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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책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본 설교는 2004년도 개척 첫해에 기초교리 공부 내용입니다
 
작성일 : 13-04-16 08:52
   35. 교회(3) -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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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njsmyrna
    조회 : 3,800  


(요18:36)
3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아무 걱정 없고 서로 서로 사랑하며 모든 것이 풍부한 그런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400년 전에 이미 플라톤은 그의 저서인 'The Republic'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 공산주의의 뿌리가 거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공산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꿨습니다.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해방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천명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이후 공산주의가 마치 프롤레타리아를 해방하여 지상 낙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로 공산주의는 세계의 젊은 피를 끓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백 여 년 간의 공산주의 운동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참 훌륭한 사상입니다. 모든 인간이 계급의 차별이 없이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을 꿈꾸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에 자기 것처럼 열심을 내는 법이 없습니다. 생산성은 당연히 줄어듭니다. 똑같이 나누는 가운데서도 남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지상낙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얼마나 불가능한가를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활동하는 복음성가 가수가 전화를 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주 친하게 지내던 선배인데 내년에 미국에서 대규모 기금 모금 콘서트를 기획하기 위해 LA에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더러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 즉 한국에다가 평화의 집이라는 것을 건립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화의 집을 지어 놓고 그 곳에서 콘서트도 하고 미술 전람회도 하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르쳐 밝은 사회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인간은 바르게 가르치고 옳게 계도를 하면 서로 사랑하며 이해해 주며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존재들일까요?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분명 교회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선행 해야죠.
그러나 그 구제나 선행은 복음전파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아울러 그런 행위들은 교회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가 구제나 선행이나 계도를 하면서 이 세상을 밝게 변화시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은 성경과는 많이 어긋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교회 자신을 위한 것이냐?
구제나 선행은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시간, 노동력 등등..
엄밀히 말하면 자기 것을 희생해서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가지고 남을 위해 희생하면서 예수님을 조금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고 목숨 걸고 긁어모으는 것들을 우리는 오히려 나누면서 “하나님 저는 이 땅의 가치라는 것에 눈 두고 살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의 가치들을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구제와 선행과 계도를 하면서 “왜 나에게는 진심 어린 긍휼이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절대 악한 세상은 인간의 선행과 구제와 교육과 계도를 통해 밝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전쟁도 아닙니다. 죄입니다.
what is our problem? 바로 죄란 말입니다. 그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리 환경이 좋아진다 해도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지 그들의 환경을 바꿔주어 여기서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나라로 옮기는 것이지 여기 이 땅에 장막을 짓는 것 아닙니다.
 
14세기 이후 유럽을 강타한 르네상스(문예부흥)를 아십니까?
18세기에 와서 꽃을 피웠지요. 세상 사람들을 교육하고 교훈하며 잘 가르치면 세상은 점점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세계의 지성은 ,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인간은 나아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 건빵을 만들어 먹고 이를 뽑아 단추를 만들고 하루에 천 명씩 꼬박꼬박 죽이고 집에 가서 슈만과 바하를 듣더란 것입니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던 사회로 세상이 바뀌어 가면서 뉴에이지 운동이 세계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범아일여(梵我一如)‘’우주와 나는 하나다‘라는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 뉴에이지 운동은 인류의 공통된 유익을 위해 모든 인종, 종교, 정부가 하나가 되어 통합되는 새 시대를 꿈꾸는 운동입니다. 말이 뉴에이지이지 사실 뉴에이지는 불교나 힌두교 그리고 동양철학의 복사판인 것입니다. 그들의 역사관은 순환적 역사관입니다. 역사는 순환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윤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커다란 신의 한 부분이며 물질이나 현상도 파도가 잠시 형태를 가지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라 주장합니다. 여러분 혹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어떻게 끝이 납니까? 사람이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범아일여’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뼈 가루가 산과 강과 바다에 뿌려지면서 산 자가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그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세 시간 반 동안 감독은 바로 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존 레논 이라는 비틀즈 멤버가 Imagine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면서 뉴에이지를 전도했지요?
Imagine there's no heaven...
No hell below us, Imagine there's no country,  Imagine  no possesions,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그의 노래를 전 세계가 애창을 했습니다. 저도 열린 음악회에 나가서 이 노래를 부른 적 있습니다만. 우리가 손에 손을 잡고 선을 행하며 용서를 행하며 나누어주고 사랑을 만들어 가면 세상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되며 하나가 될까요?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더러워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사랑은 점점 식어 가고 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자기만을 사랑합니다. 남을 위한 배려를 할 수 없는 not able not to sin의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하비 콕스는 현대를 가리켜 익명의 시대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방해받기 싫어하며 다른 이들에게 관심 갖는 것도 싫어하고 혼자만의 생활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모임은 점점 홀대를 받고 인터넷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익명이 보장되는 사이버 세계가 현실 세계를 대치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 나, 나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만을 위하는 존재이며 스스로 사랑을 할 수도 없으며 평화를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양보하고 이해하며 지상낙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임을 스스로가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교회들 중에서도 그러한 지상낙원을 추구하고 약속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오늘 본문에서처럼 메시아 왕국,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천명을 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 이루어질 천년왕국을 기다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떵떵거리며 번영을 누리며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속한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교회가 믿는 바는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으며 영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 그 하늘 왕국은 이미 영적으로 완성이 되었고 곧 가시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천년왕국은 예수님께서 초림 하셨을 때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지 먼 훗날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가까이 왔다”는 말 “엥기조”는 완료 동사라 했지요? 천국, 즉 하나님 나라가 너희들 가까이 이미 와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12장28절에 보면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깁시다.
 
