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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07 05:49
   마태복음 6장 요약 (산상수훈 49강)
 글쓴이 : admin
    조회 : 23,714  


자, 주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그 열이라는 율법을 넷으로 설명해주시죠? 넷으로 설명해주신 뒤에 그것을 사랑, 아가페로 결론 지으셨습니다. 그 아가페의 사랑이란, 열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로 진리로 깨달아서 먼저 그 안에 담긴 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알고 그 하나를 이웃들에게 전해주어서 그 하나이신 생명, 그 하나는 하나님이니까요, 그 생명을 마음에 담게 하는 그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성취가 되고 완성이 되는 거죠?
그 하나님이라는 분을 우리는 잘 모르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잘 모르는 분을 어떻게 또 사랑하고 그렇습니까? 그냥 막연한 우리의 그냥 희망사항인 거죠. 근데 그것을 하나님은 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이웃에게 흘려줄 때 아, 네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구나, 라고 이렇게 여겨주신다는 거죠. 

자, 그 사랑을 전해줄 때 주의 해야할 것을 쭉 나열해준 게 6장의 말씀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6장의 첫 단어가 프로세코 주의하라, 로 시작되는 거라 그랬어요. 프로세코.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항상 첫 단어가 제이 중요한 거라 그랬죠? 무엇을 주의하라 그러셨죠? 6장 이제 복습하는 거예요.
구제할 때 조심하라 그랬습니다. 첫 번째, 그죠? 엘레모수네, 구제할 때 왼편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오른편의 것으로 구제하라. 그러니까 비 진리, 율법이 아닌 진리로 구제하라 라는 그런 말이라 그랬죠? 뭐 오른 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런 말 아닙니다. 
그리고 은밀한, 내적인 것으로 구제를 하라, 하셨습니다. 감추어져 있는 내용으로 구제를 하라는 거죠. 

그 구제라는 단어 엘레모수네가 그 엘레오스에서 온 단어죠? 거기에 ‘수네’ 가 되면은 그 엘레오스가 내 마음에 들어와서 이제 내 마음이 되면 ‘수네’ 라고 한다! 그랬죠? 디카이오스, 의를 그 의가 내 안에 들어오면 디카이오 수네가 되는 것처럼. 엘레모수네는 그 엘레오스가 내 안에 들어와 내 마음이 되었을 때 그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근데 엘레오스가 뭐냐면 그 하나님의 적극적인 긍휼이나 자비에요. 사전을 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엘레오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긍휼과 자비. 그것을 올바로 깨달아 마음으로 가지면 엘레모수네가 되는 거죠? 아, 그 하나님의 긍휼, 그 하나님의 자비, 그렇지! 그것이지! 하고 그걸 내가 내 마음에 가져요. 그리고 그걸 전해주면 그걸 구제라 그래요. 다른 게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그 긍휼과 자비를 올바로 깨달아 안 사람이 그것을 정직하고 올바르게 똑바로 전해줄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구제라는 거죠. 진정한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거잖아요? 그죠?
꿈속에서, 주일날 살펴본 것처럼 꿈속에서 아무리 먹을 거 줘봐야 깨면 그 배고픔이 해결이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아무리 먹을 거 많이 만들어 줘봐야 다 헛 거라는 거죠. 
그러니까 교회는 촛불 들고 나가서 무슨 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옮겨달라, 그건 뭐 개인적으로 하세요. 근데 교회가 그런 일에 앞장서는 건 아니에요. 뭐 정규직으로 돌려봐야 꿈속에서 밥 몇 숟가락 더 먹게 해주는 거죠. 교회는 그런 거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구제하는 거예요. 진짜 엘레오스를 전해주어서 그것으로 배불리게, 그 푸토코스의 사람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 결핍이 있는 자 그걸 아는 그들이 진짜 그 양식으로 배를 불리는 거. 그것이 구제인 거죠.

두 번째로 이제 기도의 문제였습니다. 구제할 때 조심해, 프로세코, 그러더니 이제 프로슈코마이, 기도할 때 조심해! 이런단 말에요. 아, 기도라는 건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안 사람이, 그 하늘의 뜻대로 그 아버지를 이제 마음으로 가져서 그래서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로 시작되는 거죠, 기도가? 마음으로 가져서 그 아버지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서 생명의 존재가 되어서, 그걸 이제 내 안에 양식으로 가지면 그건 영원한 생명이니까 그 사람을 생명 있다!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생명의 존재가 되어서 그 아버지의 뜻이 옳습니다. 이게 진짜 양식이네요 하고 고백하고 또 그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이웃들에게 이렇게 흘려주는 행위, 저들에게도 이러한 이해, 이러한 깨달음, 이러한 사랑의 이해가 깨달아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또 그 사랑이 바로 이런 겁니다, 라고 흘려주면 그 전체를 기도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용서가 일어나는 거죠?

