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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28 08:51
   이집트 "사자의 서" (예수님의 비유 13중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24,456  


저는 어떤지 한번 물어봐 주세요. ㅎㅎ 저는 그런 이야기들 접할때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사실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다 실현이 되고 있다는 것을 더욱 더 확실하게 붙들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여러분 왜 사람들이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수시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줄 아세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기독교를 떠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굉장히 많아요. 심지어 불경과 노자의 도덕경 같은 걸 읽으면서 ‘어? 성경에 기록된 게 여기 굉장히 많네,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다 그냥 그게 그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떠난 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왜 그렇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수시로 흔들리는가? 사람들이 기독교 복음의 총론을 공부 하기 전에 너무 앞서서 성경의 각론으로 들어가서 실천 신학의 범주에 머물러 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을 좇아서 인간답게 깨끗하게 착하게 사는 것이다라는 기독교에 대한 일천한 이해가 그렇게 수시로 의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성경은 그런 도덕적 공리나 윤리적 교훈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말이에요. 그들이 흔히 쓰는 단어가 역사적 예수라는 단어인데...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고 자아숭배에 빠져있는 자들과는 절대 하나님 나라를 공유할 수 없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가치만을 챙기고 자기 만족만을 챙기는 데에 여념이 없는 자들은 자신들이 철저한 죄인이며, 하나님께서 언제 지옥에 보내도 아무 할 말 없는 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수시로 유사 메시아를 보냅니다. 그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돈이라는 메시아를 보내기도 하고, 명예라는 메시아를 보내기도 하고, 자식이라는 메시아를 보내시기도 하세요. 인간들은 그러한 가짜 메시아에 목숨을 걸어요, 아니라고 하면서도... 애초에 하나님의 영광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이들은 죄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사망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으며, 지옥에 대해서도 무관심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조금 전에 제가 말씀 드린 ‘사자의 서’ 같은 글을 읽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분명 호러스라는 신에 관한 이집트의 신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와 닮은 점이 많이 있어요. 그러나 그 호러스는 죽은 자를 살리고, 물 위를 걷고, 병자를 낳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지만 인간의 죄를 속하는 힘이 없어요. 유일하게 그것만 못 해요. 다른 건 다 똑같아요.

돈이라는 메시아도 기적을 일으킵니다. 인간은 돈으로 사랑도 사고요, 인기도 사고, 병도 고쳐요. 저는 축구선수, 야구선수들이 그렇게 미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 참 세상은 돈을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않아요? 돈이면 사랑도 삽니다. 질병도 고쳐요. 그런데 돈이라는 메시아에게는 죄를 속하는 힘이 없어요.


그러한 유사 메시아의 등장은 모두 다 하나님의 생명나무 가리기의 일환으로 보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부러 보내보시는 거예요. 예수님 오시기 전에, 1,300년 전에 하나님이시니까 예수의 삶을 그대로 본 것과 같은 글을 쓰게 만들어 버리시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보는 가짜들에게 ‘얘들아 봐. 1,300년 전에 예수와 똑같은 존재가 이렇게 있었대. 예수가 가짜 아니겠니? 뭐하러 예수 믿어? 떠나.’ 귀를 막아버리시는 거예요. 어차피 가짜들에게...

그런 유사 메시아의 등장은 전부 하나님 백성 갈라내기 작업인 거예요. 그래서 불경에도, 노자의 도덕경에도 성경과 흡사한 것들이 많이 등장하는 거예요. ‘비슷한 메시아들이 이렇게 많은데, 세상아 너희들은 어떻게 진짜 메시아를 붙들 수 있겠느냐?’ 왜? 죄에 대하여 관심 없는 자들은 ‘이거 뭐야? 다 똑같잖아? 노자나 불교나 호러스나 이집트의 신화나 다 똑같잖아? 에이 이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네.’