이미 진동치 못할 나라를 우리가 받았다고 과거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의 그 찬란한 새 하늘과 새 땅이 기록되어 있는 21장 22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그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은 그 완성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계시록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나라는 이미 영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영적으로는 완성되었고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가시적으로 우리 눈앞에 내려 올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크는 “밖으로” 라는 접두사라고 했지요? 그럼 세상 밖으로 건져내어진 자들이 교회인데 어디로 건져내어진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것입니다.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왕국의 천년은 상징적이며 영적인 것이지 언젠가 이 역사에 다가올 시간은 아닌 것입니다. 계시록의 천년 왕국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지금 그 천년 왕국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 하시고 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을 우리가 교회시대라고 하는데 그 기간을 천년왕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신학 용어로 무 천년설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생긴 교회 자체가 천년 왕국의 시작이며 그것은 영적인 것이지 이 땅의 것으로 나타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땅에서의 천년 왕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 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 왕국이 이 땅에 실제적으로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천년 왕국에 대한 학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본 무 천 년 설과 전 천년설과 후 천년설 이렇게 세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무 천년설은 우리가 지금 살펴 본대로 천년이라는 것은 영적이며 상징적인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이 땅에서의 천년동안의 기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 천년설은 천년 왕국 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하여 전 천년설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 교회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가 끝날 무렵 이 땅에 7년 대 환난이 온다고 합니다. 교회들과 유대인들 믿지 않는 자들 모두 그 환난 기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7년 대 환난을 통과한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예수님과 성도들이 천년동안 이 땅을 다스리는 천년 왕국이 시작됩니다. 그 천년 왕국에는 여전히 죄와 사망이 있습니다. 타락하는 자들이 생깁니다. 천년이 끝나게 될 때 사탄이 반역하는 나라들을 모아서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멸하시고 불신자들이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사탄과 어둠의 세력들, 불신자들은 영원히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이 전 천년설입니다. 그러나 그 학설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 지상 적인 천년 왕국에 영화롭게 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내려와 죄와 죽음이 있는 곳에서 공존한다는 것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스리는 곳에서 죄와 사망과 반역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역사적 전 천년설이라 합니다.
 
그리고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다른 한 부류는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의 주장은 거의 이단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많은 한국 교회가 이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100년밖에 안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한국 교회들이 바른 교리를 정립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을 때 스코필드 박사의 스코필드 주석이 한국에 들어오고 세대주의가 급속히 퍼졌습니다. 게다가 어네스트 앵글리라는 사람이 “휴거”라는 책을 써서 전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습니다. 그 책이 바로 세대주의적 해석으로 성경을 풀어 소설화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고등부까지 읽어야 하는 필독 도서였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렇지만 교계에 많은 오해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세대주의 자들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별개의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들에게는 구약이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스라엘과 교회 두 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원의 방법을 달리 정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구약의 언약의 성취를 도모하셨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했기 때문에 , 유대인들로 만드시려 했던 왕국은 잠깐 보류하시고 교회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하7장에 나오는 다윗언약을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려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거부하는 바람에 잠깐 보류하시고 교회를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육적 이스라엘 왕국은 이 땅에 세워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교회시대가 끝나고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을 하십니다. 교회들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 시에 모두 휴거를 합니다. 그리고 7년간 혼인잔치를 하고 지상에서는 7년간 대 환난이 있다고 믿습니다. 7년 대 환난 기간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맹위를 떨치고 7년 대 환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남은 자 144.000 명이 구원을 받고 그들의 활약으로 허다한 무리가 구원을 받게 되며 그 환난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게 잘 해준 사람들을 양이라 하고 그들을 핍박한 사람들을 염소라 한다고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심판을 해석합니다. 7년 대 환난이 끝날 즈음 땅의 왕들과 짐승들의 군대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항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려오셔서 그 원수들을 멸하시고 아마겟돈 전쟁을 종결하십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7년 환난동안 순교한 신자들이 천국에서 다시 내려와서 천년 동안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국이 회복되며 구약의 이사야나 예레미야 서 같은 선지 서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집니다. 천년 왕국이 끝날 즈음에 사탄이 잠깐 옥에서 풀려 나와 천년 왕국에 사는 사람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키지만 예수께서 이제 영원히 그들을 불 못에 던져 넣으시고 영원한 천국이 온다는 것이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우리 교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들을 통해서 올바른 성경 교리에 대해서 잘 배우셨으니까 들으시면서 말이 안 된다 하실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시나리오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바른 교리를 정립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 미혹되지 않습니다.
 
