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17 (회원 0)  

Home >  칼럼/책 >  칼 럼
 
작성일 : 18-04-05 21:59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트랙백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1,91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소카 왕 이전, 그러니까 BC 3세기경에 기록된 수타니파다 의 4품속에 들어 있는 시,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의 시경(詩經) 중에 들어 있는 시가 한 편 있는데 그 시에서 후렴구처럼 등장하는 말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입니다. 한 20여 년 전쯤 작가 공지영이 수타니파타의 그 후렴구를 인용하여 페미니즘의 전도사 자격으로 쓴 소설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지요.
대학시절 불경에 심취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그 시에 눈이 멎어 오랜 시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화두로 들고 다니며 고민을 했던 기억...
그러던 어느 날 고대 앞 토굴 막걸리 집에서 이면수 구이 하나를 썩음썩음한 함석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글을 쓰는 친구들과 모여 앉아서 수타니파타를 돌려 가면서 읽었습니다. 물론 강남의 큰 교회 대학부 회장이었던 저의 제안이었습니다.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온갖 경건한 행사를 다 마친 후, 막걸리 집으로 향하여 수타니파타를 읽는 아이러니...
특별히 우리 무리를 사랑해 주셨던 주인집 할머니의 권하는 잔에 얼근히 취한 홍안의 청년들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를 외치면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근사하게 불러제끼던 그 시절의 치기가 생각나 이 새벽에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그 몇 년 후 공지영의 소설이 나오고, 우리가 선술집에서 나누던 이야기를 그 속에서 찾게 되었을 때의 그 반가움...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략...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나티파타 4품은 그야말로 인간 도덕과 윤리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정선된 시편입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시절, 저에게 있어 수타니파타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성경과 비교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인간들의 선한 삶에 대한 권고가 오히려 쉬운 문체로 기록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혼돈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난 뒤, 저는 십자가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우리는 절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성도는 절대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로의 편입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구원을 받는 순간 개인의 인생을 차압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즉시 ‘교회’의 삶을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다른 몸으로 탄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 사이에서 격발이 되는 동질성의 호감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릅니다.
그러한 동질성의 호감 아래에서 진짜 내 형제, 진짜 내 가족의 신변에 아픈 일이 생기면 내가 아픕니다. 그런데 그 일이 내 힘으로는 어떻게 위로를 할 수조차 없는 그런 일일 때, 그냥 망연자실해 집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 앉아서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휴가 첫날, 저는 제가 특별히 사랑하는 우리 천국 가족의 신변에 큰 아픔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 새벽, 하나님 앞에 앉아서 넋두리처럼 뇌까렸지요. ‘하나님, 그러지 마시지...’
그리고는 이내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정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 형제의 아픔도 그러한 경험 중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픔 속에서, 그 눈물 속에서,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 또 무언가를 배우게 되겠지요. 그래서 조용히, 그러나 간절하게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힘 내...’
우리 아이들이 2주간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어제 오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SAT다 뭐다 해서, 학원엘 다니고, 과외를 하고 한다는데 자기들은 2주간 열심히 놀다 왔으니 불안할 법도 하지요. '지금은 방학이야, 방학에는 쉬는 거야, 남은 일주일도 열심히 놀아'하고 안심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괜한 조바심에 너무 빨리 달리느라 그렇게 다 병이 들어 버린 것 아닌가요?
 
할아버지는 매번 아이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날부터 한국 여행을 시키십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 그 아이들에게 우의를 입히고 독도를 데리고 가신 분이니까요.
이번에도 한국의 시골 마을들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왔습니다. 뼈까지 시릴 정도로 추웠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추위였을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지요.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 아이들 입에서 그러한 여행의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순간 참 기뻤습니다. SAT 학원 백번 가는 것보다 할아버지와의 좋은 여행이 백 배, 천배 그들의 인생살이에 유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생스러웠지만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는, 그립고 그립다는, 우리 아이들의 고백이 마치 인생살이를 다 마치고 하나님 나라 입성을 할 때의 우리의 고백 같아 보여 푸근했습니다.
창 밖으로 상을 볼 때 우리는 물리학과 광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창의 마모도나 빛의 궤적에 따라 우리는 각기 다른 상을 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 그 창을 통하여 사건과 현실을 볼 때 우리는 각기 다르게 그 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 눈과 마음의 창을 잘 닦아주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통하여 겪에 되는 수많은 고난과 아픔일겝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는 하나님께서 합력되어 선이 될 그런 경험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우리는 성도이므로, 먼 훗날 우리에게 그러한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의중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내세요.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을 위해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며, 우리의 지체들이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만 겪는 고난 아니고, 나만 겪는 아픔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다 그 길을 갑니다.
그러니까 힘내서 그냥 삽시다. 그냥 살아 있으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서로를 위해 그렇게 걱정해 주며, 기도해 주며, 안타까운 마음에 잠도 설쳐가며 그렇게 살아있읍시다.
힘내세요.

2011.01.05



 
   
 

모임소개  |  로그인 
Copyright ⓒ 2023 뉴저지 교회 NJ Church, All rights reserved. Comment to nj.smyrna@gmail.com (T)201-658-3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