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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10 06:23
   로마서 9강, 끝부분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30,159  


2010/12/5
제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일년 전부터 일년 전에 수요예배를 마치고 식당에 앉아서 저희 교회 장로님들에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직도 똑똑히 기억을 하는데, 앞으로 얼마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내가 설교를 할텐데 아마 많이들 혼란스러워 할겁니다. ? 여태까지 우리 교회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던 교회였기 때문에그러나 설교자로서 어느 정도 목적한 바가 성취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대반전이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잘 지켜봐 주십시요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대 반전이 뭐냐 말입니까? 지난 일년간 다소 과격하다 싶을만치 인본주의적 성화론에 대해서 메스로 도려내는 설교를 했습니다. 많이들 아프셨을 겁니다. 아프라고 한거예요, 할 수만 있으면 더 잔인하게 하고 싶었어요. 근데 인간성이 잔인하지 못해서
그걸 장로님들이 일년 동안 묵묵히 봐 주었어요. 제 옆에서
 
제가 그런 결심을 했던 이유가 이러합니다. 초창기에 서머나 교회를 개척하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빠져있는 신비주의나 기복주의를 깨기 위해서, 여느 개혖주의 교회나 마찬가지로 말씀의 중요성과 성도의 삶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설교를 했어요. 신비주의 기복주의 그딴거 쫒아 다니지 말고 말씀에 전념하고 삶에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저희 교회는 정말 열심히 말씀을 공부했고 올바로 살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교회입니다.
근데 어느 시점에서 서머나 교회가 풍성한 말씀과 삶을 갖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얏잡아 보기도하고 경휼히 여기기도하며 무례하게 하기까지 시작했어요. 저부터 시작해서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성경을 열심히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서 있었고 착하게 살자고 떠벌리고 다니던 사람들이 편당을 가르고 하는 것을 봤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교회입니다. 그건 누구보다도 제가 더 잘 알아요.
그런데 그러한 노력과 열심이 우리 자신을 비워내고 겸손의 자리 티끌의 자리로 인도한 게 아니라 교만과 위선의 자리로 밀어 올리는 경향이 없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신비주의나 기복주의보다 더 위험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와 위상과 만족을 챙기기 위한 가짜 열심과 가짜 업적과 가짜 섬김과 가짜 착함을 쳐 내기로 작정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던 겁니다. 그동안 저는 성화론에 대해 목숨걸고 반대했던 이들의 책과 논문과 강의들을 정말 치열하게 탐독했고 듣고 읽고 쓰고 하면서 제 나름대로 가짜 성화를 부수는 외로운 싸움을 해왔어요. 그들의 주장이 옮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주장 속에서 개혁주의 성화론이 어떤 것이 허구이며 어떤 것이 깨어져 나가야 할 것인지를 배우기 위함이었어요
도대체 우리 교회의 성화론이 무엇이 잘못 되었기에 결과가 이렇게 밖에 안 나타나는가 그걸 배우기 위함이었어요그렇게 공부하면서 저는 그들의 오류가 무엇인지도 배웠고 알게 되었어요. 저에게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기독교를 좀 더 풍성하고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어요. 그리고 어떤 것이 허구이며 어떤 것이 깨져 나가야할 것인지 다 명료해 졌어요. 저는 바로 우리 교회에서 그런 것들을 깨 버리고 싶었던 거에요.
인간이 쌓은 성화를 부수는 작업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라는 것도 저는 잘 알아요. 그러나 그게 깨져 나간다는 건 그게 하나님이 주신게 아니다 라는 증거거든요. 그건 반드시 아파도 깨져야 되요. 많은 분들이 그동안 설교를 들으시면서 그동안 제가 한 일들이 제 의 쌓기였군요. 그동안 수 없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성공입니다. 그러면 인제 아무 것도 안해도 되겠네??