이 세대주의 전 천년설의 문제점은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에 여전히 범죄가 남아있고 예수님을 공격하는 자들이 생긴다는 것도 우습지만 이미 천국에 가있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이 땅에서 천년을 살다가 다시 올라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타락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대로 이스라엘과 교회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면 구약은 우리 교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책입니다. 오늘부터 구약 성경은 다 찢어 버릴까요?
성경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7년 대 환난이라는 기간을 잡은 것은 다니엘 서 9장의 내용에서 나온 것입니다.
 
(단9:24-27) 24    하나님께서 너의 백성과 거룩한 도성에 일흔  이레(또는 '주간')의 기한을 정하셨다. 이 기간이 지나가야,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또는 '가장 거룩한 것' 또는 '가장 거룩한 분'), 거룩하게 구별하실 것이다.
25    그러므로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또는 '명령')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또는 '메시아')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 거리와 성곽이 완성될 것이나, 이 기간은 괴로운 기간일 것이다.
26    예순두  이레가 지난 다음에,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되고, 아무도 그의 임무를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한 통치자의 군대가 침략해 들어와서, 성읍과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홍수에 침몰되듯 성읍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끝까지 계속되어, 성읍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27    침략하여 들어온 그 통치자는 뭇 백성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굳은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이레의 반이 지날 때에, 그 통치자는 희생제사와 예물드리는 일을 금할 것이다. 그 대신에 성전의 가장 높은 곳에 흉측한 우상을 세울 것인데, 그것을 거기에 세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끝 날을 맞이할 때까지, 그것이 거기에 서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의 종말,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오는 시기를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칠십 이레가 가면 이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 왕 때 성전을 재건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성전이 재건 될 때까지가 일곱이레요 기름 부은 왕이 오실 때까지가 62이레입니다. 그럼 7더하기 62하면 얼마입니까? 69이레지요. 그럼 세상의 종말까지 얼마나 남은 것입니까? 한 이레 남았습니다. “이레”라는 것은 뭐지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의 그 이레입니다. 7이라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이것을 7년으로 잡아서 다리오 왕 원년서부터 70이레 즉 490년 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490년이 지난 지 오래입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남은 한 이레 7년을 뒤로 뺀 것입니다. 그래서 그 7년이 지나면 종말이 온다, 하나님 왕국이 임한다 해서 7년 대 환난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7년 대 환난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대 환난의 시기는 있지요. 바로 지금이 그 대 환난의 시기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경이 말씀하고 계신 대 환난의 시대를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힘이든지 아시겠어요?
 
그럼 지금 이 다니엘서의 이야기는 무슨 뜻이냐? 27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마지막 한 이레 7이 남았지요?
그런데 그 한 이레의 절반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제사와 예물이 금지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성전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제사와 예물을 갖다 바치던 성전이 언제 파괴됩니까? AD70년 로마의 타이터스에 의해 성전이 파괴됩니다. 이제 그 때부터 종말까지 몇 이레가 남았습니까? 반 이레가 남았지요? 반 이레는 얼마입니까? 3과 2분의1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를 우리는 교회시대, 은혜의 시대, 삼년 반, 한때 두 때 반 때, 1260일, 42개월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이나 묵시문학에 자주 나오는 숫자들이지요? 그 숫자들이 바로 우리 교회시대, 그리고 개인 적으로는 교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7년 대 환난이 언제 올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지금 그 대 환난의 시기를 잘 견디고 있은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고난을 안 당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후 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제 세 번째 설로 넘어가는 겁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고난도 없고 실패도 없이 점점 승승장구하여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이 땅에 오게 되어 자연스럽게 천년 왕국으로 이어질 것이며 천년동안 세상 모든 민족이 모두 복음화가 되어 그야말로 지상천국이 이루어 질 것이며 그 천년 왕국이 끝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난이나 핍박에 관한 내용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AD70년 이전에 다 이루어진 것이고 교회에는 이제 고난이나 핍박은 없으며 우리는 북진, 서진 , 동진, 남진하여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교대회 같은 데 가면 이런 구호 많이 들 듣지 않으십니까? 나가서 승리하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분명 우리는 승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의 그런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인 것입니다. 사탄이 결박되었고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구석에 있든지 구원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 번도 실패 한 적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숨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내지 못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 승리인 것입니다. 영적인 승리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게 되고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그런 승리가 아니라 영적인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의 모습은 이 땅에서 벌거벗고 십자가에 매달리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모습으로 보이는 승리입니다. 톱으로 켜이며 온 몸의 피를 모두 쏟아내는 모습의 승리입니다. 그러한 죽음이 하늘에 계신 영광의 왕의 대관식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우리의 고난의 모습은 영적인 승리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벧전2:21) 바로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능력으로 병이 나아야 한다고요?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이름으로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요?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능력으로 출세를 해야 한다고요?
성경 어디에 그런 구절이 있습니까? 우리는 분명 승리하지만 가시적으로 볼 때는 우리는 매일 매일 지는 모습으로 가는 것입니다.
 
