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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10 19:12
   비포 vs. 애프터
 글쓴이 : admin
    조회 : 24,899  


만약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이 있다면 정말 그런분은 대단한 분입니다.
저는 존경하는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불행히도 지극히 남의 눈을 의식하는 스타일의 남자였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팔순을 훌쩍 넘으셨어도 절대 허술한 모습으로 집밖을 나가지 않으십니다. 동네슈퍼를 가시거나 
심지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아파트단지를 나가실 때에도 부분가발 제대로 붙이시고 연지곤지 바르신 후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맞는 의상을 갖추신후 나가십니다. 물론 조금 멀리 나가거나 누군가와의 약속으로 나가실 
때에는 언뜻 거들인지 갑옷인지 하여간 무섭게 생긴 속옷을 갖춰 입으신후 나가십니다. 그리곤 나가시면서 아버
님에게 꼭 물어보신후 나가십니다. 물론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한 설명까지 꼭 덧붙이십니다. 
"여보~나 이뻐? 내가 나좋아서 이러는게 아니여.....다 당신 체면 세워줄려고 그러는거지....
이젠 나도 다 늙어서 구차나 죽겄어~그래도 어떡해, 그게 안되는걸........"


지금 이러시니 젊으셨을땐 오죽하셨겠습니까. 저희 어머님은 분명히 천국에 돌아가실때도 우아하게 입가에 웃음
지으며 가실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런 어머님의 영향인지 저도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생각을 좀 많이 하
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년에는 간지 좀 흘리고 다녔죠. 그런데 요즘들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어떤때는 군
고구마 장사같다는 얘기도 듣고 어떤때는 세수 좀 하고 다니라는 얘기도 듣습니다. 정말 많이 변한거죠. 그래서인
지 요즘은 길을 걷고 있을때 혹시 누군가가 저를 부를일이 있을 때면 꼭 아저씨~하고 부르더군요. 쳇~ 
전에는 가끔 총각~하고 불러주시는 분도 계셨는데 말이죠. 기왕이면 오빠~하고 불러주면 좋을텐데 시간이 갈수록 
아저씨로 통일입니다. 그런데 몇일전에는 길을 가는데 어떤 젊은분이 "저...아버님~" 하고 부르는게 아닙니까.....
저놈이 누굴 부르나 하고 둘러봤는데 저뿐이 없는겁니다. 가서 한대 확 쥐어패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틀린말이 
아니라 참았습니다.ㅠㅠ


지난주에는 동네에 웬 족발집이 오픈을 했더랬습니다.
족발은 역시 성수족발(김성수목사님과 아무 상관없는 절대우연임)인데 그래도 새로 오픈한 집이니까 맛이 어떨까
하고 보쌈과 족발을 세트로 대짜루다가 왕창 샀습니다. 그래서 제비새끼마냥 목빼고 기다리고 있을 부양가족들 먹
이려고 양손에 가득 들고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마침 1층에서 이십몇층에 사시는 낯선 할머니와 함께 
였습니다. 엘리베이터 특유의 민망한 적막감 속에� 할머니가 저와 제손에 들려있는 보쌈과 족발 꾸러미를 찬찬히 
보시더니 한마디 하시는 겁니다. 
"아따..냄새 좋다..족발인가 보네...그래 어디 족발에서 배달하는거유....?"
아뜨...이런 퐝당시츄에이션....족발배달? ㅠㅠ 그랬구나...난 그렇게 보이는거였구나ㅠㅠ 어흑어흑....
그런데 할머니의 입맛다시는 얼굴이 재미있어서 장난끼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죠.
"하하핫~저희는 서머나족발이라구요....."
"엥? 서...뭔족발? 첨 들어보네...광고지 같은거 있으면 하나 줘봐요...나중에 시켜먹게...."
"하하핫~...할머니...실은 저 35층 사는 주민입니다...농담한겁니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마치 큰죄를 지은 죄인마냥 할머니는 죄송하다는 말을 쏟아내시며 내리셨습니다.
죄송하긴요 뭘....그렇게 생긴놈이 잘못이죠. 하긴 큰죄를 지으신건 맞지요. 마음은 청춘인 한젊은이, 아니 한 아저
씨, 아니 한아버님의 가슴을 후벼 파셨으니 말입니다. 오래 사실겁니다. 속으로 욕했거든요..... 
그랬구나...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그런데 족발배달이 뭐 어때서...하하핫~ 웃으며 집에 들어갔지만 족발과 보
쌈은 이미 제입맛에는 병맛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거울만 하염없이 바라볼뿐..................ㅠㅠ