왜? 죄의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의 핵심 총론인 죄의 문제의 해결, 그리고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과의 화목, 그리고 그것을 이루게 하는 십자가와 피 보혈, 거기에 관심 없는 자들은 100% 다 넘어져요. 유사 메시아에게 100% 다 넘어집니다. 저는 호러스가 아니라 호러스 할애비가 와도, 아무리 예수와 더 똑같은 삶을 산 호러스 할애비가 와도 저는 안 속아요. 그들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없습니다. 기독교 핵심은 그거에요. 여러분

그런데 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고 그냥 그 예수를 본받아 착하게 선하게 깨끗하게 살면 된다.  이게 기독교란 말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을 롤 모델로 삼아 살아야 되요? 기독교인이? 그리고 그거 아니다라고 이야기한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죽인다고 얘기를 해야 됩니까? 기독교 인이? 이렇게 무식해요, 오늘날 기독교는요. 너무 몰라요. 궁금해 하지도 않아요. 그냥 대충 보험료 납입하러 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나와주고, 안 나오면 재수없을까 봐. 여러분 그게 예수 믿는 겁니까?


이 타락한 인간 세상의 유일한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가 신이 되고 싶다고 하는 죄의 문제에요. 인간들의 죄의 문제.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로 덮어서 당신과 연합된 자들을 새롭게 창조해 내시는 방법으로 메시아를 내려 보내신 거예요.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그거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오직 예수만 메시아일 수 있어요. 그분이 행한 선한 행위나, 병자의 치유나, 죽은 자를 살린 일이나, 물 위를 걸은 그런 기적들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다 전 인류가 빠지게 되어 있는 사망이라는 무서운 저주의 작은 증상들이에요. 그것들을 해결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내가 바로 생과 사와 우주를 주관하는 진짜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주인 확인 작업에 불과한 거예요. 그거 하러 예수님이 오셨다면 그냥 다 고쳐주고 가야지 왜 몇 명만 고쳐주고 가냐구요? 그냥 늘 물 위를 걸어다니시지 배는 왜 타고 다니세요? 그게 본질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의 신인 호러스에 관한 기사를 읽으셨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거예요. ‘자 여기 두 종류의 메시아가 있다.  둘 다 기적을 일으켰고, 둘 다 죽은 자를 살렸고, 둘 다 십자가를 졌다. 그런데 한 쪽은 너희들의 죄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간 거고, 한 쪽은 너희들의 영생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고 갔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똑같은 메시아다.

그러나 메시아라는 존재는 기적이나 일으키고, 죽은 자나 살리고, 물 위나 걷는 자가 아니라, 너희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영생을 허락하기 위해 너희들에게 보내어진 존재다. 너희들이 정말 너희들이 처한 죄의 문제를 처절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아무리 비슷한 모습을 하고 온 존재라 할지라도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러한 행위를 했는지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넌 지금 호러스와 예수 사이에서 어떤게 진짜인가 고민하고 있니? 그렇다면 너는 아직 기독교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를 물으시는 거 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 땅에 걸림돌을 던지세요. 진짜 자기 백성들을 가려내시기 위함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처음 자리를 올바로 인식한 자들이고, 그 처음자리에서 하늘 왕 노릇을 하는 자리로 값없이 옮겨진 자신들의 그 신분을 자각한 자들이며, 그 처음 자리와 하늘의 자리 사이에,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열심이 은혜의 선물로 오롯하게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을 아는 자들인 거예요. 그걸 성도라고 그래요.

그들은 아무리 비슷한 메시아, 아무리 매력적인 메시아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절대 십자가의 피가 빠진 메시아에 빠지지 않아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흉내낼 수 있는 존재가 없어요. 아무리 훌륭한 유사 메시아라 할지라도. 그래서 나머지는 다 가짜인 거예요.

 

이렇게 복음의 핵심은 착한 일, 선한 일, 열심있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예수 십자가, 피, 은혜에요. 그것이 우리를 덮칠 때 우리 측에서는 자기 부인, 옛 사람의 죽음, 새 사람으로의 부활이 격발되는 거예요. 쉬운 말로 ‘나’라는 자의 권세 앞에 하나님을 복종시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앞에 나라는 자가 죽은 핏덩이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하는 복음의 현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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