따라서 그 기도라는 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것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고 성전 안 골방으로 들어 가서, 골방은 성전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재료들과 기명들을 제조하는 곳이니까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이죠? 배울 수 있는 곳이죠. 겉으로만 봐서는 그게 뭔지 잘 모르니까, 그죠? 골방으로 들어가서 그 성전이 담고 있는 내용, 그리고 그 안에서 행하는 그 많은 행위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배워서 그것으로 기도를 해야 되는 거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라! 라고 얘기한 거죠?

중언부언하면 안 된다. 바톨로게오. 정확하지 않은 말로 더듬더듬하지 말아라, 이런 말이죠? 로고스, 바톨로게오. 중언부언, 한 말 또하고 한 말 또하고 그런 거 하지 말라는 말 아니라 그랬습니다. 중언부언하면 안 되고. 그리고 그러한 올바른 기도는 이제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라고 이제 강조해주시죠? 
그래서 주기도문 안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너희들이 사람의 과실을 용서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용서받지 못해, 이런 말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 거죠? 그 말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괘씸해서 우리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용서의 의미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면 내가 그 용서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죠.

세 번째가 금식의 문제였습니다. 금식이란 꼭 먹어야 할 것을 먹음으로, 꼭 먹어야 할 것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율법의 양식을 먹지 않을 수 있는 진리 이해의 문제를 다루는 게 금식이잖아요? 내용으로 하는 게. 주님은 올바른 금식을 하기 위해서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랬습니다. 머리 감고 직고 바르고 뭐 얼굴을 깨끗이 씻으란 말이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기름 바른다는 건 뭐에요? 장사지내는 거죠. 그 예수, 육적 예수를 장사지내고... 
얼굴을 씻는 게 뭐죠? 프로소폰, 파님, 프로소폰은 항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것이 나타나는 것을 프로소폰이라 그래요. 그래서 대부분 얼굴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뭐 나쁘지 않은 번역이죠? 얼굴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 꼴이라는 말에서 나온 거니까. 그죠? 얼은 영이고 꼴은 모형이에요, 모양이에요. 그죠? 얼 꼴. 
그렇게 이제 예수를 장례 지내고 얼굴을 딱 씻어서 말씀의 표피를 잘 닦아서 그 안의 내용을 보게 되면 아, 무엇이 먹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이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구나! 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랬죠? 그래서 그 이웃에게 양식을 그 올바른 양식을 엘레모수네 구제로 이렇게 넘겨줄 때 올바른 양식으로 넘겨줄 수 있는 거죠? 진짜 올바른 금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고 네 번째가 하늘의 보물과 땅의 보물의 문제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올바로 깨달아서 먼저 하늘들이 되고 그 안에 그 말씀을 담아야 그게 이제 보물을 쌓는 거죠? 그 안에 말씀을 담아야, 진리로 담아야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가 되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근데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땅 적 차원으로 말씀을 이해해서 그 땅의 행위와 땅으로서의 그 아담들의 가치 자랑에 그 말씀을 사용해버리면 그러면 그게 땅에 보물을 쌓는 거라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늘에 보물로, 그 안에 담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로 하늘의 보물인 거고 그 말씀을 땅의 것으로 그 안에 담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땅의 배설물인 거라 그랬습니다. 자기는 보물이라고 우기지만 하나님은 그걸 배설물로 본다, 그랬습니다. 

율법의 상징인 그 바리새인의 그 ‘바리새’, 파리사이오스가 히브리어의 파라쉬를 그대로 음역한 거라 그랬죠? 그 파라쉬는 분열 하다, 나누다, 분배하다는 뜻이지만 모음만 바꿔서 페르쉬로 바꾸면 분비물, 배설물, 똥 이런 말이라 그랬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보기에는 배설물인 거예요. 그래서 바울도 내가 그렇게 바리새인으로서, 베냐민 지파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율법을 행한 건 배설물이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자기가 겸손 떤 게 아닙니다. 그게 진짜 배설물이라는 걸 자기가 알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전해주면 그게 올바른 구제가 되는 거고 그것이 바로 기도인 거고 그것이 바로 양식이 되는 거고 먹어야 할 올바른 양식이 되는 거고 보물이 되는 거지만, 그것을 표피적인 율법으로 전해버리면 엉뚱한 양식 배설물을 양식으로 나누어 주는 그런 무서운 일이 되는 거예요. 더럽고 추악한 짓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교회에서 배설물들을 나눠주고 있는 거예요. 그거 주면서 막 먹으라고. 근데 잘 먹어 또. ㅎㅎ. 맛있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하늘의 보물로 하늘의 양식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한번 보잔 말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눈이 성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눈이 성해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본 것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ㅡ 중  략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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