 


인도의 영화산업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엄청난 자본과 특이한 문화가 깃들여져 나름 새로운 색깔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는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할
리우드와는 또 다른맛이 있다며 '발리우드'라 부르면서 차별화합니다. 그런데 그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가난한 작은
나라 방글라데시의 영화도 참 매력적이라고 하더군요. 다카가 수도인 방글라데시의 영화들은 '달리우드'라고 부릅
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전 달리우드의 영화 한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좀 심심한듯하기는 하지만 나름 연출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외려 인도영화보다 덜 오버하는듯한 영화분위기는 몰입하기가 더 
좋더군요. 세계곳곳의 영화제에서 나름 인정을 받으며 많은 상을 타게 된 방글라데시 영화 '텔레비전'입니다.
저는 잔잔한듯 참 좋았습니다. 어쩌면 큰기대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자극적인 삶에 지친 그런 날 보시기엔 
참 좋을 그런 힐링무비입니다.


영화는 현지신문에 실린 각종사진에 누군가가 하얀종이를 잘라붙여 사진이 보이지 않게 하는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게 뭐하는짓인가 했더니 방글라데시의 아주 작은마을의 신앙심이 좋은 촌장님 '아민'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
입니다. 촌장님은 '생명이 없는 이미지는 우상'이라는 이슬람의 율법(?)에 푹 빠지신 행정과 종교의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문의 사진위에 종이를 덧대어 글씨만 보게 만듭니다. 또한 핸드폰과 컴퓨터 그리고 텔레비전을 금
지합니다. 시대배경이 옛날이 아니라 최근인것으로 볼 때 방글라데시는 참 어른말을 잘 듣는 선한 나라임을 알게 
됩니다. 역시 가난하지만 제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인 방글라데시 답습니다. 그렇게 몇번의 작은소동이 일어나
지만 결국은 촌장님의 힘으로 제압됩니다. 그런 소동 가운데 촌장님과 젊은이들의 대화가 너무 웃깁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안타깝다는듯 촌장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텔레비전을 보면 내가 지옥에 가냐~ 너희들이 지옥에 가냐~?"
"촌장님....그런데....코란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는 말은 없자나요?"
"그야 그때는 텔레비전이 없었으니까 그렇치~!!!"
이런 코믹한 대화가 오가지만 얼마나 진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웃기기도 합니다.


