 듯 깔끔함도 좋지만,
그 속에 담겨야 하는 하나님의 심장의 울림이 더욱 더 중요한 게지요.
오랫동안 갈지 못했던 묵정밭(오래 묵혀 거칠어진 밭)을 갈아 엎어버린 듯 홀가분함이 있었습니다.

너무 바쁘다 보면, 깻잎이며, 오이며, 토마토며, 양파를 길러 먹는 소중한 텃밭을
잡초만 무성한 묵정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잠시 세상 일로 분주한 여러분의 손길을 머추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묵정밭을 갈아 보심이 어떠실런지요.
이제 갈아 엎은 묵정밭에서 튼실한 열매들을 맺으러 내려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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