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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30 14:21
   산상수훈(팔복)을 다시 들으며(2)
 글쓴이 : njsmyrna
    조회 : 17,737  



<서울 노요한님의 글입니다..</span>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팔복을 전하면서 제자들에게 하늘의 복은 이 땅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오지 않을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의미에서 팔복의 말씀을 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긍휼히여기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것이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본자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긍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거겠지요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그런 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은혜가 막무가내로 위에서부터 부어져야 하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의 긍휼 속으로  함몰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인간은 원래 없음의 티끌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은 자인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지요.

마치 태양 속으로 모든 물체가 빨려 들어가듯이 나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없음으로 드러나고 나라는 자아는 완전히

해체되어 하나님의 은혜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하는 그런 연합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신 연합이잖아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는 존재도 아님을 삶 속에서 날마다 체휼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될 때가 많아요

다른 사람이 조그만 실수를 해도 우리는 내가 어떤 자리에서 용서 받았는가 를   생각하기 보다는 나한테 이럴수 있어 하며~

금방 심판자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 우리의 원래의 모습이에요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가입하지 않으면 자신들은 없음에 불과한 존재였음을 인식하고 수긍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긍휼을 받아야하는 이유이죠!

이렇게 긍휼을 입어본자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 긍휼이 부어지지 않으면 사람도 아닌 것으로 진정한 존재가 될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의 실수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남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정죄하고 심판할 수 없게 된다는 거에요

도리어 저들에게도 그 긍휼을 입을 수 있는 은혜를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수 있으며  이런 자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된다는 그런 의미 아닐까요?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것이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뵌 자는 그 심령이 청결하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지요

창결한 마음 거짓없는 믿음  사심없는 믿음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순수하고 청결한 우리 마음이라기 보다는

인본주위가 가미되지 않은 우리 믿음의 순수성 단순성 오직 은혜임을 설명하는 뜻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본(경험한)자는 오직 은혜의 신앙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의미가 되겠지요

 

욥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그는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의 노력과 의식으로 깨끗함에 도달 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에 오염된 거짓에 사로잡혀 하나님과도 맞짱뜨려는 오만함을 볼 수 있었잖아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라고 보시면 정확한 표현일겁니다.

참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들이 마치 무화가잎 처럼 치렁 치렁 두른 인본주의 율법주의 성화론의 신학이겠죠

그러나 하나님을 진짜로 본(체험) 후에는 자신 안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의 가증함을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짜로 본(호라오)자는 자신의 가능성과 주체성을 포기할 수 밖에 없으며 두손 들고 오직 예수가

우리를 존재되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인정하게 되며 오직 은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신앙을 갖게 된다는 그런 말씀이죠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것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하나 같이 화평케하는 자로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지요

이는 우리에게 언제나 세상에서 평화의 사도로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겠죠

우리의 육신의 삶이 하나님께 차압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

우리에게 일이 잘 풀려서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며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하면 우리는 거꾸로 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그래서 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지금 내 의지와 자율성까지 우리를 죽이시기 위하여 차압했다 하시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가 화평케하는 자로 살기는 커녕 자기 마음 하나도 추스리지 못하고 매일 요동치는 삶을

살게되지 않을까요? 화평케하며 사는 것이 가당할까요?

언제나 주님은 우리의 육적 자아를 부정케하기 위하여 우리를 핍박의 현장 고난의 현장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현장으로

추격하여 몰아 붙이시는데 이런 속에서 정녕 하나님을 바라보며 평강을 누리는 것이 그 주된 의미라면 우리는 다

인격수양과 도를 닦기위하여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이 아닐까요?

우리는 나의 의지 발동과 자발성이 주님 뜻대로 사는데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안에서 한껏

자부심을 갖고 보람으로 여기지 않았나요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다 뒤집어 엎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평강을 유지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화평케하는 자가 되기는 커녕 내 마음의 평온마저 유지할 수 없는 자에 불과하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 평화를 가져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화목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삶에 결론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절대로 다른 방법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사 그리고 죄인으로 심판 받으신 것은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대우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부인의 삶을 살면서  예수 안에서 죽어 마땅한 자라는 자기 인식을

갖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만이 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이 방법 말고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내 이웃을 용서하며 살 길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는것이지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늘 천국을 소유한 자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증거가 핍박이라 하시네요

이 땅에서 천국백성은 반드시 핍박과 박해와 저주 받은 삶으로 이끄신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이것이 하늘 백성임을 증명하는 표징이 된다고 하시네요

그러면 핍박도 복인가요?

 복이라 하네요 복중에 복 제일 중요한 것으로 산산수훈의 팔복은 핍박으로 결론을 맺으십니다

창세전에 신령한 복을 선물받고 이 땅에 태어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 역사 속에서도 천국을 인지하며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천국의 삶의 원리와 이 세상의 삶의 원리는 완전히 다른데서 오는 딜렘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늘의 복을 받은 성도들이 자칫 실망하거나 낙담하거나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것이

산상수훈의 팔복강화인 것이랍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내가 부정되고 부인되는 삶의 현상을 말하고 있는거에요

저도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대목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승승장구하고 잘 나가는 모습으로가 아니라

핍박과 박해와 저주받는 모습으로 온 세상의 구경거리처럼 인정 받지 못하는 처절한 삶을 살게 하시는지를요?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핍박이 가장 먼저 그 증거로 나타난나네요

왜요 아담 안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저나 여러분이나 할것 없이 다 자신의 존재성과 주체성과 가치를 챙겨 자신을

증명해보려는 것을 생존 목적으로 하고 태어난다는거에요

창세 전에 복받은 성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인간의 부인할 수 없는 그 본질 속에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으로 치고 들어와 우리에게 복받은 자임을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하여 우리 육적 자아 안에 들어 있는 옛 자아를 부정해 가십니다

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너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챙길 수 없는 전혀 무기력한 티끌같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시는 것이죠

그러나 아담 안에서 태어난 우리는 쉽게 이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즉 묵시 안에서 하늘의 복을 받은 자라는 사실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임에도, 내 현실에 나타나는 불일치 역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반항하게 되고 내가 살아있음을 또 확인하며 그래서 나의 육적 자아는 부정되어야 하는구나?

"아하! 그래서 나의 부인할 수밖에 없는 죄 때문에 예수가 죄인의 모습으로 심판을 받으신거 맞네요!"

이런 깨달음이 바로 자기 부인이 아닐까요?

창세 전에 복받은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이 우리를 핍박과 박해와 저주받는 현장으로 몰고가시는 하나님의 추격의

의도를 안다면 이야말로 복받은 최고의 증표요! 또한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이 아닐 수 없잖아요

핍박도 복인가요~ 대단한 복입니다요

 

 

<산산수훈의 팔복 (1)편에 이어 (2편) 올립니다 이는 김성수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느끼고 은혜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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