그런 어느날 마을에 사는 이름도 특이한 '바부'라는 과외선생(?)이 바보상자인 티비를 자전거에 싣고 마을로 들어
오다 촌장님과 마주칩니다. 촌장님은 엄한 표정으로 우리마을은 텔레비전은 금지인걸 모르냐며 일갈합니다.
그때 바부선생이 지지않고 한마디합니다.
"전 힌두교인인데염~" 촌장님이 할말을 잃어버립니다.ㅋㅋ
결국 바부선생때문에 마을에 소동이 벌어집니다. 온마을 어린이들이 모두 바부선생에게 가서 공부를 하게 된거죠. 
이유는 과외공부를 하는 틈틈이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이들을 다 빼앗겨버린 이슬람선생들
이 촌장님을 찾아가 자기들도 티비를 들여놓게 해달라고 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꼬이면서 재미있어 집니다. 그리고 
그중심에는 촌장님의 아들이 자리하게 되어 갈등은 고조됩니다. 잔잔하게 웃긴 이영화에서 저는 '모즈누'라는 인
물이 그렇게 웃기더군요. 어쩜 그렇게 귀엽던지요. 촌장의 아들 '솔라이만'의 직원이면서 솔라이만의 연인인 '코이
누르'를 짝사랑하는 인물인데 하여간 이사람 때문에 즐겁게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촌장님이 평생 꿈꾸던 성지순례를 떠나십니다. 머나먼 타국 사우디의 메카를 향해서 말이죠.
그런데 문제에 봉착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사우디 메카로 가기 위해서는 여권을 만들어야 되는데 여권을 발급받
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는 이미지인 사진을 거부하는 촌장님이 성지순례를 위해서 
율법을 어기는것에 대하여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사실 이것이 정통 이슬람의 율법에 어긋나는 것인지 아니면 촌장
님의 독단적인 보수적 해석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촌장님은 고민끝에 결국 사진을 찍고 메카로 떠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고민끝에 시골에서 수도 다카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행사가이드가 중간에서 여행경비를 먹고 튀어 버린겁니다. 다카의 호텔에서 망연자실하여 앉아있는 촌장님이 
얼마나 안스러운지 모릅니다. 평생의 꿈이었던 성지순례를 못하게 되자 식음을 전폐하고 알라에게 뜻을 묻습니다. 
성지순례를 하고자 했던 자신에게 왜 이런일이 닥쳤는지 촌장님은 너무도 궁금합니다. 그렇게 낙망의 시간을 보내
던 어느날 호텔 텔레비전에서 메카의 성지순례행사를 생중계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망설이던 촌장님은 결국 자신
의 호텔방에 있는 티비를 켜고 눈물을 흘리며 영상속으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그리곤 눈물 흘리며 기도를 드립니다.
"알라여...저도 성지에 왔나이다...상상의 말을 타고 당신께 왔나이다......"
그곳이 메카이든 다카이든 촌장님은 자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생명이 없는 이미지의 대표 텔레비전속의 성지를 바라
보며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문득 무슬림의 눈으로 본 텔레비전이라는 영화는 어떤느낌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아주 보수적인 무슬림의 눈에는 아민촌장에게 닥치는 도전과 이슬람 젊은이들의 새로운 것들을 향한 변신이 
당연 못마땅하게 보이겠지만 일반적인 무슬림의 눈에는 그러려니 하는 것들로 받아 들여질런지 아니면 그들의 눈
에도 타락해가는 변질된 이슬람정신으로 비춰질지 은근히 궁금합니다. 문명을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젊은 이슬람의 
변신은 과연 어쩔수 없는 변화일까요 아니면 단지 타락일뿐인것일까요...확인할 방법은 물론 없습니다만 이런 영화
가 이슬람국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때 결국 어쩔수 없는 흐름으로 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영화를 통하여 '포용'을 얘기하고 싶었다는 것으로 볼 때 더욱 확실해집니다.


그런 얘기가 있죠. 깊은 산속을 헤메이다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만나게 된다면 무엇이 제일 무서울까? 하는 
이야기말입니다. 호랑이가 제일 무서울거 같기도 하고 귀신이 제일 무서울거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제일 무서울 것이라는 얘기 말입니다. 그런데 약간 다르게 얘기해서 오랜만에 혼자 기차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 내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으면 제일 무서울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어쩌면 쉬지않고 떠들어대는 수
다쟁이 아줌마일 수도 있겠고 혹은 술냄새에 담배냄새까지 풀풀 풍기는 늙다리 아저씨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
하는 제일 무서울 옆자리 승객은 저를 전도해보겠다고 달려드는 '기독교인'일것 같습니다. 
그것도 우리와 좀 많이 다른 기독교인이라면....생각만해도 덜덜덜....입니다
개인적으로 김성수목사님을 통하여 복음을 알아가는 과정속에서 저에게 자리잡은 아주 안좋은 습성이 하나 생겼는
데 그건 함부로 다른 기독교인들을 판단하려고 하는 잘못입니다. 오래전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함부로 재단하며 
정죄하는 습성이 있었다면 요즘은 같은 기독교인과 교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못된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잘못된 길을 걸어왔던 스스로에 대한 경계와 조심스러움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제대
로 알고 있고 나는 확실히 맞는 길을 걷고 있는데 너희들은 어떤가 한번 보자 하는 식의 교만의 산물인듯 합니다. 
그래서 요즘 다른 교회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런 친구나 친척 혹은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분들의 얘기가 웬지 잘못된 것 같아서 한두마디 바른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혀가 딸려서 말은 안나오고 그렇다고 
무작정 너희는 틀리다고 꽥꽥거릴 수도 없으니 마음은 답답하고 힘들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말도 안되는 논리로 어
긋난 신앙의 길을 걷는것이 명명백백해 보이는데도 외려 제가 잘못된 것인양 몰리기라도 하면 더욱 더 다른 기독교
인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잘못 알고 있었고 잘못 믿고 있었다고 큰일날뻔하지 않았냐고 반갑게 인사하는 우리 서머나교회의 성
도들 대부분도 비포VS애프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포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너무 창피하고 죄스럽고 민
망해서 고개를 들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 복음을 전해보겠다고 오랜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오랜친구에게 어느날 전화를 걸어서 그랬습니다.  
"내가 너한테 이십년도 넘는 동안 얘기했던 예수에 대한 얘기들 있자나....그거 다 잊어줄래? 다 헛소리였어......"
그렇게 황당한, 찢어버리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성형전 사진속의 모습같은 우리의 비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그런 우리에게 이제 더이상의 애프터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걸까요? 
조금씩 새로운것에 적응해 나가고 받아들이며 은근슬쩍 조금씩 변해가는 아민촌장의 모습이 저에겐 이제 나오지