아니요 지금부터 입니다. 그런데 내 삶 속에 껍대기로 덕지덕지 쌓아놓은 게 깨졌으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열심을 부리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진짜 열심을 부리자는 것입니다. 내 위선과 내 가치와 교회의 가치와 영광을 챙기기 위한 그런 쑈 연극 이런거 말고,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진짜 예수의 생명으로 열심을 부리자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러분 왜 목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대답을 줘야한다 라고 생각 하십니까? 목사는 예수만 전하면 돼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친히 가르치십니다. 왜 목사가 이렇게 살라고 하면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라고 하면 저렇게 살고, 목사가 지옥 가라고 하면 갈겁니까? 목사들이 설교자들이 말씀이 일을하게 하라는 그 영역까지 침범하면 안되요. 이렇게 사세요 저렇게 사세요, 이건 하세요 저건 하지 마세요아니요, 그냥 목사는 성경에 있는 예수만 소개하면 돼요. 삶은 여러분이 일대일로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 내야 되는 거에요.
제가 놀란건 그러한 가운데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삶을 단속하며 성도다운 삶을 견지하며 선한 일에 힘을 쓰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눈물 뿌리며 기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더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마음대로 사세요 라고 걸림돌을 던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요동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고민을 던져 버리지 않았고, 바르게 살자고 하는 열심과 하나님 백성 다움으로의 고뇌를 놓지않는 걸 보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건 목사가 이렇게 사십시요, 혹은 이렇게 사시면 않됩니다, 적용의 부분에서 그 어떤 걸림돌을 던질지라도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끌려가는 이들에게는 조금도 요동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확실이 알아요. 그게 바로 옛 자아를 죽여가시는 하나님의 열심 진짜 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열심있는 삶을 허락하시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세요. 아니 제가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잖아요? 저도 설교 시간을 통해서 어차피 티끌인 인간에게 무슨 인권이 있나,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정말 사람들을 볼 때 쓰레기로 봤겠습니까? 예수님이 바리세인들에게 이 독사의 새끼들아, 했지만 그들이 있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려셨단 말입니다.
원론적으로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쓰레기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쓰레기로 판정하고, 니들은 아무렇게나 막살아도 돼 이럴수 없다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설교를 하였어도 저는 지금 이십 오년째 한국에 있는 마흔 두명의 고아를 먹여 살립니다. 우리 교회에서 목회 활동비로 주는거 전부 거기다 다 보냅니다. 책이 한권씩 나올때 마다 한국에 있는 신학생들에게 나눠 주느라고 육백만원씩 빚을 집니다.
제가 은혜를 설교하면서 하나님이 다 하시겠죠, 라고 하면서 그걸 그냥 그만 두어야 됩니까? 그게 옳아요? 그런데 가짜들은, 마음대로 사세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 완료하신다, 하면요그래 이제 만고 땡이로구나 이리로 간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차피 구별이에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시키는 구별.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말씀 공부를 했고 최선을 다해서 선하게 살려고 노력도 해봤고! 우리의 삶에 이런 것들이 다 연극이었고 쑈였구나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내년이 서머나 교회가 7주년인데 칠년째 되는 그 시점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이제 뭐가 내 의로 쌓이는 가짜 열심인지 어떤 것이 허구인지 이제 알았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막 살려고 해 봤더니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도 알았으니까, 이제 진짜 하나님이 우리의 속에서 격발시키는 그 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다시 뛰자 말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안에 교만으로 자기 의로 자랑으로 쌓이지 않을 수 있는, 진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격발된 수고인 것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정말 단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런 무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그래서 우리 안에 능력을 부으시고 새 생명을 부으시고 그 새 생명의 가자는 길을 막고 있는 옛 사람을 아버지께서 폭격하고 계신데, 우리는 그것을 고난으로 감지하면서, 하나님 그 일 제발 그만둬 달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하나님 이제 어떤 열심이 진짜 열심이며 어떤 것이 가짜인지 이제 우리 제대로 알았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진짜 열심을, 그 열심 속에서 죄가 주는 상심과 아픔과 고통 그런 것을 벗어나서 하나님에 의해 끌려가는 이의 행복과 기쁨을  맛 볼 수 있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차석봉 집사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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