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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04 18:49
   바울이라는 이름 - 롬3강 바울, 바울, 바울 중에서
 글쓴이 : admin
    조회 : 28,840  


바울이라는 이름은 ‘작은 자’라는 뜻이에요. 원래 라틴어에서 기원한 단어인데 양이 적거나 수가 적을 때, 그리고 크기가 작을 때 쓰는 단어에요.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인본주의의 총화라 할 수 있는 철저한 유대주의 자였어요. 사울이었던 거예요. 그게 인본주의에요, 사울의 삶이. 큰 자의 삶.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의 실체를 강조하여 폭로해버리신 거예요. ‘사울아, 사울아, 너 사울아. 그 삶은 이미 구약에서 아니라고 결정이 됐잖아? 사울아, 왜 사울같이 살고 있니, 지금도?’ 부르는 거예요, 다메섹에서. ‘사울아, 사울아’.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순간 어떻게 돼요? 그의 삶이 바울, 즉 작은 자의 삶으로 끌려 내려가더라는 거예요. 그 똑똑한 사람이,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산헤드린 공회원이 만날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짱돌로 맞아서 죽은 거 같이 될 정도로 그렇게 작은 자의 삶으로 끌려 내려가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그게 정상적인 성도의 삶인 거예요. 그가 자아인식을 어떻게 했나 한번 잘 보세요. 

(갈 1:13-14)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그 어떤 내 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유대교를 내가 지나치게 믿었다’ 굳게 믿었단 뜻이에요. ‘아주 도에 지나게 믿었다 나는’ 이런 뜻이에요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조상의 유전은 장로들의 유전이죠. 율법 뿐만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까지도 하나도 어긴 적이 없단 뜻이에요. 얼마나 열심을 부렸으면. 
그렇게 사울은, 바울은 구원받기 이전에 사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거예요.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았든지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자기는 흠 없는 자라고 이야기를 해요. 보통 그런 말 잘 못하거든요. 자기 자신은 자기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근데 자기 자신도 안 속였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요. 큰 자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번 보세요. 

(고전 15:8-9)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칠삭둥이, 팔삭둥이라는 거예요, 자기는. 자기가 자기를 인식할때.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지극히 작은 자, 아주 작은 자라는 거예요, 자기는. 하나님이 사도로 부르셨지만 그 중에 나는 아무 자격이 없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자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나는 사도도 아니야, 사도도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 더 성숙한 사도가 되었을 때 그의 자아인식은 이렇게 변해요. 

(엡 3: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제 자기를 사도라고 부르지도 않아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이야기를 해요. 자아 인식이 점점 바뀌어 가요. 맨 나중에는 어떻게 바뀌는지 보세요, 말년에.

(딤전 1:15-16)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기가 구원을 받은 건 무슨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공로가 인정되어서도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인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 같은 사람을 구원하신 건 ‘이런 사람도 구원하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본으로 자기 자신 같은 자를 구원해주신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바울의 자아 인식이 점점 작아지고 있죠? 사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기가 작은 자이며 티끌에 불과한 자라는 것을 깊이 절감하고 있어요. 자기가 대단한 인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자랑하지 않아요. 분명히 그는 더 성숙해졌고 변해갔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느껴지는 자기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그 앞에서 너무 작아지더라는 거예요. 이게 성도의 자아인식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그의 모든 서신의 첫 단어가 ‘파울로스’, 작은 자인 거예요. ‘난 지금까지 큰 자의 삶을 추구하면서 내 자신의 힘과 지혜와 열심을 근거로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난 그분의 은혜, 그분의 십자가만을 굳게 붙들어야 하는 작은 자라는 걸 알았다. 바로 그걸 깨닫는 게 복음이란다.’ 이걸 전부 한 단어에 넣은 거예요. ‘파울로스, 이게 복음이야. 파울로스’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고 큰 자 되고 싶어하잖아요, 전부 다. 
이렇게 은혜는 자신이 작은 자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처럼의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피조물이 있어야 할 자리로 내려가게 만드는 걸 말해요. 그걸 은혜, 믿음이라고 그래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큰 자로 착각하고 있던 자가 작은 자로서의 자신의 실체를 올바로 자각하고 수긍하고 인정해 가는 그 과정 속에 은혜의 왕 노릇이 실행되고 있는 거예요. 원래 작은 자들이 하나님처럼의 자리에 올라가 있잖아요?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나는 작은 자구나’를 올바로 자각하고 인식하는 그 과정이 신앙생활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걸 깨닫게 해주는 거예요, 우리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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