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20 (회원 0)  

Home >  나눔터 >  퍼온 글들

 
작성일 : 13-10-31 13:46
   주여! 저는 불의한 청지기만도 못한 자네요~(눅16:1-9)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4,662  


< 서울 노요한님의 글입니다 >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저에게도 오랫 동안 난해한 비유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씀이었지요

그러나 김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이해의 빛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비유는 마지막날 주님 앞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인본주의와 은혜를 극명하게 대조하는 

역설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유를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풀려 한다면 역시 난해 비유로 남을수 밖에요

불의한 청지기가 행한 일이 불의한데 어떻게 주인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역시 우리는 그 사람의 행한 일에서 의와 불의를 찾아내는 데 익숙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인간의 행함이 마지막날에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비유는 여전히 

풀리지 않겠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이 바로 이 비유를 바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불의한 청지기의 행한 일이 아니라 그의 깨달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간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으며 주님의 칭찬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존재라는 사실을그가  

알았다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처음자리를 알게하시는 말씀의 계시 바로 은혜 아닐까요?

여기서부터 진짜 이 비유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불의를 인정하는 만큼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긍휼을 입을 수 있는(탕감받을 수 있는) 분량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어떤 사람들은 알게 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마지막날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근거 하나는 무엇일까요?

어설픈 성화주의 인본주의 율법주의로 근사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변화 받았다는 근거로 무엇인가를 내 놓아야 

한다는 뜨거운 열심이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나요

이들의 종국을 마태복음 7장은 잘 말해주고 있죠? (거절)

 

우리는 그날에 예수 잘 믿고 말씀대로 순종한 충실한 청지기로가 아니라, 주님의 의를 축내는 불의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이 비유의 포인트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 같이 심히 자격 없는 우리들 이치에 따르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면목없이 주님앞에 서게 될 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주님은 이들의 지혜를 칭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지혜입니까?

우리의 형편으로는 빌어먹을 수 밖에 없고 땅을 팔 수도 없다는 자인식, 즉 성화주의 인본주의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되는 것 이것이 진짜 지혜 아닐까요?

즉 인간의 처음자리, 없음의 자리, 죄만 내 놓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 인간들이 헌신하고 노력하여 주님 사랑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더욱 주님의 탕감을 받아야만 심판을 면할수 

밖에 없는 자들,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입지 않으면 존재도 아닌 자들이라는 자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당당함은 집안의 탕자를 만들수 있으며, 내가 스스로 의인이 되었다는 과신은 현대판 

사두개인 바리새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의는 하나님 앞에 눈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는 돌아온 탕자는 자신 안에 의가 없음을 

체험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저를 아들이라 칭하지 말고 종으로 봐 주세요 했던 탕자의 

자세가 진정 불의한 청지기의 자세가 아닐까요

인간의 태생적인 한계 즉 존재 근거를 바로 본 자들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렇게 되니 끝날까지 주 예수가 이들에겐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아니면 살수 없음을 날마다 고백하는 현실을 살게되는 것이죠

 

이를 불의한 청지기의 후일을 대처한 처신의 달인으로 칭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런 면에서 세상 사람들을 

본 받아야 한다고 이 비유를 해석한다면 이는 지나친 넌센스이겠죠~

우리가 이대로 시대의 사고방식에 갖혀 살면 결국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자

자신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오직 은혜를 붙잡게 되는 자기부인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세대의 아들들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버림받고 무능하고 무력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세상을 

승승장구 빛의 아들들처럼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보다 자기 세대에서는 더 지혜있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해야 하는 진짜 복음은 사람들의 가능성을 고취시키며 할 수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세상을 

강하고 담대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반대로 당신들은 빈털털이요,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여 주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주님께 빚진자로서 탕감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들임을

폭로하는 것이 진짜 복음이겠죠!

 

그러나 저는 아직도 성도로서의 나의 위신, 나의 위상, 그리고 나의 자존심만을 먼저 챙기려하는....

주여! 저는 분명 불의한 청지기만도 못한 자 맞네요.




 
   
 

모임소개  |  로그인 
Copyright ⓒ 2023 뉴저지 교회 NJ Church, All rights reserved. Comment to nj.smyrna@gmail.com (T)201-658-3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