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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3 14:56
   사사기의 기드온 이야기 요약 - 사사기 20강 초반부
 글쓴이 : admin
    조회 : 7,936  


이 기드온에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이 되었습니까?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세상 권력 앞에서 초라하게 밀을 까고 있던 기드온의 모습으로 시작이 되요. 그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서도 자신의 연약한 현실을 근거로 해서 순종을 하지 못하는 선악과 따먹은 아담 군상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줘요. ‘눈에 보이는 힘이 없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만 믿고 일을 진행하느냐?‘라는 불신앙의 모습이였잖아요.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날 무슨 일을 시킬라고 그러세요?’ 그런거란 말입니다. 마치 눈에 보이는 힘이 있으면 자기는 뭔가 할 수 있다라는 그런 교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죠. 그게 굉장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불신이라니까요. 하나님은 그러한 기드온에게 모든 일이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시작이 되고, 하나님의 힘에 의해 시작이 되고 추진이 되며 결론이 맺어진다라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주세요, 여러번. 그리고 실제 전투의 현장 속에서도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두 손과 두 발을 다 묶어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확실하게 경험케 해주시죠. 무기를 들어야 할 손에 항아리를 들림으로 말미암아 싸움은 니들 힘으로 싸우는거 아니야를 경험케 해주신 거라 말입니다. 작대기라도 들어야 싸울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작대기를 들어야 할 손에 항아리를 들려줬다니까요. 그걸로 뭘 하냐구요, 도대체가 전쟁터에서? 근데도 이겼다니까요. 어떻게 이겼어요? 그 뒤에서 밀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긴 거란 말입니다.  기드온이 그걸 경험한 거예요. 눈에 보이는 힘이 진짜 힘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이 모든 걸 주관하시고 경륜하신다라는 것을 말로, 사건으로, 표적으로 열심히 보여주셨던 거예요.

그런데 전쟁 후에 기드온은 또 다시 보이는 힘을 추구하는 추태를 보입니다. 다 보고도, 경험하고도. 광야의 이스라엘과 똑같애요. 기적을 경험하고 뒤돌아서면 또 원점으로 돌아가고, 기적도 일으켜 주면은 금방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듯 했다가 고거 사라지면 또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러죠.  

기드온이 전쟁 후에 아내를 많이 얻고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서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 해요.  에봇은 제사장의 옷이라 그랬죠. 그걸 만들어서 자기가 거하는 성에 놨다라는 건 자기가 왕이 되는데에 자기가 제사장으로서 기여를 하겠다라는 의지였단 말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으로 지었죠, 이 아이의 아버지가 왕이다. 내가 왕이다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신명기 19장에서 이스라엘의 왕에게 하나님이 갖지 말라는 걸 다 가진 거예요, 이 사람이. 솔로몬도 그랬죠. 솔로몬도 하나님이 갖지 말라는 거 다 가졌어요. 아내 갖지 말라 그랬더니 천 명 이상 둬, 말 많이 갖지 말라 그랬더니 애굽에서 수입해, 금 많이 갖지 말라 그랬더니 온 이스라엘을 다 금으로 도배를 해서 그때는 길에 채이는게 은이였다잖아요. 인간들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육적 욕망의 집요함이며 추악함이 기드온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절대  기드온을 영웅을 만드시면 안되요. 여러분, 그러한 기드온의 욕망의 산물이 아비멜렉이죠.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아버지의 세상 왕에 대한 욕망을 구체화 시켜 보여주는 역할을 해요. 그게 인제 사사기 9장이에요. 기드온이 이런 사람이었다를 이 기드온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비멜렉이 삶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기드온이 죽은 뒤에, 그게 사사기 9장이란 말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영웅 기드온이 죽자 금방 바알과 바알브릿에게로 돌아서요. 그들이 기드온과 기드온의 전쟁 뒤에서 일을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은혜를 조금이라도 감지를 했다면 기드온이 죽었다고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배신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그건 그들이 하나님을 요만큼도 마음에 안두고 살았다라는 증거에요.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거죠. 그게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취급하지 않는 죄인들의 모습이었던 거고 성경은 그들을 그들이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더라라고 표기를 하죠. 왕이 없는 자들, 사사기는 하나님을 왕 삼아 살지 않고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왕 삼아 사는 죄인들의 이야기며 그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전쟁 이야기인 거예요.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이 기드온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패역한 이스라엘 안에 자중지란을 일으키세요. 세상 왕의 자리를 추구하고 열망하던 기드온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비멜렉이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역시 왕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추악한 계략을 꾸밉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분신인 거고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대표라고 그랬죠. 지난 몇 편에 설교에서 제가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렇죠.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대표에요. 기드온이 죽자 바로 눈에 보이는 우상에게 달려갔던 그 이스라엘이 바로 기드온 안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처럼의 그 욕망을 보여준 그림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이나 이스라엘이나 똑같은 존재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드온이 죽자마자 고 기드온의 행사를 똑같이 이스라엘이 해버리는 거예요. 금방 우상을 찾아가는 거예요. 우상 섬김이라는 것은 나의 왕됨의 추구죠. 나의 용사됨의 추구, 하나님처럼 되겠다라는 우리의 그 용사됨의 추구가 바로 우상섬김이잖아요.  그게 기드온의 행사였고 그게 이스라엘의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금방 바알브릿에게로 돌아서는 거예요.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게 아니라 자기를, 나를 도와주는 어떤 힘을 섬긴 것일 뿐이에요. 오늘날 교회가 안 그렇습니까? 똑같잖아요. 무슨 하나님을 섬깁니까? 자기의 소원 들어주고, 병 고쳐주고, 자기의 문제나 해결해 주는 그런 힘을 원하는 거지.

그런데 그 이스라엘은 무엇을 기능적으로 보여주는 모형이었습니까? 성도. 그러니까 기드온, 이스라엘, 아비멜렉, 다 누구 얘기에요? 내 얘기란 말입니다, 내 얘기. ‘이런 나쁜 놈들그러면 안 되요. 내 얘기라니까요, 그게. 기드온의 이야기는 이렇게 일관성 있게 인간 속의 악마성을 고발하고 있고 그걸 부수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중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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