않을까요?.....잘 모르겠습니다. 점점 주님안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뭘까요? 주님안에서 바르게 크다보면 세파

에 흔들리지도 않고 무소의 뿔 어쩌구 저쩌구 하듯이 곧바르게 살아나갈 수 있는 걸까요? 그러다보면 세상이 보여

주는 웃지못할 우스꽝스러운 그림이나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박박 우겨대는 결말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의연해질 수 있는걸까요? 훗날 지금의 저를 바라보며 그때 정말 큰일 날뻔했다며 다시 또 새로운 애프터의

모습을 갖는 날이 오는건 아닐까요? 지금 저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지고 이미 다 들었고 여전히 잘 듣고 있

노라고 얼마전 비포의 나처럼 너스레를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정말 종교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도 나도 하나씩 큰맘먹고 장만하는 핸드백 마냥 멋스럽게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그런 종교를 소유한 종교인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의 노력과 깨달음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비포앤 애프터의 모습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외려 어설프게나마 알면 알아 갈수록 점점 더 겉멋을 부리고 있었을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가 쳐놓은 덫에 걸려 스스로 힘들어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어떤분들처럼 강같은 평화도

없고 샘솟는 기쁨도 없었습니다. 그저 보이는 것에 흔들리고 들리는 것에 휘청거릴뿐입니다. 그리고는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어쩔려구 그러니.....너 정말 어쩔려구 그러니....
슬픈 역설입니다만 우리가 애쓰고 마음먹어서 비포애프터의 차이를 가져올 수 없기에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

을 구해야 하는것인가 봅니다. 복음을 알았노라고 하면서도 마찬가지인걸 보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비포 그리고 애프터.....그건 성형외과 광고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우리에게도 비포앤 애프터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과 후, 그리고 김성수목사님을 만나기 전과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뭐가 달라졌고 뭐가 나아졌는지....

에혀....개뿔.......


여러분은 어떠세요?
김성수목사님을 통한 말씀을 듣고 많이 달라지셨나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젠 강같은 평화와 샘솟는 기쁨만이 가득하십니까?
아쉽게도 저의 비포와 애프터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김성수목사님을 만난 이후의 모습은 표면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봤을때 개선되었다기 보다는 그나마 개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고 이해가 됩니다.
결국 나는 이런 존재이고 그렇기에 주님의 은혜만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뿐입니다.
시간이 흐르거나 혹은 우리의 열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애프터가 달라질것이라는 착각은 이제 그만 해야겠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아무리 저의 공력이 쌓인다해도 저는 아마 지나가는 사람의 호칭한마디에 가슴에서 불이 나
고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 한줄기에 한숨을 내쉬며 살아갈 것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부부싸움하면서 저를 몰아붙일때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이러면 안되지~김성수 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쳐줬어~?!?" 
헉...이런....치사하게.....
그럼 제가 그럽니다.
"그래~ 너나 잘하세요~! 그러셨다 왜~!!!"
하여간 나아지는게 없어요.....ㅠㅠ

예나 지금이나.......




이연숙 14-12-10 20:19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차석봉 14-12-12 19:20
    
제가 요즈음 똑 같 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정호 14-12-20 12:57
    
거진 비슷한 경험이었어요..
말이표현됄까, 의미가 흐려진다서 하지만,
소통의 필요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혁 15-04-23 04:07
    
그러네요,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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