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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05 16:46
   이삭 번제 사건의 의미
 글쓴이 : admin
    조회 : 32,909  


그러니까 진리가 이루어지면 죽음이에요 그것이.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이게 죽음이란 단어에요. 
그리고 죽으시는 거예요. 
무트, 다 이루었다. 진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죽으시는 거란 말에요. 
그런데 그게 곧 사는 거예요. 그래서 부활하시는 거예요. 
그게 영생이란 말에요. 사는 거예요 그것이...
 
그래서 바로 다음 장인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 이어지는 거예요. 
아들을 죽이는 거예요. 아들 안에서 아브라함이 죽는게 복음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보고 통곡할 게 아니라 아, 거기서 그분은 반드시 죽어야 되는 거구나. 
아니, 내가 끌고 가서 죽여야 되는 거구나. (무슨 말인지 조금 있으면 이해하실 거예요.) 
그걸 아셔야지, 나와 상관없는 어떤 이가 죽은 그걸 보고 슬퍼하는 게 아니란 말에요.
 
자 여러분, 아브라함은 이제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그 언약 성취의 조력자로 나서려했던 
자신의 모든 열심을 다 내려놔요. 
그 전까지는 하나님이 약속의 후손을 주신다고 했던 그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해, 
그러기 위해서는 씨를 가진 자기가 살아야 되니까 
마누라까지 팔아 먹고 정말 파렴치한 모습, 이런 걸 보이면서, 그거 하나님 도우려고 한 거예요.
사람이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데 이제는 이 아들이 죽으면 언약의 후손, 약속의 후손이 없어져 버리잖아요. 
그러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어떻게 많아지냐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를 죽인다고 하는 건 이건 내가 도울 일이 아니구나... 
바로 전 장에서, 아, 그런 은혜로 완료되는구나 를 알자. 
그 약속의 후손을 죽이는 거예요. 서슴없이.
 
내가 섬기던 예수가 나와 함께 죽고 내가 그 안에서 살아나는 거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여전히 예배당에 와서 예수를 섬김의 대상으로만 놓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종교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그들은 반드시 역사 속 나가 내어놓아야 하는 행위에 묶일 수밖에 없어요.

예수가 내 밖의 섬김의 대상으로 존재하면 그들은 그 행위에 묶일 수밖에 없다니까요. 
내가 섬김의 대상에게 뭔가를 내놓아야 돼요. 그걸 섬김이라고 하잖아요. 
율법으로 오신 예수, 죄인의 대표로 오신 예수는 내가 죽여야 하는 존재지 
내가 섬기는 대상이 아니란 말에요. 

조금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잘 들어보세요.

(중략) 로마서 63강에서



admin 15-02-14 19:00
    
요 19:16-17/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친, 하나님의 행함/창세기22장// 요102강

< 요한복음 19장 16-17절 >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17.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대하 3:1>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창 22:2-3>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13-14>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 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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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아들과의 언약에 의해서 아들의 배를 십자가에서 가르시기로 했어요.
그래야!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 갈비뼈를 끊어내야! 교회, 여자, 하와가 창조되기 때문에.
아들의 배를 갈라야 돼요. 번제입니다.
그것도 당신 앞에서는 죽은 흙에 불과한, 죄인들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대속제물로 죽이시려고 하는 거예요. 옆구리를 뚫어서 하나님의 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찌기' 준비를 하세요. 그게 하나님입니다.
아들의 목숨을 우리같은 쓰레기를 위해 '일찌기 일어나' 그 아들의 가슴에 칼을 꽂기위해 준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 말입니다, 여러분.

아들은 그 아비를 따라서 자신이 매달려 죽어야 할 나무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해골 곧 죽음의 땅으로 가요.
거기가 어딥니까? 이 땅이에요. 성육신, 인카네이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나무를 짊어진 모습은, 이 땅에서 연약한 순의 모습으로,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싫어 버린 바 된 모습으로,
가난하고 못생기고 힘이 없는 약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죠.
이 땅에 그렇게 내려오신 거예요. 죽은 고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결국 멸망할 이 세상에, 그 함축된 상징인 해-골, 여기가 죽은 땅이거든요.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부터 차단이 되어서 땅에 갇혀버린 상태가 땅 <지>, 갇힐 <옥>. <지옥>이에요, 여기가~.
여기 해골이란 말입니다. 골고다에요.

여기에 예수의 십자가가 꽝! 꽂힌 거예요.
거기서 죽어야 할, 이 세상들의  해골들을 대신해서, 당신이 해골과 같은 죽음을 맞으시는 거예요.

아들은 아버지의 칼을 받는 그 십자가의 순간까지 그냥 묵묵히 아버지의 명령을 쫓아간 거예요.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에게 단 한 마디도 반항을 하지않은 것입니다.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성경의 독자들에게.

그리고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할 이삭과,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할 아브라함을 대신해서
예수가 어린 양이 되어 죽고 그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게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리아산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창세기 22장의, 그 내용의 주인공이 누구예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요.

하나님의 행함!
"하나님의 내어주심과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행함이 창세기 22장에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강 녹취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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