(계13:5~7) 5    그 짐승은, 큰소리를 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고,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6    그 짐승은 입을 열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니, 하나님의 이름과 거처와 하늘에 사는 이들을 모독하였습니다.
7    그 짐승은 성도들과 싸워서 이길 것을 허락받고, 또 모든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짐승이 마흔 두 달 동안 성도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지는 모습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군데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계11:1-12)  1    나는 지팡이와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에 이런 말씀이 내게 들려왔습니다. "일어서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라.
2    그러나 그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거룩한 도시를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3    나는 내 두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4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요, 촛대 두 개입니다.
5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아비소스('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무슨 말씀이 생각나십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들처럼 미말에 두셨다고 하지요? 우리는 세상에서 이렇게 죽는 모습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8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곧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습으로 우리는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뭡니까? 배반당하고 오해받고 고난 받고 죽는 것입니다. 

9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 두 예언자의 시체를 볼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10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 시체를 놓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이 두 예언자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삶이 세상에게는 고문이었다는 말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생명의 기운이(또는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가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는 큰소리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내게로')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우리는 총 칼을 동원하여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출세하여 떵떵거리며 “봤지? 예수 믿으면 이렇게 잘 살게 된다.” 이런 모습으로 싸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우리는 순교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왜 계시록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 순교자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 예수 믿으면 죽인다.” 그래서 죽는 것은 차라리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가족에게 미움을 받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그 복음을 붙들고 가슴으로 울면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내 가족의 기분을 이렇게 까지 상하게 하면서 내가 꼭 그렇게 유별나게 굴어야 하나? 나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지 뭐, 지금은 가족들 기분 맞춰 주자” 그건 효도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며 우정도 아닌 자기 도피입니다. 지금 당장 편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 때문에 순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끝까지이기는 자는‘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리라,
둘째 사망의 해를 당치 아니하리라,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꼭 이겨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반드시 천국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꼭 이기게 될 것이란 것을 확증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길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계12:5-6)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패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바로 그런 승리입니다. 우리 힘으로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이 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광복의 소망이 없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 어려움을 감수했겠습니까? “너희들은 아무리해도 일본의 손에서 놓여날 수 없어, 그러니까 애초에 포기해” 누군가가 그런 정답을 미리 알려 줬다면 무슨 기운이 나서 싸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소망을 가진 것입니다. 광복은 반드시 온다. 해방의 날은 반드시 온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이까짓 추위, 배고픔 , 조금만 참자. 그렇게 견뎌 낸 것입니다.
 
조두남 선생이 만주 목단강 부근에서 살고 계셨을 때입니다. 하루는 기골이 장대한 독립군 청년이 말을 타고 선생님을 찾아왔더랍니다. 그리고는 두루 마리를 하나 내밀었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지은 대한 독립군가 가사였습니다. 그는 조두남 선생에게 정중하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독립군가를 좀 만들어 주십시오. 며칠 내로 다시 오겠습니다. 중요한 전투가 있어서 저는 그 곳에 다녀와야 합니다.
 
조두남 선생이 독립군가를 다 만들어 놓고 그 독립군 청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전투에서 전사를 했거나 감옥에 투옥이 되었을 것입니다. 조두남 선생이 그 청년 독립군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만든 노래가 바로 선구자입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 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도 그렇게 목숨 걸었던 우리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승리했다고 너희들은 절대지지 않는다고 싸움의 결과까지 명확하게 보여 주신 싸움에 어찌 우리가 이렇게 나약하게 주저앉아 계십니까? 일어서세요, 타협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가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한 것이라면 예수님은 그렇게 죽으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뽑아들고 마징가 제트가 되셔서 로마 군인들을 다 때려죽이고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 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보여주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 자체인 것입니다. 그 교회들이 왜 이 땅에 그렇게 연연하며 살고 계십니까? 저 영광스러운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잔치 준비를 끝내놓고 보좌 우편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응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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